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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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설교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성철 스님 지옥간 이야기가 또 나왔다...
제대로 진상을 밝힐 의도가 없다면, 이제 그만 우라묵는게 염치 있는 일일텐데...
참 염치가 없다...
성철 스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하신 "자신이 중생들을 미혹한 죄가 크다" 라고 하신 마지막 말씀은 신학대전을 쓴, 당대의 가장 뛰어난 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년에 신비 속에서 하나님의 장엄함을 보고 벙어리가 되어 자신의 업적을 다 쓰레기로 보았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또한 성철 스님의 "지옥" 이야기에서 굳이 목사님들이 교훈을 얻을려고 한다면, 비그리스도인들이 보기에도 너무나 웃음 거리가 되어버린 강단 현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신의 자리가 얼마나 엄중하고 두려운 자리인가 옷 깃을 여미는 그런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이 옳은 태도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어제는 마침 또 친한 - 거의 할말 안 할 말 흉금을 털어 놓을 수 있는 - 집사님을 통해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이 법정 스님의 책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그냥 착한 소리, 입 바른 소리, 도덕률 등 이런 수준인 줄 알았는데, 법정에게서 예수의 그림자가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아주 조심스럽게 나에게 이야기를 하셨다...
어쩌면 그 분의 실토(?)는 너무나 당연한 내면의 소리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의 외피가 아닌, 존재의 본질 그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면 진상(reality)이 있는 그대로 느껴지고 드러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왜 기독교는 그 "피상성" 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한 술 더 떠서 그 외피에다가 빨간 덧칠까지해서 보려고 하는 것일까?
예전에 순복음교회 장로인가 하는 사람이 불교 경전에 부처님이 "예수가 오면 나의 가르침은 기름이 없는 등일 뿐이다" 라고 말했던 구절이 있다면서 부처도 예수를 인정했다고 야단 법석을 떨었던 일이 있다... 사기로 판명났지만 아직도 그 것을 우라묵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진짜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김일성이 아무리 나쁜 놈이라고 해도 뿔달린 마귀의 모습으로 그려서는 안된다... 그런 식으로 계속 보는 버릇을 들이면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보는 눈을 잃어버리게 되고, 우리 마음에 안드는 다른 모든 것들을 삐뚤어진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 자신들도 진리에서 멀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제대로 진상을 밝힐 의도가 없다면, 이제 그만 우라묵는게 염치 있는 일일텐데...
참 염치가 없다...
성철 스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하신 "자신이 중생들을 미혹한 죄가 크다" 라고 하신 마지막 말씀은 신학대전을 쓴, 당대의 가장 뛰어난 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년에 신비 속에서 하나님의 장엄함을 보고 벙어리가 되어 자신의 업적을 다 쓰레기로 보았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또한 성철 스님의 "지옥" 이야기에서 굳이 목사님들이 교훈을 얻을려고 한다면, 비그리스도인들이 보기에도 너무나 웃음 거리가 되어버린 강단 현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신의 자리가 얼마나 엄중하고 두려운 자리인가 옷 깃을 여미는 그런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이 옳은 태도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어제는 마침 또 친한 - 거의 할말 안 할 말 흉금을 털어 놓을 수 있는 - 집사님을 통해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이 법정 스님의 책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그냥 착한 소리, 입 바른 소리, 도덕률 등 이런 수준인 줄 알았는데, 법정에게서 예수의 그림자가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아주 조심스럽게 나에게 이야기를 하셨다...
어쩌면 그 분의 실토(?)는 너무나 당연한 내면의 소리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의 외피가 아닌, 존재의 본질 그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면 진상(reality)이 있는 그대로 느껴지고 드러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왜 기독교는 그 "피상성" 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한 술 더 떠서 그 외피에다가 빨간 덧칠까지해서 보려고 하는 것일까?
예전에 순복음교회 장로인가 하는 사람이 불교 경전에 부처님이 "예수가 오면 나의 가르침은 기름이 없는 등일 뿐이다" 라고 말했던 구절이 있다면서 부처도 예수를 인정했다고 야단 법석을 떨었던 일이 있다... 사기로 판명났지만 아직도 그 것을 우라묵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진짜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김일성이 아무리 나쁜 놈이라고 해도 뿔달린 마귀의 모습으로 그려서는 안된다... 그런 식으로 계속 보는 버릇을 들이면 우리는 있는 그대로를 보는 눈을 잃어버리게 되고, 우리 마음에 안드는 다른 모든 것들을 삐뚤어진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 자신들도 진리에서 멀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정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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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처럼 님,
진상이 리얼리티로 영역이 되는군요.
참된 상이니, 그럴 수가 있겠네요.
살아있는 한 아무도 진상을 볼 수 없겠지요?
드러나면 이미 진상이 아니니까요.
라디오로 들었다고 하는 설교 말입니다.
그런 수준의 설교는 이제 아예 접어두는 게 좋겠어요.
뭘 모르고 떠드는 분들의 설교를 놓고 말해봐야
우리 영성만 거칠어지고 말 겁니다.
첫날처럼 님 정도의 내공이 있는 분이라고 한다면
최소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나 바르트나
몰트만이나 판넨베르크의 설교를 들으셔야겠지요? ㅎㅎ
진상이 리얼리티로 영역이 되는군요.
참된 상이니, 그럴 수가 있겠네요.
살아있는 한 아무도 진상을 볼 수 없겠지요?
드러나면 이미 진상이 아니니까요.
라디오로 들었다고 하는 설교 말입니다.
그런 수준의 설교는 이제 아예 접어두는 게 좋겠어요.
뭘 모르고 떠드는 분들의 설교를 놓고 말해봐야
우리 영성만 거칠어지고 말 겁니다.
첫날처럼 님 정도의 내공이 있는 분이라고 한다면
최소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나 바르트나
몰트만이나 판넨베르크의 설교를 들으셔야겠지요? ㅎㅎ
진상이라는 말은 어쩌면 리얼리티라는 말보다도 더 근본적인 의미일 수가 있겠네요...
라디오 설교라는 게, 차를 타면 민족정론 CBS를 주로 들으니까 운전하다보면 제 의지와 관계 없이 그냥 듣게 되는 때가 종종 있어요...
될 수 있으면 귀 안 버리려고 애를 쓰긴 하는데 ㅋㅋㅋ...
에크하르트의 설교와 매튜 폭스의 주석이 같이 있는 책을 읽어보고 있는데, 진도가 참 안나가지만 얻는 것이 참 많아요...
眞相...
에크하르트는 이 진상을 "존재"(is-ness)라고 이야기하네요...(존재를 existence 라고 하지 않고 is-ness 라고 표현한 것이 아주 인상 깊구요... existence가 존재한다는 "행위"의 의미, 외형적 의미가 느껴진다면, is-ness 는 존재한다는 "상태"의 의미, 내면적 의미가 느껴지거든요.)
"드러나면 진상이 아니라" 고 하시는 말씀도 거의 비슷하게 에크하르트의 책에서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생명 - 여기서는 목숨을 말하는 거 같아요 - 을 가진 피조물일수록 존재에서 멀어지고, 생명이 없는 돌이나 이런 것일수록 존재에 더 가깝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순교자들은 생명을 잃었지만, 존재를 얻은 자들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영생은 생명의 측면이 아닌 존재의 측면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존재에서 멀어질수록 모든 것은 빨강 파랑 처럼 다름, 이분법으로 드러나지만, 존재에 가까워질수록 같음과 일치, 통일성으로 드러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신성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런 면에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하나님은 존재다" (Deus est esse) 라고 말한 것을 넘어서 에크하르트는 "존재는 하나님이다"라고 선언한 것은 참으로 임팩트가 강하게 다가옵니다...
하이데거의 "존재" (being) 라고 하는 것도 그 뿌리가 에크하르트가 아닐까 넌지시 짐작이 되기도 합니다...
라디오 설교라는 게, 차를 타면 민족정론 CBS를 주로 들으니까 운전하다보면 제 의지와 관계 없이 그냥 듣게 되는 때가 종종 있어요...
될 수 있으면 귀 안 버리려고 애를 쓰긴 하는데 ㅋㅋㅋ...
에크하르트의 설교와 매튜 폭스의 주석이 같이 있는 책을 읽어보고 있는데, 진도가 참 안나가지만 얻는 것이 참 많아요...
眞相...
에크하르트는 이 진상을 "존재"(is-ness)라고 이야기하네요...(존재를 existence 라고 하지 않고 is-ness 라고 표현한 것이 아주 인상 깊구요... existence가 존재한다는 "행위"의 의미, 외형적 의미가 느껴진다면, is-ness 는 존재한다는 "상태"의 의미, 내면적 의미가 느껴지거든요.)
"드러나면 진상이 아니라" 고 하시는 말씀도 거의 비슷하게 에크하르트의 책에서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생명 - 여기서는 목숨을 말하는 거 같아요 - 을 가진 피조물일수록 존재에서 멀어지고, 생명이 없는 돌이나 이런 것일수록 존재에 더 가깝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순교자들은 생명을 잃었지만, 존재를 얻은 자들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영생은 생명의 측면이 아닌 존재의 측면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존재에서 멀어질수록 모든 것은 빨강 파랑 처럼 다름, 이분법으로 드러나지만, 존재에 가까워질수록 같음과 일치, 통일성으로 드러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신성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런 면에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하나님은 존재다" (Deus est esse) 라고 말한 것을 넘어서 에크하르트는 "존재는 하나님이다"라고 선언한 것은 참으로 임팩트가 강하게 다가옵니다...
하이데거의 "존재" (being) 라고 하는 것도 그 뿌리가 에크하르트가 아닐까 넌지시 짐작이 되기도 합니다...
신구약성서에 나오는 기적 처녀 잉태 등 기적이야기를 하길래 그런 이야기는 성서에만 있는게 아니다 세계 곳곳에 있었다고 하니까 그게요 집사님 그들이 다 성서에서 뻬낀거예욧! 그래서 그런 문서들은 성서 이전의 시기에도 있었고 . . 등등 석가는 예수님보다 훨 먼저 사람인데.. 하였더니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신분이니까 아니다 예수님 말을 석가가 뻬낀거다 우기기에 아뿔사! 내가 애기를 잘못 꺼냈구나 입 다물었죠 ㅋ ㅋ
어떤 말이 좋은 말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고 그 말을 누가 했느냐를 더 중시하는 내용 보다는 발설자를 그래서 발설자가 내용의 권위를 인정하는 기막힌 전도 현상이 만연한 세태! 이게 맹신자들의 전형이지요.
떠돌이 노동자로서의 삶 깊은 사색과 독학을 통해 세계적인 사상가의 반열에 오른 에릭 호퍼가 쓴 [맹신자들]이란 책이 있습니다.그가 서문에서 "나는 그저 생각을 주고 받으며 논의해보자는 것일뿐이니, 어떤 소리도 충고로 받아들이지 말지어다. 누구라도 내 말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큰소리치지는 못했으리라."라는 몽테뉴의 말이 자기의 생각을 잘 대변해주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서문의 끝을 맺었는데요
혹시 안 읽어 보셨다면....
저는 이 책을 읽고 참 예리하기가 수술실의 메스같구나! 했는데 ...책 뒷장에 뉴욕타임스에 이런 평이 "얼음 같은 기지로 빛나며....지독할 정도로 정확한 분석이 빼곡한 [맹신자들]은 이성을 깨우는 강력한 책이다."
한번 일독해 보시면 좋을것 같아서... 추천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