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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큉(Hans Küng)의 「나는 무엇을 믿는가」(WAS ICH GLAUBE, 이종한 역, 분도출판사, 2021년)를 정용섭 목사가 강독한다. 장별 차례는 아래와 같다. 1 삶에 대한 신뢰, 2 삶의 기쁨, 3 삶의 여정, 4 삶의 의미, 5 삶의 바탕, 6 삶의 힘, 7 삶의 모델, 8 삶의 고통, 9 삶의 기술, 10 삶의 비전
2024.12.05 13:36:31
녹취입니다.
스킹 강독, 오늘 28번째 시간입니다. 82쪽, 중간 파라그래프 ES 시작하는 단락이 있습니다. "인간다운 형태 배우기"입니다.
3장 전체의 제목은 "삶의 여정"이었어요. 앞 단락에서는 인류의 삶의 여정, 그건 3장 전체 제목하고 연결된 겁니다인간다운 형태 배우기, 인간다운 형태가 뭘까요? 형태 [음악] 배우기, 인간은 이중 구조, 한수이 얘기했어요. 한편으로는 인원들과 똑같은 동물적 구조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과 전혀 다른 인간 구조가 있는 겁니다.
그 사이에 어떤 비약이 있어요. 절대 그게 아, 그냥 진화의 원리로만 해결될 수 없는 비결이 있는 거, 그 비결이 있는 겁니다. 직립 보행을 통해서 호모사피엔스만의 독특한 특질이 형성됐고, 그거는 똑같은 조건에서 산다고 해서 유인원들이 모두가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진화론을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은 근본을 모르고 하는 거예요. "원숭이가 사람이 된다는 말이냐?" 주장이에요. 그 진화는 그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원숭이가 그 변에서 인간이 된다는 게 아니라, 올라가면 비슷하다는 겁니다." 조상이 비슷하다는 거예요. 오면 종에서 종으로의 진화는 없어요. 그 호모사피엔스는요, 길만 걸어온 특수한 동물 종입니다.
다른 종이 호모사피엔스가 될 수가 없어요. 이미 이렇게 지나온 거예요. 여기는 이제 물리학에서 말하는 불가역의 원리가 해당합니다.
이미 이렇게 왔기 때문에 진화가 안 이루어져요. 용으로만 이렇게 지나온 겁니다. 이미 이렇게 돼버린 건 되돌릴 수가 없어요.
돌아가서 되지가 않습니다. 여기에 동물들에게는 없는 아주 특별한 특성들이 인간에게 주어진 겁니다. 호모사피엔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인정하지 않고, 몇몇자연과학적 가설을 근거로 하여 종교에서 바라보고 전혀 그 조롱하는 듯이 반대하는, 어떻게 보면 순한 용자들과는 나는 말을 걸지 않겠다.
그렇게 보는 건 한수 이렇게 보고 있는데, 좀 동의합니다. "인간다운 형태 배우기" 이렇게 시작합니다. 동물에서 유하는 인간은 명한 사실이니까요.
이기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고, 나는 사회 생물학자들에게서 배우는데, 이런 논란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사실이다. 그래야지 생존하게, 무조건 상대방에서 이겨야 되잖아요, 극복해야 되잖아요. 사실인류 발생의 초기 단계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생존하는 거예요.
서바이벌, 생존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 나옵니다.
리처드 도킨스, 음, 리처드 도킨스 악명 높죠. 자기의 한량한 전문 지식으로 그 이후의 것들은 다 까버리는 사람입니다. 근데 언어 사용이 아주 뛰어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카타르시스를 주는 건 분명해요.
이미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이 과장됐거나 근거가 희박하다는 사실은 다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에서 저 리처드 도킨스의... 유전자를 비롯한 그 뇌 중심주의가 옳은 것처럼, 무조건 옳은 것처럼 선전하는 사람들이 좀 있더라고요.
리 하듯이 유전자들 자체가 이기적이며, 새로운 종은 다만 우연에 의해서 생겨난다는 것은 진화 구조의 한 측면에 속합니다. 한 부분에서는 맞는 거죠. 한 부분에서 맞다고 해서 전체적으로 맞는 건 아니거든요.
최근의유전자 연구는 새로운 종과 유기체는 자연 도태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동시에 협동, 창의성, 소통에 의해서도 발생한다 하며, 오직 그렇게만 진화가 계속 더 분화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이기적인 게 아니라 이타적 유전자가 말이 되는 거죠. 고든 동물계에서, 특히 유사한 유전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친족들 사이에서는 유전자의 내장된 협동적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더욱이나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들이 주장했듯, 유리가 개입할 여지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이기적 유전자의 작동으로 인해 벌어지는 것이, 인간의 이타적이고 윤리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휴머니즘을 발휘하는 거,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죠. 그의 논리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미 밝혀졌다고 한수이 말하고 있고, 그거는 모른 얘기입니다. 이럴 테면 일종에상호 이타주의입니다. 네가 나에게 하듯, 나는 너에게 반대급부를 기대하는 행위인데, 이것은 특히 인간에게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초보적인 윤리적 태도가 이미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 안에 계류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단어가 또 나왔네요. '계류'는 그냥 거기 머물러 있다는 거죠.
남아 있다, 그 정도로 봐도 되기 있어요. 예, 사실을 내가 많이 배운 튜빙견의 진화 생물학자 알프레드 기어도 강조한다는 말을 인용합니다. [음악] 우리 유전자의 근본 장치에는감정 이입의 능력, 남의 심적 상태와 생각 속으로 옮겨가는 역지사지의 능력도 들어 있습니다.
이기적이지만 않다는 겁니다. 이러한 사회적 형태의 맹아의 핵심은 인간이라는 종의 매우 위대한협동 능력에 바탕을 두고 있거니와, 이 능력이 생명과 생존 가능성의 한 가지 결정적 전제 조건입니다. [음악] 어떤 태풍을 만나거나, 하상 복바를 만나거나, 기아에 떨어졌을 때, 그러함으로써 그 위기를 벗어나려고 하는 그 유전자 성향들이 이미 있다는 겁니다.
이기적이라고 한다면, 그 위기 상황에 무조건 자기가 살아야 되니까, 무조건 자기가 약탈하고 도둑질하고, 그리고 먼저 뺑 손에 치고 뭐 그래야만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근데 인간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서로협동으로 생존의 길을 찾는 거예요. 그럼 이타적인 가 나올 수밖에 없고, 이기적인 건 안 되잖아요.
그게 인간이란 무엇인가? 많은 점에서 그 자체가 수수께끼라는 책에 있다고 하네요. 이게 번역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3장 전체의 제목은 "삶의 여정"이었어요. 앞 단락에서는 인류의 삶의 여정, 그건 3장 전체 제목하고 연결된 겁니다
그 사이에 어떤 비약이 있어요. 절대 그게 아, 그냥 진화의 원리로만 해결될 수 없는 비결이 있는 거, 그 비결이 있는 겁니다. 직립 보행을 통해서 호모사피엔스만의 독특한 특질이 형성됐고, 그거는 똑같은 조건에서 산다고 해서 유인원들이 모두가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원숭이가 그 변에서 인간이 된다는 게 아니라, 올라가면 비슷하다는 겁니다." 조상이 비슷하다는 거예요. 오면 종에서 종으로의 진화는 없어요. 그 호모사피엔스는요, 길만 걸어온 특수한 동물 종입니다.
다른 종이 호모사피엔스가 될 수가 없어요. 이미 이렇게 지나온 거예요. 여기는 이제 물리학에서 말하는 불가역의 원리가 해당합니다.
이미 이렇게 왔기 때문에 진화가 안 이루어져요. 용으로만 이렇게 지나온 겁니다. 이미 이렇게 돼버린 건 되돌릴 수가 없어요.
돌아가서 되지가 않습니다. 여기에 동물들에게는 없는 아주 특별한 특성들이 인간에게 주어진 겁니다. 호모사피엔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인정하지 않고, 몇몇
그렇게 보는 건 한수 이렇게 보고 있는데, 좀 동의합니다. "
이기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고, 나는 사회 생물학자들에게서 배우는데, 이런 논란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사실이다. 그래야지 생존하게, 무조건 상대방에서 이겨야 되잖아요, 극복해야 되잖아요. 사실
서바이벌, 생존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 나옵니다.
이미
리 하듯이 유전자들 자체가 이기적이며, 새로운 종은 다만 우연에 의해서 생겨난다는 것은 진화 구조의 한 측면에 속합니다. 한 부분에서는 맞는 거죠. 한 부분에서 맞다고 해서 전체적으로 맞는 건 아니거든요.
최근의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미 밝혀졌다고 한수이 말하고 있고, 그거는 모른 얘기입니다. 이럴 테면 일종에
요컨대, 초보적인 윤리적 태도가 이미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 안에 계류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려운 단어가 또 나왔네요. '계류'는 그냥 거기 머물러 있다는 거죠.
남아 있다, 그 정도로 봐도 되기 있어요. 예, 사실을 내가 많이 배운 튜빙견의 진화 생물학자 알프레드 기어도 강조한다는 말을 인용합니다. [음악] 우리 유전자의 근본 장치에는
이기적이지만 않다는 겁니다. 이러한 사회적 형태의 맹아의 핵심은 인간이라는 종의 매우 위대한
이기적이라고 한다면, 그 위기 상황에 무조건 자기가 살아야 되니까, 무조건 자기가 약탈하고 도둑질하고, 그리고 먼저 뺑 손에 치고 뭐 그래야만 되는 거 아니겠어요? 근데 인간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서로
그게 인간이란 무엇인가? 많은 점에서 그 자체가 수수께끼라는 책에 있다고 하네요. 이게 번역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2008년에 나왔는데, 동시에 사회학자들은 나에게 생물학적 기계론적 은, 윤리적 가치와 규범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충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과연 인간에게서, 그리고 오직 인간에게서만 가능한 언어 사용 능력, 이건 동의하시죠? 인간에게만 언어 능력이 있다는 거. 그럴 때 벌들도 서로의 동안 다 좀 미숙하지만, 그런 말로는 대답이 안 되는 겁니다.
인간의 언어 능력과 그 언어 현상은, 곤충과 동물 세계에서 일어나는 의사 소통과 완전히 차원이 다른 거죠. 다시 인간에게서는 언어 사용 능력과 더불어 필요한 협동 능력이 생성되었는데, 이것은 사회적으로 학습되어야 했다. 전략적 사유의 진화와 더불어, 특히 가족적 연대 안에서 타인의 두려움, 기대, 희망을 함께 느끼는 감정 이입의 능력과 헌신의 능력도 발전했다.
이는 인간다운 사회적 행태의 근본적인 것이 되었다. 진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도덕적 정서와 직관이 생성되었는데, 이것이 도덕적 논증과 판단에 선행한다. 그렇게 인간은 태고적부터 점차적으로 인간답게 행동하고 배우는 것을 배웠다.
이기적 유전자를 넘어서는 거죠. 그 결과, 인간은 아주 일찍부터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규범들을 세우고, 계속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가 되었다. 인간만이 그런 문화를 만들게 되는 겁니다.
법도 생기고요, 종교, 여러 전통들이 인간호모 사피엔스의 특질로 자리를 잡은 겁니다. 다음은 항목 행전을 위한 윤리입니다.
이는 인간다운 사회적 행태의 근본적인 것이 되었다. 진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도덕적 정서와 직관이 생성되었는데, 이것이 도덕적 논증과 판단에 선행한다. 그렇게 인간은 태고적부터 점차적으로 인간답게 행동하고 배우는 것을 배웠다.
이기적 유전자를 넘어서는 거죠. 그 결과, 인간은 아주 일찍부터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규범들을 세우고, 계속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가 되었다. 인간만이 그런 문화를 만들게 되는 겁니다.
법도 생기고요, 종교, 여러 전통들이 인간
인간을 형태 배우기가 있었고, 그다음에 생존을 위한 윤리에 아프리카에서 촬영을 마치고, 우리 흔적작 착기 팀은 호주의 심장부인 원주민들의 동산 거룩한 산 울룰루에 대한 통돌 바위로 이동했다. 다 한스 킹의 신학자이면서도, 이런 다큐멘터리 TV 시리즈를 만드는 팀에서도 활동했고, 재밌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 많은 사람의 익숙하고 침착한 눈길을 잊지 못한다.
그곳 원주민들 여기에서 나온 종교적 아우라를 가르쳐요. 마치 그들은 우리 문명인들은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린 어떤 암을 아직 가지고 있는 듯했다. 종교성이 그래서 나에게는 바로 그 원주민들, 라틴어 앞 오리기의 처음부터라는 뜻이 있는 그 원주민들은, 우리가 흔히 미개한 원주민 종족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네 고유한 문화를 바로 하나의 근간, 뿌리 근간 문화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시청자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 21세기 론이란 그 문화에 길던 사람들은 눈에는 좀 원시적으로 보이나, 아, 그들이야말로 근간 문화를 보유한 사람들이다. 이게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거죠. 다행히 호주도 2009년 정치적 전환기를 맞아, 이미 2007년 유엔 총회에서 가결된 원주민들의 권리 자주적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고, 호주 원주민들이 아마 호주 정부에 공식적으로 원주민들에게...
사과, 아, 사과 발언을 한 거 같습니다. 자기들이 침략한 거니까요. 주인은 원주민들이고, 원주민들의 동의도 받지 않고 와서 모든 걸 지배하게 지배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걸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지만, 정치적으로 공식 발언은 하지 않는 데, 그때 아마 한 것으로 보여요.
그때 아마 여자 수상이었던 제가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네요. 미국과 캐나다는 아직 그런 사과 발언을 안 했죠. 그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곳에 가서 자기들이 주인 행세를 한 거 아닙니까? 자주적인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고, 원주민들이 이미 지금 법을 따로 자기들로 만들 수 없잖아요.
일체적으로 자신들의 고유한 생활과 문화적 생존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 그러니까 원주민들의 권리를 위한 선언문을 수용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 주도로 미국이 그러고 나서 캐나다와 뉴질랜드도 따를 것이라고 했으나, 따르지 않았습니다. 뉴질랜드는 따랐나? 오바마는 미국은 안 했죠.
제가 기억하기로는 하지 않았습니다. 100% 정확하지는 않지만, 안 했을 거예요. 원주민들이 정말 문화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나는 아주 부닥친다, 그런 물음을 받는다는 거예요.
거기 직접 갔다 왔으니까 사람들이 물음, 아 원주민들에게 문화라고 할 수 있는 게 있나? 유치한 데 그렇게 보는 거죠. 그들이 문자를 발명하지 않았고, 학문이나 복잡한 기술을 발전시키지 않았다고 인정해야 하겠다. 하지만 그들의 사유는 실로 논리적이고 분명하며, 나아가 인간 관계들의 질서, 아니 사물들의 질서를 위한 열정에 의해 특징 지워져 있다고문화 인류학자들이 나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또한 원주민들의 기초적 윤리도 지니고, 아, 원주민들이 기초적 윤리도 지니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윤리, 마음대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어떤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거는 그 행동하게 하는 원칙을 윤리라고 하잖아요. 그 어떤 문자로 기록하지는 않았으나, 그들 나름으로 윤리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들의 생명과 존속이 가능하도록 도와주었고, 지금도 도와주고 있는 이 윤리가 오늘날에도 인간다운 더불어 삶을 위한, 위에 근본적이다. 더불어 [음악] 공생이 더불어 삶의 근본이다, 주자면, 리빈 그럴 겁니다. 정확하게 모르겠어요.
더불어 삶을 위해서 근본적이다. 저런 게 파괴되면, 윤리가 파괴되면 더불어 삶도 파괴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율법은 의미가 있는 겁니다.
율법이 윤리이다. 그게 더불어 삶을 위해서 사용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면서 동시에 그것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들의 그 이익을 챙기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이나 기관들에게 나타났듯이, 지금도 많이 배운 사람들이 [음악] 더 이기적으로 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법이, 동생이 아니라 각자 도생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거죠. 그런 사실은 내가 음과 같은 진화의 법칙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인류 초기부터 언제 어디서든 삶에 필요한 것, 인간 상호 간의 절박하고 필수적인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지면, 즉시 인간다운 태도와 행동을 위한 올바른 방향 설정이 이루어졌다. 예컨대, 특정한 관습과 풍속, 윤리적 적도, 규범, 규칙, 지시 등이 이루어졌다. 이런 것들은 수천 년이 흐르는 과정에서 인류가 존재하는 곳에서 거듭 검증받았고, 이어지는 세대들 안에서 습관이 되어야 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을 우리가 어떻게 보장해 줘야 하냐 하는 그런 숙제를 안고 있으면, 해결되는 거예요. 그 인간 해답이 거기서 나올 수 있는 겁니다. 물론 초기에 또한 오늘날에 종족 문화들 안에 이 가치와 척도들이 명제식으로 표현되지 않고, 글로 쓰이지 않는 규범들이 있다.
불문율 비슷한 거죠. 이것들은 가족, 시족, 종족 기풍으로의 이야기와 비유, 관습들 안에서 전승되었다. 그런데 지구에 아주 다양한 지역에서 유사한 규범들이 발전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가 원주민이 부르거나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그호모 사피엔스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난 겁니다. 인간다운 품미와 그런 태도가 나오고, 윤리가 나오는 겁니다.
윤리적인 존재인 거죠. 더불어 살기 위해서 그런 태도로 가게 되는 겁니다. 윤리적으로 살려면 자기가 이기적으로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자기 손해 보는 것도 각오하면서 더불어서 하는 것을 찾아갈 때 윤리가 성립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교통 신호도 지키는 것도 다 그런 방향인 거죠. 이 규범들은 삶의 중요한 영역들에서 구체화되었다. 첫째,생명 보호, 특정한 예외적 경우, 갈등의 조정, 강제 처벌 등을 제외하고, 체벌을 할 경우 크게 사회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그런 것을 제외하고, 사람 죽이는 행위 금지.
둘째, 또한 처음부터 재산 보호 역시 중요했다. 살인 금지, 재산 보호, 중요했다. 셋째, 명예의 보호.
넷째, 성별 간의 관계 규정. 남성, 여성 이런 것들이요. 일종의 원윤리의 네 가지 관점, 아네 가지를 원윤리라고 얘기하는군요.
한스 킹이 생물학적 윤리학자, 그도 유명합니다. 기독교 윤리학, 세계 윤리 벨테 토스를 썼다고 말씀드렸고, 그런 어떤 모임, 세계 기구에서도 활동을 했어요. 네 가지 기억해 둬야겠습니다.
생명을 살상하면 안 돼,생명 보호, 그다음에 재산 보호, 명예 보호, 성별의 문제. 일종의 원윤리의 네 가지 관점은 내가 의한 문화들 사이의 공통점들을 찾아내는 일에 착수했을 때 매우 중요했다. 물론 그런 규범들이 전반적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오랜 기간의 습관화와 검증의 단계들이 필요했다.
그렇죠. 한두 번 이렇게 시행해 봐서 그걸에 중요한 원칙들을 만들 수 없는. 거거든요, 이제 이런 이렇게 해야 더불어 사는 삶이 가능하다는 오랜 기간을 통해서, 경험이 축적돼야 되는 겁니다.
모두 합쳐 수백만 명에 불과했던 시력 체인들의 시대가 지나고 나서야, 비로서 좀 더 수준 높은문화적 발전이 뚜렷이 나타났습니다. 약 만 년 전 농업의 확산이 엄청난 인구 증가와 동시에 문화들의 분할을 가져왔고, 부자는 마침내 고등 문화들과 고등 종교들로 귀결되었습니다. 네, 연극도 하고, 노래, 춤, 이런 문화들도 있고, 종교 의식으로 발전하고, 인간 호모 사피엔스로 부르는 그 종에게 나타나는 특별한 문화사적 발전인 겁니다.
그게 동물에게는 없어요. 어떻게 여기까지 와게 됐냐, 그게 비약 어떤 비약이 있는 거예요. 저대로 그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
침팬지에게 언어를 아무리 가르쳐 줘 봐야 한계가 있습니다. 그 종교 의식을 넣어 줄 수가 없어요. 뭐, 그런 쪽으로 아주 극단적으로 나가는 사람들은 '걔가 주인에게 복종하는 거, 그게 종교심'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그런 본능과 인간의 자기에 대한 의식, 세계에 대한 의식, 그리고 언어를 통한 어떤 경험들,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일어나는 종교 현상하고는 다른 거죠.
아, 물론 그쪽에서 주장하는 사람들도 이건 그걸 아마 자기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겁니다. 그건 정도의 차이만 있지, 근본에서 똑같다 이렇게 계속 얘기하겠지요. 앞으로 그런 것들은 서로 진리 논쟁의 차원에서 논의가 돼야 되겠죠.
그곳 원주민들 여기에서 나온 종교적 아우라를 가르쳐요. 마치 그들은 우리 문명인들은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린 어떤 암을 아직 가지고 있는 듯했다. 종교성이 그래서 나에게는 바로 그 원주민들, 라틴어 앞 오리기의 처음부터라는 뜻이 있는 그 원주민들은, 우리가 흔히 미개한 원주민 종족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네 고유한 문화를 바로 하나의 근간, 뿌리 근간 문화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시청자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 21세기 론이란 그 문화에 길던 사람들은 눈에는 좀 원시적으로 보이나, 아, 그들이야말로 근간 문화를 보유한 사람들이다. 이게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거죠. 다행히 호주도 2009년 정치적 전환기를 맞아, 이미 2007년 유엔 총회에서 가결된 원주민들의 권리 자주적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고, 호주 원주민들이 아마 호주 정부에 공식적으로 원주민들에게...
사과, 아, 사과 발언을 한 거 같습니다. 자기들이 침략한 거니까요. 주인은 원주민들이고, 원주민들의 동의도 받지 않고 와서 모든 걸 지배하게 지배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걸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지만, 정치적으로 공식 발언은 하지 않는 데, 그때 아마 한 것으로 보여요.
그때 아마 여자 수상이었던 제가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네요. 미국과 캐나다는 아직 그런 사과 발언을 안 했죠. 그 인디언들이 살고 있던 곳에 가서 자기들이 주인 행세를 한 거 아닙니까? 자주적인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고, 원주민들이 이미 지금 법을 따로 자기들로 만들 수 없잖아요.
일체적으로 자신들의 고유한 생활과 문화적 생존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 그러니까 원주민들의 권리를 위한 선언문을 수용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 주도로 미국이 그러고 나서 캐나다와 뉴질랜드도 따를 것이라고 했으나, 따르지 않았습니다. 뉴질랜드는 따랐나? 오바마는 미국은 안 했죠.
제가 기억하기로는 하지 않았습니다. 100% 정확하지는 않지만, 안 했을 거예요. 원주민들이 정말 문화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나는 아주 부닥친다, 그런 물음을 받는다는 거예요.
거기 직접 갔다 왔으니까 사람들이 물음, 아 원주민들에게 문화라고 할 수 있는 게 있나? 유치한 데 그렇게 보는 거죠. 그들이 문자를 발명하지 않았고, 학문이나 복잡한 기술을 발전시키지 않았다고 인정해야 하겠다. 하지만 그들의 사유는 실로 논리적이고 분명하며, 나아가 인간 관계들의 질서, 아니 사물들의 질서를 위한 열정에 의해 특징 지워져 있다고
또한 원주민들의 기초적 윤리도 지니고, 아, 원주민들이 기초적 윤리도 지니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윤리, 마음대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어떤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거는 그 행동하게 하는 원칙을 윤리라고 하잖아요. 그 어떤 문자로 기록하지는 않았으나, 그들 나름으로 윤리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들의 생명과 존속이 가능하도록 도와주었고, 지금도 도와주고 있는 이 윤리가 오늘날에도 인간다운 더불어 삶을 위한, 위에 근본적이다. 더불어 [음악] 공생이 더불어 삶의 근본이다, 주자면, 리빈 그럴 겁니다. 정확하게 모르겠어요.
더불어 삶을 위해서 근본적이다. 저런 게 파괴되면, 윤리가 파괴되면 더불어 삶도 파괴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율법은 의미가 있는 겁니다.
율법이 윤리이다. 그게 더불어 삶을 위해서 사용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면서 동시에 그것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들의 그 이익을 챙기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이나 기관들에게 나타났듯이, 지금도 많이 배운 사람들이 [음악] 더 이기적으로 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법이, 동생이 아니라 각자 도생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거죠. 그런 사실은 내가 음과 같은 진화의 법칙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인류 초기부터 언제 어디서든 삶에 필요한 것, 인간 상호 간의 절박하고 필수적인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지면, 즉시 인간다운 태도와 행동을 위한 올바른 방향 설정이 이루어졌다. 예컨대, 특정한 관습과 풍속, 윤리적 적도, 규범, 규칙, 지시 등이 이루어졌다. 이런 것들은 수천 년이 흐르는 과정에서 인류가 존재하는 곳에서 거듭 검증받았고, 이어지는 세대들 안에서 습관이 되어야 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을 우리가 어떻게 보장해 줘야 하냐 하는 그런 숙제를 안고 있으면, 해결되는 거예요. 그 인간 해답이 거기서 나올 수 있는 겁니다. 물론 초기에 또한 오늘날에 종족 문화들 안에 이 가치와 척도들이 명제식으로 표현되지 않고, 글로 쓰이지 않는 규범들이 있다.
불문율 비슷한 거죠. 이것들은 가족, 시족, 종족 기풍으로의 이야기와 비유, 관습들 안에서 전승되었다. 그런데 지구에 아주 다양한 지역에서 유사한 규범들이 발전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가 원주민이 부르거나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그
윤리적인 존재인 거죠. 더불어 살기 위해서 그런 태도로 가게 되는 겁니다. 윤리적으로 살려면 자기가 이기적으로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자기 손해 보는 것도 각오하면서 더불어서 하는 것을 찾아갈 때 윤리가 성립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교통 신호도 지키는 것도 다 그런 방향인 거죠. 이 규범들은 삶의 중요한 영역들에서 구체화되었다. 첫째,
둘째, 또한 처음부터 재산 보호 역시 중요했다. 살인 금지, 재산 보호, 중요했다. 셋째, 명예의 보호.
넷째, 성별 간의 관계 규정. 남성, 여성 이런 것들이요. 일종의 원윤리의 네 가지 관점, 아네 가지를 원윤리라고 얘기하는군요.
한스 킹이 생물학적 윤리학자, 그도 유명합니다. 기독교 윤리학, 세계 윤리 벨테 토스를 썼다고 말씀드렸고, 그런 어떤 모임, 세계 기구에서도 활동을 했어요. 네 가지 기억해 둬야겠습니다.
생명을 살상하면 안 돼,
그렇죠. 한두 번 이렇게 시행해 봐서 그걸에 중요한 원칙들을 만들 수 없는. 거거든요, 이제 이런 이렇게 해야 더불어 사는 삶이 가능하다는 오랜 기간을 통해서, 경험이 축적돼야 되는 겁니다.
모두 합쳐 수백만 명에 불과했던 시력 체인들의 시대가 지나고 나서야, 비로서 좀 더 수준 높은
그게 동물에게는 없어요. 어떻게 여기까지 와게 됐냐, 그게 비약 어떤 비약이 있는 거예요. 저대로 그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
침팬지에게 언어를 아무리 가르쳐 줘 봐야 한계가 있습니다. 그 종교 의식을 넣어 줄 수가 없어요. 뭐, 그런 쪽으로 아주 극단적으로 나가는 사람들은 '걔가 주인에게 복종하는 거, 그게 종교심'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그런 본능과 인간의 자기에 대한 의식, 세계에 대한 의식, 그리고 언어를 통한 어떤 경험들,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일어나는 종교 현상하고는 다른 거죠.
아, 물론 그쪽에서 주장하는 사람들도 이건 그걸 아마 자기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겁니다. 그건 정도의 차이만 있지, 근본에서 똑같다 이렇게 계속 얘기하겠지요. 앞으로 그런 것들은 서로 진리 논쟁의 차원에서 논의가 돼야 되겠죠.
이제 그 규범들은 또한 제식으로 표현되고 기록됩니다. 여러 문화에서 이 규범들은 신들의 뜻에 따른 것으로 제시되거나, 히브리 성경에 십계명에서 법리적으로 나타나듯이, 유일신의 권위로 재정된 것으로 제시되었습니다. 마지막 파라그래프, 이런 계명들은 수백 년을 거치며 세대에서 세대로 전송되었습니다.
그러나 물론 나는 오늘도 거듭 항변을 듣습니다. 사람들 끊임없이 그런 계명들을 거슬러 다의 대답은 론이다. 그러나 이 명이 없다면 세상이 어떨까, 리라는 것은 경험론과 상충되며, 실제로 살아보니까 그렇게 안 되는데, 뭐 이런 거, 실제 상태가 아니라 그래야 마땅한 상태를 가르치고자 한다 방이죠.
그러나 물론 나는 오늘도 거듭 항변을 듣습니다. 사람들 끊임없이 그런 계명들을 거슬러 다의 대답은 론이다. 그러나 이 명이 없다면 세상이 어떨까, 리라는 것은 경험론과 상충되며, 실제로 살아보니까 그렇게 안 되는데, 뭐 이런 거, 실제 상태가 아니라 그래야 마땅한 상태를 가르치고자 한다 방이죠.
그러는 나에게 더 중요한 날의 상에서, 어떻게 하면들이 행복과 안녕을 위한 이정표로서 새삼 존중받고 또 항구성을 보유하게 할 수 있을까. 자, 재밌습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더 나올지 기대가 됩니다.
수고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드디어 삶의 여정으로 들어갔네요. ㅎㅎ
아래 링크 올렸구요.
체스터턴 '영원한 인간'이 출간되나봐요.
정통도 인상깊게 읽었는데....
언제 체스터턴 영원한 인간도 강독해주시면 너무 좋겠어서
소식 전해드립니다~~ ㅎㅎ
https://mall.godpeople.com/?G=9791170831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