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서간(6)- 비종교화(2)

조회 수 2786 추천 수 4 2010.05.11 23:18:46

 

중요한 질문은 비종교화의 세상에서 교회와 설교와 예전,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이다. 우리는 종교 없이, 다시 말해 형이상학이나 내면성 등등의 시간적으로 제약된 전제 없이, 어떻게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세속적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인지 모른다. 우리는 비종교적인, 세속적인 그리스도인이 될 것인가? 우리가 종교적으로 대우 받는 자리를 떠나서 온전히 세상에 속해 있는 자로, 그리고 에클레시아라는 단어가 가리키고 있듯이 부름을 받은 자가 될 것인가? 그리스도는 이미 종교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과는 전혀 별개로 이 세상의 주이다. 그것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비종교적인 세상에서 예배와 기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44년 4월30일)

 

 

     본회퍼가 사용하는 단어 ‘무종교적’이라는 독일어는 religionslos요. Religion은 종교라는 뜻이고, los는 없다는 뜻의 접미사요. 직역하면 ‘종교 없는’이라는 뜻이오. 종교가 없으니 ‘무종교적’이라고 말해도 좋소. 나는 경우에 따라서 이 세 가지를 섞어서 쓰겠소.

     그대는 본회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오? 저 사람은 믿음이 없는 것 같군. 신학자들은 골치 아프기만 하지 실제 신앙생활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말만 하는군. 그래서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대충 이런 생각이 드오? 아니면 본회퍼가 새로운 시대에 직면해한 그리스도인들이 대답해야 할 핵심적인 질문을 정확하게 제시했다고 생각하시오. 그대는 이런 문제의식을 귀찮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믿소. 무조건 ‘예수천당 불신지옥’ 하는 식으로 믿으면 속이 편하긴 할 거요. 그렇다고 해서 뭐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소. 우물 안의 개구리로 살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오.

     한 가지만 생각해봅시다. 지동설과 진화론은 지성의 시금석이오. 오늘의 새로운 세계관이오.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이 두 가지를 구별해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소. 지동설은 인정하지만 진화론은 받아들이지 않소. 아주 극소수이지만 지동설마저 받아들이지 않는 그리스도인들도 있긴 하오. 어쨌든지 지동설이나 진화론을 모른다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그냥 먹고 사는 데는 큰 문제는 없소. 그러나 그것을 모르는 것이 큰 자랑은 아니오.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을 거요.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오. 코페르니쿠스 이후에는 천동설과 다른 지동설로 태양계를 설명해야 하듯이 전형적인 종교성 이후를 살아가는 현대에는 새로운 신앙 언어가 필요하다는 거요. 그것이 곧 본회퍼가 주장하는 기독교의 비종교화요.

     지난 십 수 년 간 기독교의 근본을 훼손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소. 기독교와 기독교적인 신을 부정하는 책들이오. 종교현상도 유전공학으로 설명하고 있소. 본회퍼가 염려하던 것보다 훨씬 나쁜 상황이 시작되었소. 오늘 교회는 그들에게 어떻게 기독교를 변증해야 하는 거요? 오늘 교회 현장에서는 이런 준비가 전혀 없소. 문제의식도 없소이다. 그저 예수 믿고 복 많이 받아 잘 살다가 천당 가는 것만을 목표로 교회가 작동되고 있소. 그런데도 여전히 교회가 운영되는 이유는 신자들이 기독교를 진지하게 대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종교적 교양으로 대하기 때문인 것 같소. (2010년 5월11일, 화요일, 찔끔 비, 햇빛, 바람, 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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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4]임마누엘

2010.05.25 17:59:40

지난 십 수 년 간 기독교의 근본을 책들이 쏟아져 나왔소.

이 부분에서 흔드는...이라는 단어가 빠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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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0.05.25 18:30:57

앗, 그렇군.

고쳐 놓겠소.

당케 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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