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적어도 한 통의 성탄절 편지를 받게 될 거야. 나는 이미 나의 석방을 믿지 않아. 원래는 내 생각으로 12월17일부로 석방되게 되어 있었어. 그러나 당국은 나를 계속 가둬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것 같아. 지금 예측으로는 수개월, 아니면 수 주간 여기에 있게 될 거야. 최근 수 주간 동안 없었던 정신적인 고뇌를 겪었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자네도 조만간 견디기 힘든 일에 부딪칠 거야. 나는 지금 이 사실을 바꿔보려고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하고 나서 그것이 허사가 되고 말았을 때 그것을 견디는 것이 훨씬 쉬울 테니까 말이야. 우리 앞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단순히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마 10:29) 나는 그것이 불행한 일이라 하더라도 모든 사건을 꿰뚫고 하나님에게 이르는 길이 있다고 생각해.(1943년 12월 18일)

 

 

     이 편지를 쓰고 있던 본회퍼는 37살이오. 20대 후반부터 대학선생을 했으니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었겠지만, 젊은 나이는 어쩔 수 없는 거요. 1943년 12월 17일에 석방될 줄로 알았나 보오. 그가 사태를 좀 낭만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증거가 아닌가 모르겠소. 어쨌든지 그 예측이 어긋났으니 그가 얼마나 실망했을지 그대도 짐작할 수 있을 거요. 이 편지를 받아볼 친구인 베트게도 감옥에 있소. 베트게는 나중에 석방이 되었지만 본회퍼는 사형을 당했소. 전해지는 말로는 그가 감옥에서 다시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했다는구려. 그게 얼마나 정확한 사실인지를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소.

     본회퍼는 석방 예측과 그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했다오.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서 투쟁한 자신에게 감옥이라는 운명이 왜 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자기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고뇌에 찬 것 같소. 그는 하나님의 뜻을 두 가지로 보고 있소. 하나는 우리 운명의 모든 것을 무조건 하나님의 뜻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오. 신앙인들은 상투적으로 모든 걸 하나님의 뜻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소. 마치 키가 작아 포도를 따먹지 못한 여우가 “저 포도는 시어서 먹을 수 없어!”라고 자기를 합리화하듯이 말이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요. 이 두 가지가 모순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오. 훨씬 깊은 영성을 말하는 거요. 이 영성이 무엇인지는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전하는 것으로 충분한 대답이 될 거요. “ 나는 그것이 불행한 일이라 하더라도 모든 사건을 꿰뚫고 하나님에게 이르는 길이 있다고 생각해.” 잘 자시오. (2010년 5월5일, 수요일, 어린이 날, 시원한 밤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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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10.05.06 05:54:02

산에 안개와 구름

조금씩 내리는 비, 그리고 새울음 소리가 반갑게 들려오는

아침입니다.

 

오늘도 나의 삶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조용히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본훼퍼의 옥중서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네요^^

 건강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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