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설계

Views 3442 Votes 4 2010.05.19 23:08:13

 

     그대의 인생은 앞으로 얼마나 남았소? 청춘이라면 나름으로 인생을 설계하고 있을 거요. 꿈에 부풀기도 하고, 거꾸로 현실을 암담하게 느낄 수도 있소. 그런 세월을 다 보낸 이라면 인생이 설계한대로 잘 풀린 것에 만족하거나 그렇지 못한 것에 아쉬움에 젖을지도 모르오. 인생이 설계한대로 진행된다면 얼마나 즐겁겠소만 대개는 그렇게 되지 않소. 어떤 경우에는 설계한 것보다 훨씬 잘 풀리기도 하오. 모든 사람은 크고 작은 삶의 설계를 그린 채 그것이 이루어질 날을 꿈꾸며 사는 것 같소.

     나는 그대가 인생설계에 너무 묶이지 않았으면 하오. 내가 보기에 사람들은 그런 것에 삶을 다 소진하오. 그것이 성취되면 너무 좋아하고, 좌절되면 너무 실망한다오. 일희일비 하느라 결국 삶 자체는 놓치고 만다오. 인생의 꿈을 펼치는 것이 삶이 아니냐, 그런 과정에서 울다가 웃다 하는 것이 인생 아니냐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구려. 아니라오. 삶은 결코 자기의 꿈을 펼치는 연극무대가 아니오. 꿈을 이룬다고 해도 정말 별 것이 아니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은 내가 장담할 수 있소. 목회 이야기로 바꾸면 더 실감이 갈지 모르겠구려. 목회의 꿈을 이루었다고 해서 그것이 목사의 영적인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하오. 교회를 아무리 크게 키워도 그것이 목사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하오. 오히려 반대요. 큰 교회를 만들어서 그걸 유지하려면 훨씬 많은 삶을 소진해야 한다오. 그래도 그렇게 큰 교회로 키워봤으면 좋겠소? 잊지 마시오. 별 것 아니오.

     좀더 심하게 말해도 용서하시오. 그대가 인생설계를 아예 하지 않았으면 하오. 그냥 살아보시오. 그냥 삶을 사는 거요. 그럴 때 삶이 얼마나 화려한지를 알게 될 거요. 이 말이 무조건 무위도식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는 걸 그대는 알고 있을 거요. 사실은 무위도식(無爲徒食)이 가장 멋진 삶이긴 하오. 마치 탁발 승려들이 시주를 받아먹고 살듯이 말이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그렇게 사는 건 불가능하니 다른 사람만큼은 일하면 살아야 할 거요. 그런 정도로 일하며 살기로 작정한다면 굳이 인생을 설계하지 않아도 된다오. 그대의 불평이 들리는 듯하오. 그런 방식으로 살면 결국 가난해지고,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거 아니냐, 자식들은 어떻게 키우냐 하고 걱정하실지 모르겠소. 지금처럼 자본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시대에 당신 말은 뜬구름 잡는 거라고 말이오. 아, 이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도록 합시다. 한 마디만 하겠소. 삶은 우리가 계획하는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세계라오. 우리가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거기에 휩싸이는 게 최선이오. 마치 성령을 우리가 다루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거기에 휩싸일 뿐인 것처럼 말이오. 성령이 바로 생명의 영이라는 걸 그대는 알고 있을 거요. (2010년 5월19일, 수요일, 하양 장날)


정병선

2010.05.20 10:05:51

목사님, 어제 제가 올린 글과 내용이 비슷하네요.

'목적이 이끄는 삶'의 이면에서 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

물론 쉬운 일은 아니예요.

하기야 쉬운 일이 세상 천지 어디에 있기나 한가요??

잘 읽었습니다. .......

 

 

이선영

2010.05.20 23:00:55

스펙을 쌓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를 닦달하고,

자의든 타의든 꿈과 비전이라는 이름의 인생설계를 강요받는  20대에게

목사님의 말씀은 '세월 좋은 소리'이거나,

'삶 전체의 방향을 바꾸는 충격'일 것 같습니다.

그냥 살아도 좋다는 것을, 아니 그냥 사는 게 오히려 치열한 삶일 수 있다는 걸

다비아에서 배웠습니다.

자기를 드러내고 확대함으로써 살아있음을 확인해야 하는 구조속에서도

불안해 하지 않고, 최소한의 행복은 보장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걸요.

찌질한 자기 합리화가 되지 않도록

역사의 부조리에 두눈을 감지 않을 수 있다면요.

목사님의 말씀은 결코 뜬구름 잡는 게 아니란 걸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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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시케

2010.05.21 11:30:15

공감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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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나무

2025.01.17 10:59:46

귀한 글을 오늘도 한편 읽었네요. 이 글만 곱씹어봐도 오늘 하루 배부를 것 같습니다.

20~30대 중반까지는 목사님 설교와 글이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40대가 되어보니 눈에 들어오네요. 적실성까지 있는 말씀이란 걸 그제야 알아갑니다!

저 역시 어찌보면 던져진 밀쳐진 삶으로 지금 살고 있지만....

이 글이 복음으로 소망과 위로로 다가옵니다.

꿈을 이루고 높은 데 올라가면 갈수록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해 삶의 더 많은 에너지를

거기에 소진할 수밖에 없는 이상한(?) 역설도 느끼지 못한 채 현대인들은 내달리며 살아가는 듯 합니다.

저도 밥벌이하고 먹고는 살고 있지만, 남은 생애... 가급적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 그분께 가까이 가는 데, 책 읽고 공부하는 데 

써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꾸준히 다비아 글을 읽고 한번 더 기억하고 다짐하는 게 저에겐 수행입니다. ㅎㅎ

오직 영혼의 만족과 안식 만을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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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25.01.17 21:01:40

앗, 15년 전 글이군요. 

오십대 후반이라는 시절이 나에게 있었는지도 가물가물합니다.

저 글이 사십대에 들어선 좋은나무 님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대구성서아카데미를 지금까지 끌어온 보람이 느껴지는군요. ㅎㅎ

겨울인데도 봄처럼 따뜻한 오늘 같은 날을

우리가 누릴 수 있다는 이 사실이 얼마나 황송하고 황홀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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