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일차 전도여행 완료
(행 14:21-28)        
9월5일


여행보도의 근거(?)
오늘 본문은 전체 28장에 이르는 사도행전의 반 토막이 정확하게 끝나기도 하고, 사도행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바울 전도 여행의 일차분이 끝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누가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사도행전의 저자는 이 바울의 전도여행에 관한 자료를 어디서 얻은 것일까? 그리고 그 자료는 얼마나 정확한 것이며, 그 자료와 저자의 추정 보도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앞에서 우리는 이런 문제를 부분적으로 다루기도 했고, 그리고 어떤 점에서는 이런 문제가 우리의 공부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에 굳이 자세하게 논의할 필요는 없다. 다만 약간 비정상적인 본문 전개와 맞물려 있는 부분만 간단하게 검토하자.
일단 1차 여행은 나머지 2,3차 여행에 비해서 매우 단조롭다. 지역적으로 볼 때도 2,3차는 그리스 지역으로 확장되었는데 반해서 1차는 키프로스 섬과 비시디아에 한정되었다. 물론 그들이 자신들의 전도 프로그램에 따라서 그렇게 움직였을 뿐이라고 주장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다른 성서와 마찬가지로 사도행전도 역시 사실보도가 아니라 저자의 해석이 관건이라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 오늘 본문을 따른다면 바울과 바나바는 ‘데르베’에서 가서 전도한 다음에 왔던 길을 거꾸로 리스트라, 이고이온, 안티오키아, 베르게, 아딸리아를 거쳐 그곳에서 배를 타고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로 돌아왔다. 이런 여행 흔적이 조금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원래 출발지인 시리아 안티오키아에서 마지막 장소인 데르베까지의 여정을 도표로 그린다면 아마 ‘ㄷ’ 모양일 것이다. 그들은 데르베에서 시리아 안디오키아로 직접 내려올 수 있는 지름길을 마다하고, 이 지름길에는 훗날 2,3차 여행에서 전도한 도시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완전히 먼 길을 돌아온 셈이다.
그들은 왜 굳이 먼 길을 돌아왔을까? 반드시 그래야만 했던 어떤 이유를 본문은 설명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저자가 1차 여행에 관한 자료를 그렇게 풍부하게 갖고 있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학자들에 따라서 설왕설래가 많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저자는 아주 간략한 여행일지와 몇몇 전승에 바탕을 두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80-85년)의 신앙에 근거해서 이 전도 여행을 보도하고 있는 게 아닐까? 참고적으로 헨헨에 의하면 1차 여행은 15장의 예루살렘 협정 이후에 일어났던 것이라고 한다. 다만 예루살렘 협정의 실증적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서 저자가 그에 앞서 편집해 놓은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여행 이야기가 완전히 픽션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를 통해서 전승된 이런 이야기의 기본 골격은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이런 보도에는 공동체와 저자에 의해서 일정한 정도로 해석된 내용이 첨부되었다는 사실만은 인정해야한다.
이런 문제들이 오늘 성서를 읽고 공부하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성서를 읽고 은혜 받으면 충분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우리는 은혜라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한다. 텍스트의 실체적 진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내용으로도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은혜 지상주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것보다는 성서 텍스트의 지평으로 들어가는 일이 훨씬 중요하고, 훨씬 본질적이다. 우리가 은혜 받기 위해서 성서 텍스트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성서 텍스트의 지평을 살려냄으로써, 또는 그 안에 들어감으로써 진리와 만나는 것이 곧 기독교 신앙의 근본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내가 성서 ‘텍스트’라고 말하지 않고, 그 텍스트의 ‘지평’이라고 말한 것에 유의하라. 텍스트는 공동체와 저자들에 의해서 얼마든지 편집, 각색될 수 있지만, 그 안에 있는, 혹은 텍스트를 끌어가고 있는 어떤 힘들은 그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간다. 그 힘, 생명의 힘, 그 영, 거룩한 영의 자기 계시를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는 텍스트의 형식에 매달리지 말고, 그 내면으로 치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 내면의 길이 지평이다.
이런 점에서 성서 텍스트 안에, 또는 텍스트 사이에 약간의 오류나 모순이 개입해 있다고 하더라도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축자영감설은 텍스트의 ‘지평’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어리석음이다. 오늘 본문의 지평에서 우리는 무엇을 만날 수 있을까?

하나님 나라
바울과 바나바는 여행 일정을 다시 거슬러 올라갔다. 그들은 리스트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티오키아 등지에서 몇 가지 가르침을 주고, 행정적인 일을 처리하기도 했다. 그들은 각 도시에서 신도들에게 용기를 북돋으며 믿음을 지키라고 격려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고(22절) 권면하였다.
그들은 도대체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본문을 아무런 선입관 없이 읽는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죽어서 들어가게 될 어떤 곳을 의미하는 게 틀림없다. 이것은 일종의 종말론적 진술인 셈이다. 우리는 이런 구절을 읽을 때 종합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누가는 지금 자기가 전해들은 여행보도의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는 자기의 생각을 전달하고 있는가? 그 당시에 초기 기독교의 종말론은 이스라엘의 묵시문학과 어떤 유사성이 있고,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는 구약신학, 신약신학, 초기 기독교사, 조직신학의 해명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런 학문적인 부분은 접어두기로 하고, 그들은 왜 하나님의 나라와 시련을 연관시키고 있을까에 대해서만 짚어보자. 이 문제를 우리의 신앙생활과 연결시킨다면 기독교 신앙과 고난의 연관성이다. 기독교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난을 당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고난 없이도 우리는 기독적인 신앙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하나로 결정되어 있지 않다. 왜냐하면 기독교와 세계의 관계가 일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 개념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런 세상의 생명 형식과 전혀 다른 생명 형식의 세계가 이미 우리에게서 시작되었으며, 또한 그것이 완성될 때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세계가 무엇인지, 또한 어떻게 우리의 삶에 개입하는지에 대해서 인식하기 위해 우리는 보편적인 진리의 눈을 확보해야만 한다.
이런 주장에 대한 반론도 가능하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매우 단순한 명제에 집중하는 것인지 고도의 사유능력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반론 말이다. 요즘 잘 나가는 대개의 교회는 기독교 신앙을 매우 실용적이고 도구적인 구도에서 신자들의 삶과 만나게 하고 있다.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살아도 크게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복음이 이미 완료된 상품이 아니라 종말론적으로 열린 생명의 힘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건 생명의 신비를 맛본다는 것인데, 이런 사유의 깊이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시리아 안티오키아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결국 처음 출발지인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로 돌아오게 되었다. 27절 말씀을 읽어보자. “두 사도는 안티오키아에 이르자 온 교회 신도들을 모아놓고 하느님께서 그들을 도와 이루어 주신 모든 일과 또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일을 보고하였다.” 오늘 이런 보도를 읽는 우리는 바울과 바나바를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만약에 누가가 없었다고 한다면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 여행은 잊혔을지도 모른다. 역사는 늘 그렇다. 그 당시에 별 것이 아니었지만 훗날 위대한 사건이 되기도 하고, 그 당시에 대단한 것처럼 비쳐지던 것이 훗날 별 것 아닌 것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티오키아로 돌아온 이 사건이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기리 빗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이 그 당시에 누가 있었겠는가?
그들은 인타오키아 신자들에게 두 가지 사실을 보고했다. 하나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도와서 모든 일을 이루어주셨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런 보도는 바울과 바나바 사건에 대한 누가의 해석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사건과 해석은 변증법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양측이 똑같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던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그 사건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석한 누가 모두 기독교 역사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을 감당했다.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도움이라는 이런 고백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토대이다. 이 말은 결국 인간은 늘 종속 변수이고 하나님만 상수라는 뜻이다. 구약의 위대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라. 이스라엘 전승은 그들 개인의 위대성에 시선을 집중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집중했다.
다른 하나는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앞에서 언급한 적이 있겠지만, 원시 기독교 공동체 내부에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가, 아닌가로 인한 갈등이 매우 심각했었다. 그 당시 주류라 할 수 있는 팔레스틴 공동체는 이방인 선교의 필요성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부활의 예수가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행 1:8) 증인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는 보도에 따르면 원시 기독교가 이방인 선교를 시급한 과제로 여겼을지 모른다고 추정할 수 있지만, 그런 보도는 이방인 교회가 일정한 정도의 궤도에 오른 이후에 내린 해석이라는 점을 전제하고 읽어야 할 것이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구절을 보자. “그리고 거기에 있는 신도들과 오랫동안 함께 지냈다.”(28절). 바울과 바나바는 왜 1차 전도여행을 끝낸 다음에 곧 떠나지 않고 그곳에서 오래 지체했을까? 1차 여행에서 충분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또는 1차에서 너무 고생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방인 설교가 별로 급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 것을 아닐까? 그들은 이제 선교보다는 안티오키아 교회를 안정시키는 게 훨씬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그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거의 모르는 가운데,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르고 있던 누가의 간접적인 보도만 접하고 있을 뿐이다.
여러 가지 개연성을 열어놓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안티오키아 교회가 이방인 전도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그들의 관심을 통해서 하나님이 새로운 역사를 이끌어갔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거의 무의미, 불가능, 불필요할 것만 같았던 이방인 전도의 단초가 구체화, 가시화했다는 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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