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서간(11)

조회 수 2799 추천 수 1 2010.05.26 23:04:12

 

공습경보에도 불구하고 자네들이 성령강림절의 고요함과 아름다움을 만끽하기 바란다. 확실히 사람들은 삶의 위협에 직면해서 내면의 세계와 거리를 두는 것을 배운다. 거리를 둔다는 말은 너무 형식적인, 부정적인, 기교적인, 너무 스토아적인 것처럼 들린다. 차라리 사람들은 이런 나날의 위협을 그의 삶 전체 안으로 끌어들인다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내가 여기서 관찰해 보건데 여러 가지 것을 동시에 마음에 지닐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비행기가 오면 그들은 그저 무서워하고, 무언가 맛있는 것을 먹을 때는 그저 식욕에 충실할 뿐이다. 희망이 사라지면 절망하고, 약간 이루어지면 그 이외의 것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삶의 풍요와 자기 존재의 전체성을 보지 않고 스쳐지나간다. 그들에게는 객관적인 것, 주관적인 모든 것이 해체되어 산산조각이 났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동일한 시간에 많은 다른 삶의 차원을 살아간다. 하나님과 전체 세계를 자기 안에 지니고 있다. 우리는 우는 자들고 함께 울고, 동시에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한다. 우리는 자기의 생명을 걱정한다. 그러나 종시에 우리 생명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상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본회퍼, 옥중서간, 194쪽, 1944년 5월25일 편지)

 

     그대는 위 글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소. 어떤 구절이 마음에 와 닿소? 나에게는 기독교인들은 삶의 여러 차원을 동시에 살아간다는 말이 기억에 남소. 눈앞에 벌어지는 일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거요. 이런 삶의 태도가 그렇게 쉽게 주어지는 건 아니오. 삶을 전체적으로 보는 훈련이 필요하오. 영성은 바로 이런 능력을 가리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하나님의 시각으로 나 자신의 실존을 성찰하는 게 영성 아니겠소. 당장 당하는 아픔이 힘들다고 하더라도 역시 삶을 전체로 바라볼 수 있는 영적 능력이 있다면 그런데서 벗어날 수 있소.

     오늘 교회의 신앙생활은 오히려 신자들을 부분적인 것에 매달리게 하는 것 같소. 무언가에 열광적으로 취하게 만든다는 거요. 교회 프로그램을 보시구려. 교회 본질과 상관이 없는 일들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소. 그런 일들이 없으면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요. 한국교회가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교회당 건축만 해도 그렇소. 한국의 전체 교회를 염두에 둔다면 지나친 교회당 건축은 아예 꿈도 꾸지 않을 거요. 모두 자기 교회에만 관심을 기울이니까 전체 교회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요. 마치 경주마와 비슷하오. 옆의 말을 볼 수 없도록 가면을 쓴다하지 않소. 한곳만을 향해서, 그 한곳이 바로 교회 자체인데, 무조건 달리기만 할 뿐이오.

     그대는 본회퍼의 충고대로 삶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면서 살아가도록 하시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시구려. 그런 훈련의 첫걸음은 좋은 신앙서적을 읽는 거요. 약간 신학적인 바탕이 갖춰진 책을 읽도록 하시오. 책읽기를 통한 인식의 변화가 없으면 새로운 영적 시각을 얻을 수 없을 거요.(2010년 5월26일, 수요일, 구름,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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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3]토토

2010.05.27 12:12:47

이 글이 좋은 신앙서적이 아닌가요?

전 그렇게 생각하며 매일 대하고 있는데요,

 

[레벨:5]오영숙

2010.05.27 16:25:28

좋은 "신앙서적" 만이 아니라,

좋은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신앙서적'의 개념이 문제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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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떡진머리

2010.05.28 01:27:52

교회건축은 각 시대적 상황에 따른 의미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로마네스크 성당, 고딕양식의 성당, 르네상스 시대의 성당, 바로크 양식의 성당 등은 각각의 역사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특히 국가권력이 바티칸으로 부터 벗어나기 시작해 성당의 건물이 세속화되기 시작하는 바로크 시대 이후 부터는 종교적 힘과 우주질서의 이성과 신앙적 의미를 드러내고자 했던 그 이전의 시대와 달리 절대권력자의 세속적 영광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사회의 대형교회의 건축 또한 시대적 의미를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도덕적 대면에 아랑곳 하지않고 자본주의적 성공을 이룩해나가는 한국 자본주의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이러한 교회들 또한 자본주의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고 그 안에 있는 교인들 또한 신의 축복으로 착각하는 교회의 규모에 안주하며 위로받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러기에 현대 한국교회는 형식미적 양식보다는 곧 크기가  양식이 되어버렸습니다.

크고 화려하며 생산성(?)을 갖추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권력-성당-교인.

자본-교회-교인.

이러한 접속으로 연결되는 교회건축의 부정적 문제는 비단 지금 한국사회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를 무척이나 많이 거슬러 올러가 살펴보고 반성해야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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