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세례
우리는 지난 시간에 아폴로에 관한 바울의 직접적인 진술인 고린토전서에 근거해서 아폴로와 바울이 원시 공동체 안에서 경쟁관계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물론 바울은 자신을 씨 뿌린 사람으로, 아폴로를 물 준 사람으로 묘사함으로써 서로 협조적인 관계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어떤 갈등을 깔고 있다. 바울의 직접 진술을 보자. “나는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으로 능숙한 건축가가 되어 기초를 놓았고 다른 사람은 그 위에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집을 짓는 방법에 대해서는 각자가 신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초가 놓여 있으니 아무도 다른 기초는 놓을 수가 없습니다.”(고전 3:10,11). 이 말은 곧 그 당시의 기독교 공동체 안에 매우 다른 주장들이 전개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기본적으로 팔레스틴 유대인 기독교 공동체와 디아스포라 유대인 기독교 공동체, 그리고 이방인 기독교 공동체 사이에 일치될 수 없는 요소들이 작용했을 것이며, 그 여러 소종파 운동이 전개되었을 것이다. 그 중에는 아마 세례 요한 추종자들이 상당한 세력을 얻고 있었을지 모른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그런 흔적이 나온다. 바울은 아폴로가 고린토에 머물러 있는 동안 소아시아의 북부 지역인 갈라디아와 프리기아를 순방하고 에페소에 도착했다. 그는 이 에페소에서 12명의 신자들을 만난다. 12명이라는 숫자에 의미가 있을까? 어쨌든지 바울은 그들에게 “당신들은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우리는 성령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조차 들어보지 못하였습니다.”(2절) 하고 대답했다. 바울은 다시 그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어떤 세례를 받았습니까?” 이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3절).
복음서는 예수의 출생설화, 초기 사역과 연관해서 세례 요한을 매우 중요한 인물로 다루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요한이 예수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제시되고 있긴 하지만 예수와 요한 사이에 약간의 긴장이 있었을 가능성은 높다. 세례 요한을 따르던 군중들이 예수에게 몰려가는 것을 보고 요한의 제자들이 걱정했다는 데서(요 3:22 ff.) 이런 미묘한 경쟁 구도를 읽을 수 있다. 요한과 예수의 관계에서 가장 결정적인 대목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예수의 공생애가 요한의 투옥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요한이 예수의 메시아성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요한과 예수 사이의 관계를 지금 우리가 정확하게 재구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도 하고, 궁극적로는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다. 우리는 지금 사도들과 그 후세대 사람들에 의해서 이해되고 해석된 예수와 그 사건을 읽을 수 있을 뿐이지 실체적 사실을 읽을 수는 없다. 이렇듯 성서기자들이 오직 예수에게만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거기서 우리는 요한에 관한 정보를 부분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오늘 본문에 따르면 초기 기독교 공동체 안에 세례 요한의 영향력이 일정 부분 작용한 것 같다. 학자들 중에는 아폴로가 바로 세례 요한의 제자일지 모른다고까지 주장하는 이들도 있긴 하다. 어쨌든지 에페소 공동체 교우들이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는 말은 곧 초기 기독교 공동체 안에 세례 요한의 전통이 여전히 살아있었다는 의미이다. 요단강에서 회심의 세례를 베풀던 세례 요한의 전통에 따라서 그런 세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기독교 공동체 안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그런 전통을 행사하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예수를 믿으면서도 요한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게 오늘 우리의 시각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겠지만, 그 당시의 공동체가 기독교적인 전통을 확립하고 있지 못했을 때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예수의 세례
원래 세례는 요한의 전통이다. 복음서에도 예수는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지 자신이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말이 없다. 예수의 제자들이 세례를 베풀기는 한 것 같다. 어떤 점에서 보면, 초기 기독교 공동체도 세례를 그렇게 중요한 의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고린토에서 “그리스보와 가이오 밖에는 아무에게도 세례를 베풀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고전 1:14)는 바울의 진술에서 이런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사도행전에는 세례 행위가 자주 등장하지만 우리는 이런 문제에서도 사도행전의 집필 연대가 80년대라는 사실을 감안해야만 한다. 아마 기독교 공동체가 시간이 지나면서, 즉 어떤 집단과의 경쟁을 거치면서 세례 의식을 자신들의 중요한 종교 의식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요한의 세례로부터 예수의 세례로 넘어오는 그 중간 과정에 어느 정도 시행착오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특히 아폴로와 연관된 사도행전의 보도는 이런 모순을 숨기지 않고 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검토한 아폴로는 에페소에서 큰 역할을 감당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누가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요한의 세례밖에 알지 못했으나 이미 예수의 가르침을 배워서 잘 알고 있었고, 정확하게 가르치던 인물이었다. 이 말은 곧 기독교 신자가 된다는 것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과는 구별된다는 의미이다. 한 사람의 기독교 신자가 세례는 요한의 전통에 따라서 받으면서도 예수를 믿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이게 말이 되는 걸까? 더구나 이 아폴로에게 하나님의 가르침을 자세하게 설명한 아퀼라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아퀼라는 세례를 줄만한 자격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폴로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지 않고 에페소 교회의 추천서를 받아 고린토 교회에 가서 활동했다는 사실이 해명되는 건 아니다. 만약 그 당시에 예수의 세례가 필수적인 것이었다고 가정한다면 누가는 분명히 아폴로가 세례를 받은 것으로 설명했을 것이다.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는 에페소 신자들의 말을 듣고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한은 사람들에게 죄를 회개한 표시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실 분, 곧 예수를 믿으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쳤던 것입니다.”(4절). 이 구절은 예수의 공생애 동안에 구원의 중심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예수에게로 이동되던 것처럼 이제 초기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세례 의식이 요한으로부터 예수에게도 이동했다는 단서이다. 이동이라는 말은 그 두 인물 사이에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동시에 작용한다는 뜻이다. 세례 요한은 부분적으로 예수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그런 영향을 받은 예수는 요한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역할을 감당했다. 우리는 기독교가 초역사적으로 등장한 게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 안에서 출현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유대교와 세례 요한의 전통이 예수 사건과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성령과 세례
바울의 설명을 들은 에페소 신자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바울이 그들에게 손을 얹자 성령이 그들에게 내렸다고 한다. 성령을 받은 그들은 “이상한 언어”로 말을 하고 예언하기 시작했다. 누가의 설명에 따르면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 받는다는 건 곧 성령을 받는다는 것이며, 그것의 증거는 방언에 있는 셈이다. 세례가 곧 성령과 연관된다는 건 바울의 첫 질문에서 이미 암시되어 있다. “당신들이 신도가 되었을 때 성령을 받았습니까?”(2절). 우리는 지금 세례, 성령, 방언의 연관성이라는 매우 복잡한 사태에 직면했다. 도대체 이 세 요소가 어떻게 연관된다는 말인가?
이 문제를 오늘 우리가 완전하게 풀어내기는 힘들지만 우선 그리스도인과 성령의 관계로부터 풀어나가자. 누가는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해서 무조건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본다면 이건 그렇게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성령이 이끌지 않는다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본문은 분명히 성령을 들어본 적도 없지만 신자가 된 사람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 무슨 사연이 숨어 있는가? 첫째, 우리는 오늘 본문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차원에서 예수에 대한 믿음과 성령 체험을 구분할 수 있다. 예수를 자신의 의지로 받아들였지만 내면세계가 영으로 가득하지 못하다면 그는 성령을 경험한 사람이 아니다. 둘째,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 가운데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단지 형식적인 신앙에 불과하다. 흡사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경험하기 이전의 사도들과 비슷하다. 위에서 제시한 첫 번째 설명은 인간의 믿음과 성령의 활동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것이며, 둘째 설명은 인간의 한계를 전제하는 것이다. 셋째, 누가가 보는 성령의 능력은 엑스타시의 경험으로 나타난다. 에페소 신자들이 예수를 충분하게 인식하고 믿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어떤 엑스타시의 현상들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성령이 활동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에 이런 엑스타시는 주로 방언으로 이해되었다.
성령과 방언의 관계는 초기 기독교가 놓인 ‘삶의 자리’가 톡톡히 한몫 했을 것이다. 그 당시에 하나님의 영이 활동한다는 증거가 가장 정확하게 나타날 수 있는 부분이 신유나 방언 같은 현상들이었다. 사도행전에는 이런 현상들이 꾸준하게 제시되고 있으며, 고린토 교회에도 이런 현상들이 열광적으로 일어났다. 그렇지만 방언에 대한 고린토 편지의 입장과 사도행전의 입장 사이에는 작은 차이가 보인다. 사도행전은 그런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고린토 편지는 그것이 일으키는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오늘 우리는 성령과 방언의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방언을 통해서 성령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가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도 그들과 똑같이 방언을 통해서 성령을 경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더구나 방언 현상은 기독교 안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그것의 절대화는 매우 위험하다. 바울도 이미 방언이 단순히 종교적 열광주의로 흘러들어가는 위험성을 경고했다. 방언 현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초기 기독교인들이 생명의 영을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에서 생생하게 경험했다는 게 중요하다.
누가는 지금 이런 본문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그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 안에 벌어졌던 “세례파”라는 소종파가 바울에 의해서 극복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당히 완곡한 어법으로 해명하고 있다. 이는 흡사 헬라 공동체의 분리 사건을 미화한 일곱 집사 사건(행 7장)과 비슷하다. 기독교는 이런 논쟁 과정을 통해서 성장해 왔는데, 이런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종말까지 그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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