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30주년

조회 수 2464 추천 수 2 2010.05.18 21:33:14

 

     그대는 오늘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 30주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거요. 그 당시 나는 광주에 있었소. 군목으로 입대하기 위해 보병학교에서 세 달 동안 군사 훈련을 받을 때요. 우리 교육생들은 교관들을 통해서만 그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었소. 어떤 정보가 주를 이루었을지는 불을 보듯 할 거요. 그 항쟁에 나선 이들은 모두 폭도라는 거였소. 깡패, 넝마주이, 부랑자들이 앞장서서 폭력 시위에 나섰으며, 북한이 보낸 간첩들에 의해 부화뇌동했다는 거였소. 당시 정부는 광주를 고립시킨 채 이런 일방적인 정보만 모든 매스컴에 내려 보냈소. 당시 신문을 꺼내보시구려.

     역사적 심판은 새롭게 내려졌소. 30년 전 광주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항쟁은 말 그대로 민주화운동이었소. 딱하지만 아직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분들이 있긴 하오. 그런 분들은 삼일운동도 부정하는 게 차라리 정직한 태도가 아닐까 하오. 대한민국 군인들에 의해서 대한민국 국민 수백 명이 죽임을 당한 사건을 외면한 채 우리가 어떻게 역사를 말할 수 있겠소. 물론 군인들도 상당수 죽었소. 이명박 대통령은 방글라데시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이유로 이번 30주년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소. 대신 총리가 기념사를 읽었소. 기념 식순에 유가족 단체가 원하고 지난 기념식 때마다 행해왔던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뺐다고 하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 어떤 식으로 파급효과를 내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오. 유구무언이오.

     오늘 그때 내가 쓴 일기를 꺼내보았소. 대략 일주일 동안 그 문제로 괴로워하던 모습을 볼 수 있었소. 교관들이 일방적으로 전하는 정보에 갇혀 지낸 탓에 상황을 파악하기도 어려웠소. 부끄럽긴 하지만 당시 27살 젊은 초짜 목사의 세상을 보는 눈이라 생각해주시오. 하루치의 일기만 글자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읽어보겠소. ‘임을 위한 행진곡’을 올려놓을 테니, 마음이 동하면 한번 따라서 불러 보시구려.

임을 위한 행진곡(1).htm

 

5월23일, 14:00, 金

상무대 제7 연병장. 보병학교에 근무하는 기간 사병 집결. 저들까지 출동하다.

병력을 실을 4톤 트럭이 줄을 잇다. 시커먼 먼지를 일으키며 연병장을 크게 한 바퀴 돌아 일렬횡대로 정렬하다.

탄약상자를 싣다. red cross 완장을 두른 의무사병. 한쪽 어깨에 구급운반 베드를 둘둘 말아 맨다. 방위병까지 물자를 나른다.

분주한 헬기의 飛翔.

오늘은 D-day. 시가전을 불사하고 양평에서 내려온 20사단이 시가로 진입한다. 기간 사병들이 광주진입 주요 5개 도로를 봉쇄하러 출동하다. 4천여 명의 공부수대가 이곳에 왔다는 소문. 공수부대 목사님이 오시다.

트럭에 오르내리는 사병들. 방금 세 발의 오발 사고가 나다.

계속 줄지어 군인들이 모여든다. 무서운 싸움 준비. 지휘관들의 숨 가쁜 욕설.

조금 전 점심식사 시간에 본보중대 사열대 앞을 지날 때 두 손을 뒤로 묶이고 허름한 옷차림에 머리를 땅에 처박고 꿇어 엎어져 있는 세 명의 젊은이를 보았다. 마치 베트공을 잡아 두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4명의 군인이 ‘우어깨총’으로 지키고 있다. 불쌍한 녀석들. 멋도 모두고 쫓아다니다가 잡혀온 놈들. 생명의 가치가 없는 곳. 인권이 무시되는 세상. 인간보다 총과 칼이 더 귀한, 지랄하는 세상.

김대중이가 각대학 학생회단장을 돈으로 지원하여 시위운동을 주도했다는 소식이다. 그의 집에서 50억의 현금이 發見되었다고.

오늘 광주市는 전쟁터로 화한다. 싸움하는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선량이 죽을 것이다.

저들은 폭도라고 한다. 불순세력의 후원과 조종에 의해 不義를 저지르는 무리라고. 구두닦이, 운전사, 음식점 종업원 ... 사회적으로 저변에 있는 인사들이라고. 무식한 人間들이라고. 사리를 분간 못 하는 우매한 者들이라고.

과연 그럴까? 아니다. 역사에서 어느 운동이고 절대적으로 순수할 만은 없는 것이다. 광주 市에서 일어나고 있는 투쟁이 어느 정도 과격하고 감정적인 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저들만이 폭도요, 불순분자요, 파괴자들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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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3]달팽이

2010.05.18 21:57:24

목사님 그 젊은 나이에도 예리한 통찰로 꿰뚫어 보시고 있었네요.

험난한 시간 견디어 낸다고 고생하셨습니다.

역사는 참으로 무섭고 정의로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늘 희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루종일 눈물같은 비가 내리더군요....

우리의 형제 자매들의 고귀한 희생들을 생각하며....

 

[레벨:4]danha

2010.05.19 12:01:57

갑자기 궁금해서 묻씁니다.

죽은사람은 시간과공간 밖에 존재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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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0.05.19 23:16:07

danha 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대해서

저도 갑작스러운 정도로 대답하겠습니다.

질문에 세 가지 키워드가 나오는 군요.

죽음, 시공간, 존재.

각각의 개념이 우주와 같은 넓이와 깊이가 있는 거라

어떻게 접근하는 게 좋을는지요.

다 생략하고 저의 입장에서 대답만 합니다.

죽은 사람은 당연히 시공간을 떠납니다.

지금 우리가 묶여 있는 시공간과는 다른 존재방식이라는 뜻이에요.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시공간은

이 세상의 존재방식입니다.

우리가 살아있을 경우에만 여기에 의존해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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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떡진머리

2010.05.21 23:40:42

음~

생사여일(生死如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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