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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큉(Hans Küng)의 「나는 무엇을 믿는가」(WAS ICH GLAUBE, 이종한 역, 분도출판사, 2021년)를 정용섭 목사가 강독한다. 장별 차례는 아래와 같다. 1 삶에 대한 신뢰, 2 삶의 기쁨, 3 삶의 여정, 4 삶의 의미, 5 삶의 바탕, 6 삶의 힘, 7 삶의 모델, 8 삶의 고통, 9 삶의 기술, 10 삶의 비전
녹취후 정리입니다
강의이해를 돕기위한 참조용입니다.
굉장히 오래간만에 녹화하는 거예요, 그래서 흐름이 약간 어색할 수 있습니다. 미리 지난 여름에 이렇게 많이 녹화해 두었던 것을 조금씩 대구 선사 아카데미, 아니죠, 저의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 했고요. 이제 29강, 86쪽, 아주 오래간만에 합니다.
오늘 우리가 보게 될 내용은 전체 흐름에서 세 번째 장입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이렇게 해서 전체가 열 번까지 나갑니다. 1장은
한스킨이 쓰고 있는
이
근데 우리가 기독교적으로 많이 들었던 기루, 진료,
근데 그
인간이라는 고유한 이런
그 관계는 그 다른 거죠, 똑같은 현상인데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겁니다. 우리는
그니까 스킹이 고 있는 그 내용들이 우리의 실제
근데 그게 그렇게 생각 없이 살면서...
뭐 이 비슷한 얘기는 다른 데도 여러 번 했으니까, 지나가겠습니다. 하여튼 말을 하다 보면, 뭐 그게 중요해서 자꾸만 거기에 매달리는 거기 머물러서 자꾸만 이야기를 합니다. 진도 나가는 게 중요한데요,
내가 살아 있다고,
이거는 뭐 뜬구름 잡는 거 같이, 진짜
어렸을 때 형성된다고 합니다.
오늘 그 부분을 따라가 볼 생각입니다. 그래서 맨 마지막에는
그리고 이제 곧 12월 첫째 주일이 되면 대림절이 시작하잖아요. 이게 꿈입니다. 기다림이 그거요,
그리스도교 신앙은 바로 저런 꿈과
그런데 무
니체의 비판을 기독교가 따끔하게 듣기는 해야 되겠으나, 거기에 무조건 부화내동하면 안 되겠죠. 한스킨은 그
그 여기 이제 우리가 읽으면서 나오겠습니다.
어, 지금도 이슬람의 테러 어, 어들이 있었고, 뭐 이스라엘도 결국은 뭐 유대교 민족이니까. [음악]
거기에서
잠깐 지우겠습니다. 이정표, 살아가 이정표가 필요하잖아요. 그건 이제
쉽게 얘기하면 이런 겁니다. 저번 주의 체제에서는 그런 세계
이걸 극복하기가 좀 쉽지가 않아요. 그래서 여기, 우리가 지금 읽기 시작하는 2
인간이라는 종이 선생,
물론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 외딴 섬에 가 아니라, 인간 사회 한가운데서 그래야 한다. 어울려서 사는 그 사회 안에서 부대끼면서 배워야 되는 거죠.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자립할 때까지 한 20여 년 걸리지 않습니까? 그 과정이 마치 우리 유인원 시대부터 지금까지 현생
거기에는 교육, 배우는 게 결정적으로 [음악] 중요합니다. 뭐, 당연한 [음악] 얘기죠. 배우지 않고는 다 안 되는 거죠.
수백년에 걸쳐 수많은 관습과 통속이 사회적으로 자명한 것으로 여겨졌다. 뭐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에도 삼강오륜 이런 거 있잖아요. 관습과 풍속이 그것들은
오랜 세월 유럽에서는 인간 실존의 기초적 규범들이 가까지 결함과 편파성을 지니고 있긴 했지만, 가정, 학교, 교회를 통해 [음악] 전달되었습니다. 이런 가정교육이 가장 잘 되는 나라는 아마 유대교, 유대인과 예루살렘, 이스라엘 같아요. 그러나
요즘 뭐 젊은 사람들이 가정에 아버지나 어머니의 권위를... 뭐, 그게 인정합니까? 각각의 자유와 판단이 소중하다는 것은, 이건 그 계몽주의 이후로 굉장히 중요한 교육인데, 그것 때문에 인간
어렸을 때 저는 가난한 집에서 살았지만, 가끔 아버지가 밥 먹을 때는 말하지 말라는 것하고, 한 남기지 않는 것, 또 말씀하신 게 딱 귀에 남아 있어요. 밥에서 밥을 남기지 않는 겁니다. 근데 요즘 뭐, 리 가족들도 봐도 별로 안 그렇더라고요.
그런 가르침들이 보편적 구속력을 상실한 거죠. 이제는 이런저런 문화 안에서는, 이 규범들에 관한 망각과 무시의 단계들이 존재한다. 도덕적 방치와 황폐화의 시기, 또한 시기 또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거죠.
아주 거센 물살처럼, 그런 전통적 규범들이 무너진 거죠. 또 무너질 건 또 무너져야죠. 근데 그게 어디까지냐 하는 게 문제인 겁니다.
자주 스스로 뒤쳐지고 위기에 빠졌던 제도화된
도저히 현대 문명 사회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을 만 생각을 하는 거죠. 우리로서는 대신도 내 근본주의적 경향들, 그리고 히 매한 로마 교회를 올리는 게 더 이해하기 쉽겠다. 그러나 실로
당시
1960년 2년부터 1990년 6, 5년인가 이때 전 세계들이 적으로 바티칸에 모여서
당시 교회는 2차 바티칸 공회와
다시 바티칸 공유에서 제시했던... 방향이 무시되고 거꾸로 갑니다. 요한 23대가 죽은 거죠, 필요한 사람이 좀 오래 살았으면, 그 개혁에 동력이 좀 이어질 텐데, 사람이 떠나니까 이게 좀 잘 안 돼요.
사람이 문제입니다. 그 복권을 얼마나 참담하고 확장했는지, 여한 방식의 피임도 중죄로 매도한
그런
스키냐지만 교회 지배층은 건설적이고 신학적인 해결책을 받아들이는 대신, 문의를 한
튜빙기 [음악] 대학교에서 음네 변견대학에서, 그러나 둘로 알다시피, 이 두 가지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게
여러
아, 아씨, 시간 안 써지네. 베네딕토, 어 베네딕토예요, 어 16세. 이 사람은 독일 사람이죠.
왜 나는 이런 일들을 이해해야 하는가? 베네딕토 16세, 내가 독일 사람이라고 제가 얘기했는데, 그 사람은 그 사람인가, 지금 제 머릿속에 막 혼란스러워서, 그냥 이게 이름이 그렇게 남아 있어서 얘기했는데, 혹시. 아닐지도 모릅니다. 뭐, 몇 세, 몇 세 해갖고 똑같은 이름들이 여러 [음악] 있거든요.
왜 나는 이런 일들을 이야기해야 하는가, 그가 지금까지
개신교에서 12 걸지 않는다고 해서 로마
그리고 20세기 온갖 이데올로기적 탈선과 비인간적인 사건들을 실로 참담하게 겪어 보았거니와, 이정표 정향이 존재하는가? 어떤 방향을 우리가 세울 수 있는가? 추락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가드레일이 있는가? 근본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