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공동체 설림
누가가 설명하고 있는 바울의 선교여행은 3차로 구분되는데, 각각의 일정마다 지역적인 특징이 있다. 1차는 주로 비시디아 안티오키아와 그곳의 동쪽 지역이며, 2차는 빌립보와 고린토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지역이고, 3차는 주로 에페소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18장 후반부터 20장에 이르는 일정에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방문은 주마간산 격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에페소에서의 활동은 매우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바울이 3차 여행에서 실제로 이런 비중에 따라 여행했는지 우리가 확인할 길은 없다. 누가는 자기 손에 들어온 몇몇 전승을 기초로 해서 바울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주로 다루었을 것이다. 그것이 3차에서는 에페소에서의 활동이었다. 누가의 편집 의도가 개입되었기 때문에 본문 진행이 별로 매끄럽지 못한 경우가 왕왕 등장한다. 그 내용을 찾아보자.
바울은 석 달 동안 회당을 드나들며 말씀을 증언했다고 한다. 바울의 전도를 받은 그들은 마음이 굳어져서 기독교를 비난했다. 바울은 어쩔 수 없이 그들과 손을 끊고 신자들을 데리고 나가 디란노 학원에서 날마다 토론을 벌였다. 여기서 디란노는 그 당시 선생 이름이었는지, 강당 주인 이름이었는지, 단지 ‘디란노 강당’이라는 건물 이름이었는지 정확하지 않다. 누가는 바울이 이런 방식으로 2년 동안 말씀을 전했으며, 결과적으로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모두 이 말씀을 전해 들었다고 설명한다. 이런 보도를 그대로 따른다면 바울은 회당에서 석 달, 디란노 강당에서 두 해 동안 복음을 전했으며, 상당히 큰 전도성과를 거둔 셈이다. 회당에서의 선포가 실패하자 바울이 사람들을 데리고 나갔다는 말은, 요즘 식으로 신자를 데리고 나가 교회를 개척했다는 뜻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18:24-28과 19:1-7은 에페소에 기독교 공동체가 설립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에페소 교회에는 아폴로, 아퀼라, 브리스킬라 같은 지도자들이 일정한 지도자 역할을 했으며, 고린토 교회로 사역지를 옮기는 아폴로에게 추천서를 에페소 교회의 이름으로 써줄 정도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에페소는 이미 기초가 탄탄한 교회였을 것이다. 이렇게 기존의 기독교 공동체가 설립되어 있는 마당에 바울은 무슨 이유로 회당에 들어갔으며, 그들 중의 일부를 데리고 나와 교회를 개척했을까? 이 대답은 아주 분명하다. 누가는 지금 초기 기독교의 객관적인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바울이 그 당시 기독교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변증하는데 가장 큰 관심이 있었다. 바울이 2차 선교여행 말미에 에페소에 잠시 들렸다는 사실(18:19-21)도 이런데 이유가 있다. 결국 바울에 의해서 “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10절).

바울을 통한 기적
누가는 바울에게 말씀의 능력만이 아니라 ‘기적’이 따랐다는 사실을 전함으로써 바울의 위치를 강조하고 있다. 11-20절 사이에 묘사된 그 내용은 세 가지다.
1) 질병 치유: 바울의 몸에 닿았던 수건이나 앞치마를 병자에게 대기만 해도 병이 낫고 악령들이 쫓겨 나갔다고 한다. 도대체 누가는 어떤 정보를 근거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 더 근본적으로,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난 것인가? 혈루증을 앓고 있고 여자가 예수의 옷자락에 손을 대고 치료받은 이야기가 복음서에 나오고 있긴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오늘 본문 보도는 과장된 것 같다. 아마 바울 추종자들이 바울의 영적 카리스마를 높이는 과정에서 이런 전승들이 전해진 게 아닐까 한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박태선의 전도관에는 그가 세수한 물을 마시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었다.
2) 축귀 이야기: 악령을 추방하는 바울의 능력이 입소문을 타자, 악령 추방자들이 악령 들린 사람에게 이런 주문을 외울 정도까지 바울의 영적 카리스마가 확대되었다. “바울이 전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한다.”(13절). 그 결과에 대해서 누가가 침묵한 걸 보면 이런 주문이 신통력을 발휘한 건 아닌 것 같다. 누가는 이런 현상을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스큐아라 하는 유대인 대사제의 일곱 아들 이야기를 거론한다. 바울이 전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으려 했던 이 일곱 아들들에게 마귀 들린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예수도 알고, 바울도 잘 아는데 도대체 너희들은 누구냐?”(15절). 마귀 들린 이 사람은 대사제의 일곱 아들을 때려 눕혔다. 그들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알몸으로 도망했는데, 이 소문이 에페소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퍼졌다고 한다. 이 이야기도 사실인지 아닌지의 차원에서 접근할 수는 없다. 또는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의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도 없다. 지금 누가는 그 당시의 용어로 바울의 영적 능력을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것이다. 마귀 들린 사람의 입을 통해서 바울은 거의 예수와 동급으로 취급되고 있다. 물론 바울은 이런 비교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알지도 못했겠지만, 역사학자 누가에 의해서 그렇게 해석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다행스럽게도 이 이야기는 “주 예수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으로 정리됨으로써 바울의 신성화는 일정한 선을 넘지 않는다.
3) 마술 책: 스큐아 대사제의 일곱 아들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많은 신자들이 자신들의 그런 마술 행위를 자백했다. 그들이 그 당시에 예수를 믿으면서도 그런 행동을 끊지 못한 건지, 아니면 예수 믿기 이전의 일을 자백한 건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쨌든지 습관적으로 악한 영에 사로잡히던 태도를 돌이킨 것만은 분명하다. 만약 마술이 속임수나 숙명주의라고 한다면 오늘도 많은 신자들이 이런 마술에 기대서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돈일 수도 있고, 자식일 수도 있고, 권력일 수도 있고, 유행일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티브이에 나오는 광고를 보고 자동적으로 구매욕을 느끼거나, 더 나가서 그것에 시달린다면 그건 곧 마술에 빠지는 현상과 같다. 왜 인간은 마술에 ‘혹’하는 것일까? 그 무엇보다도 이 세계의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하는 게 두렵다는 게 그 이유이다. 마술행위에 대한 자백에 이어 마술사들이 마술책을 불살랐다고 한다. 분서갱유(焚書坑儒)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바울의 복음에 의해서 속임수가 불에 타고 땅에 묻힌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누가는 그 책값이 오만 명의 일당이나 된다고 진술한다.
이런 특이한 사건들을 통해서 누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20절 말씀을 보자. “이리하여 주의 말씀은 줄기차게 퍼져 나가고 점점 더 세력을 떨쳤다.” 사도행전 전반에 걸쳐서 반복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이런 진술이야말로 누가의 생각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예컨대 16:5을 보라. “그래서 교회들은 믿음이 점점 더 굳건해졌으며 신도의 수효는 나날이 늘어갔다.” 물론 이 일의 선봉장은 바울이다. 우리가 초기 기독교의 역사를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본다면 바울이 살아있을 동안에는 아직 복음의 역사는 미미했으며,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하고 있는 그 시점에 이르러서야 오늘 본문의 묘사처럼 일정한 세력을 얻을 수 있었다. 어쨌든지 우리는 오늘도 말씀의 능력이 고유한 방식으로 이 세상에서 행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바울의 여행 계획
19:21,22에서 누가는 바울의 여행 계획을 간단하게 스케치한다. 바울이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 지방을 거쳐서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정은 2차 선교여행의 중심과 일치한다. 바울은 갈라디아와 소아시아에서 별로 전도의 효과를 못 보았을 뿐만 아니라 설교할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트로아스에서 신비로운 환상을 본다. 마케도니아 사람이 도와달라는 환상이었다. 바울의 마음속에는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 지방이 깊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쪽은 소아시아와 전혀 다른 문명권인 유럽, 더구나 로마와도 가까운 지역이었다. 결과적으로 기독교 복음은 이쪽 유럽에서 꽃을 피웠다. 실제로는 바울이 그쪽 못지않게 정열을 많이 기울인 소아시아에서는 현재 아무런 열매가 없다. 그것이 이슬람교의 발흥에 의한 어쩔 수 없는 결과이긴 했지만, 우리가 이런 역사를 좀 낭만적으로 본다면 마케도니아 사람이 부르는 환상,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는 대로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를 향한 바울의 마음이 이런 결과를 예상한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바울은 그리스를 거친 다음에 무슨 이유로 예루살렘으로 갈 생각을 했을까? 고전 16:1-12은 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바울은 갈라디아 지역과 마케도니아 지역의 교회와 마찬가지로 아카이아 지역인 고린도 교회에서도 성금을 모을 계획을 했다. 물론 바울이 순전히 성금만을 위해서 고린토를 방문한 것 아니겠지만, 매우 중요한 목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 성금은 곧 예루살렘을 위한 것이었다. 바울은 원래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별로 좋은 관계는 아니었다. 사도들이 바울의 사도적 권위에 대해서 시큰둥했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 중심의 선교전략에도 큰 호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사도의 교회와 대립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근원적으로 복음의 일치 정신에 의해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모금에 적극적이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로마서에 의하면 바울은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이방인 교회가 물질적인 것으로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롬 15:25 이하).
그의 여행 일정은 예루살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로마였다. 바울은 로마 방문을 여러 번 계획했지만 번번이 좌절되었다. 로마서에 의하면 바울은 로마를 거쳐서 스페인까지 여행하려고 했다. 그 일이 이루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의 선교 계획이 그 당시 세계의 중심인 로마와 세계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스페인까지 포함하고 있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바울은 자기보다 앞서 디모테오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케도니아로 보냈다. 그들은 물론 마케도니아뿐만 아니라 고린토까지 들렸다. 그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물론 성금을 미리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그들은 고린토에서 별로 이렇다 할 소기의 성과를 올리지 못했던 것 같은데(고전 4:17, 16:10), 어쨌든지 바울은 그들을 보내놓고 에페소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는 중이다.
사도행전에는 바울에 관한 역사적 사실과 몇 가지 전승과 누가의 창작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경우에 따라서 바울은 초자연적인 능력이 따라다니는 특별한 인물처럼 그려지고 있긴 하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와 비슷한 조건 가운데서 살아간 사람이었다. 전자는 바울의 신화이며, 후자는 바울의 일상이다. 신화와 일상이 건강하게 결합되면 역사가 되고, 퇴행적으로 결합되면 미신이 된다. 기독교는 다행스럽게 역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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