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안들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 되었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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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학 목사. |
사람이 죄를 지으면 두려워지는 이유는 죄의 값이 사망임을 알기 때문이고,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죽은 후 지옥이 기다리고 있음을 영혼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어느 시대에나 종교가 있었고, 죽음 이후의 영생을 사모했다. 공자는 명심보감 천명편(天命編)에서 “순천(順天)자는 존(存)하고 역천(逆天)자는 망(亡)하느니라”고 가르쳤고, 석가모니는 생사병로(生死病老)의 해답을 얻으려 출가수행의 길을 선택했다. 불교의 중심교리는 신에게 소원을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승려 혜민의 베스트셀러인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중 ‘기도하라’는 내용들이 몇 차례 발견됐는데, 불교는 정각(正覺)에 이르기 위한 선정(禪定)과 고행과 참선의 마음의 집중이다. 이 때 여실지견(如實知見)으로 진리를 깨달아 진리와 일체가 되어 고통과 공포 또는 애욕에서도 산란을 일으키지 않는 부동에 이르는 것이다. 이슬람은 마호메트의 코란을 모세오경의 율법서에 추가하여 정치와 군사력으로 살인도 서슴지 않으며, 이슬람 국가를 실현하려는 종교라 정의할 수 있다.
종교는 등산하는 것과 같다. 잃어버린 절대자, 돌아가야 할 본향을 사모하고 추구하는 본능적 욕구의 산물이다. 모든 종교는 인간 의지로 신의 영역에 도달하려는 추구이지만 기독교는 절대자 하나님이 도성인신(道成人身)하셔서 이 세상에 우리를 찾아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이외에는 구원을 얻을 이름이 없나니 천하인간에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이르지 못하느니라”고 하셨다. 그리스도 구속의 유일성은 타협할 수도, 변개하거나 희석할 수도 없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WCC는 1948년 최초 발족 이후 여러 차례 복음의 핵심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복음의 본질에서 이탈하여 현재의 심각한 갈등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그 내용을 조회해 보면 다음과 같다.
1948년 제1회 암스테르담 총회 주제를 보면, “WCC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교회의 모임”이라 했고, 1961년 제3차 뉴델리 총회에서는 “WCC는 성경에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주로 고백하며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공동 소명을 함께 수행해 나가기 위한 교회의 모임”이라고 강조했다.
제2차 1954년 미국 에반스톤 총회는 “그리스도는 세상의 소망”임을 선언했으나, “교회는 정치적 사회적 불의와 대항하여 싸우는 책임을 감당해야 하며 그리스도인들은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 굶주림과 박해받는 세계 수많은 인류를 위해 불의에 대항하는 행동이 필요하다. 사람을 교회 안으로 인도하는 선교보다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며 선교보다 사회·정치 문제를 더 크게 부각하고 여기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악을 퇴치시키기 위하여 사회주의 건설이 WCC의 지상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스탈린의 평화공존 결의안을 지지했다.
제3차 뉴델리 총회에서도 ‘세계의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어 아래 “타 종교들도 세계에 빛을 발하고 있다”며 종교다원주의를 선언했다.
1968년 7월 제4차 스웨덴 웁살라 대회의 주제는 ‘만물을 새롭게 하라’였는데, 이 대회에서는 인종차별, 경제 및 사회정의, 새 인간성 실현, 해방 등을 추구했다. 당시 필립 포터 총무는 1969년 5월 25일, LA타임스에 “만일 폭력이 경제적 정치적 독재를 전복하는 최후 수단이라면, WCC는 그 폭력을 지원해야 한다”고 기고했다. 그가 주장하는 해방이란 죄의 용서에서 얻는 자유함이 아니라, 계급사회와 자본주의로부터의 해방이었다.
1975년 11월 제5차 케냐 나이로비 대회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는 자유케 하시고 연합하신다’였다. 이 대회에는 불교와 힌두교, 이슬람교, 로마가톨릭, 유대교 대표가 참석했고, 여러 분과에서 주제를 다루었다. WCC총회 대변인인 로버트 브라운은 “기독교 신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이슬람, 힌두교, 불교 등 다른 종교 안에서도 부분적인 계시의 가능성을 인정해야 하고 다른 종교와의 대화가 필요하다. 마르크스주의 사상까지 들을 수 있어야 한다”며 공산주의도 진리의 한 범주에 포함시켰고, 인종주의와 동성애 차별 등을 비판했다.
또 필립 포터 총무는 “환경오염, 기아와 기근, 인종 차별, 인구 팽창, 전쟁무기 증가 등 사회 구조악 문제와 함께 무관심, 탐욕, 두려움, 권력욕, 인간성 상실 등 인류생존을 위협하는 이들 문제는 상호신뢰와 친교를 통해 해결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WCC의 심각한 문제점에 대해, 영국의 복음주의 신학자 존 스토트 박사는 ①WCC의 인간성 상실에 대한 인식 ②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 ③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신뢰 ④복음 전도의 절박함 ⑤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중생과 거듭남을 회복 등을 촉구했다.
1983년 7월 제6차 캐나다 밴쿠버 대회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생명’이었다. 대회 첫날 전체 회의에는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유대교, 루터교, 캐나다 원주민 등이 각자 입장을 발표하고 종교다원주의를 주제화했다. “분열된 세계에서 종교간 대화란 기독교 증거의 수단도 아니요, 그 부정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일생, 죽음, 부활의 독특함을 확신하지만 타 종교 중에도 진리를 추구하는 관점에서 하나님의 사역이 있음을 인정한다.” 둘째날에는 서방세계와 후진국 사이의 독재적 군정, 전쟁과 죽음의 비극을 주제로 급진적이고 혁명적 성향을 나타내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는 범죄에 대해서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1991년 2월 제7차 호주 캔버라 대회 주제는 ‘성령이여 오소서, 만물을 새롭게 하소서!’였다. 이 대회는 4개의 분과로 나뉘어 진행됐다. 제1분과 ‘생명의 수여자여 당신이 만물을 보호하소서!’는 생태문제, 제2분과 ‘진리의 영이여 우리를 자유케 하소서!’는 해방시키시는 하나님의 영, 정의 세계를 향한 그리스도인의 책임 등을 주장했다. 여기서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자본주의와 이데올로기로부터의 해방과 자유였다.
제3분과 ‘일치의 영이여 당신의 백성을 화해케 하소서!’는 성령의 교제 안에 있는 기독교 공동체와 다른 종교와의 화해와 교제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 성령님은 복음의 수용과 속죄의 경험없이 이방 종교와의 화해를 이루는 분이 아니다. 제4분과 ‘성령,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거룩하게 하소서!’에서 논의된 성령은 삼위일체의 거룩한 성령이 아니라, 압제받는 민중을 대변하는 영이었다. 제7차 WCC총회는 성령을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영적 무지를 보였다.
이 대회에는 북한 조선기독교연맹 대표 4명이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북한에 기독교가 존재한다고 믿는지, 그들을 북한 기독교 대표로 인정하는지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다.
1998년 12월 열린 제8차 짐바브웨 하라레 대회 주제는 ‘하나님께로 돌이키라! 희망 중에 기뻐하자’였다. 이 대회에서는 21세기 인류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지구화의 문제를 다루었는데, 경제적·문화적 지구화가 아니라 에큐메니칼 지구화를 주장했다. ‘21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의 정체성과 교회 일치에 대한 토의’가 주제였으며, 상호간 신학사상과 교리 차이로 인한 갈등과 긴장을 초월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 궁극적 방법임을 언급했다. 동성애, 일부다처 허용 등의 논쟁이 있었다.
2006년 2월 제9차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 총회는 ‘하나님. 당신의 은혜로 세상을 변화시키소서!’를 주제로 ①종교적·문화적 상황변화, 종교다원주의 정체성 ②교회적 에큐메니칼 상황변화와 교회일치 ③국제정치, 사회적 경제적 상황변화와 경제정의 등을 다뤘다.
전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의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변화를 통하여 환경파괴, 경제정의, 교회일치, 종교다원주의 안에서의 기독교의 정체성과 선교적 책임을 강조했다. 대회 주제인 ‘하나님. 당신의 은혜로 세상을 변화시키소서!’의 변화는 신세계 질서(New World Order)를 의미하고 있는데, 이 신세계 질서가 무슨 의미이며 추구하는 배후 세력과 음모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정리하면, WCC는 세계 기독교회 내 다양한 교파간의 화합과 일치를 도모하려 발족됐으나, 이방종교 전체를 수용·혼합한 종교다원주의로 변질됐다. 이웃종교를 동등하게 수용하여 사회변화, 제도 개선, 소수자 인권, 성 정체성 등을 추구하면서 성경의 권위와 죄 사함, 영혼 구원에 있어 그리스도의 유일성이라는 복음의 핵심을 잃어버리고 희석시켰다.
특히 다른 종교의 신앙을 존중하여 대화와 화해를 추구하며 1990년 1월 스위스 취리히 근교 바아르에서 열린 WCC 소위원회에서 로마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신학자 40명이 바아르 선언(Baar Stantement)을 채택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임재가 모든 나라와 백성 사이에 항상 존재하듯 성령을 통한 구원 역사가 타종교에도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WCC는 이와 같은 종교의 가치상대주의를 절대화하면서 기독교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있다. ‘모든 종교는 동등하므로, 그리스도가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배타적 주장이며 타종교 사회에서 반감만 일으킨다’고 주장하는 것이다.<계속>
/박승학 목사(칼럼니스트)
2C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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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로서는 이런 이런 게시물이 있는 걸 어디서 보게 되었는데
내가 본 이런 게시물들을 다른 이들과도 함께 보면서
다른 이들의 생각, 의견도 들어보며 생각을 나누고 싶다
라는 의도에서 나온,
전재 내지 링크 걸어 열람할 수 있도록 한 게시물들이 사랑채 게시판에 많이들 있는데도
굳이 이 게시물에만 ‘한글’ 님이 그런 요구 발언을 들고 나선 것이
게시물 내용에 대한 ‘한글’님의 개인적 반감 때문이라면
그건 우선적으로,
다른 회원의 글쓰기 활동에 대한 상당히 부당하고 불공정한 월권적 요구이고
필자로서의 글쓰기 '의도'의 모습으로 보자면
좀 속 보이게 조잡하며 지저분한 글쓰기 방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게시자인 '믿음소망사랑' 님으로서는 어떤 게시물을 대하고 그걸 나누고 싶어 게시한 거였고 '
'한글' 님 또한 위 첫째 부분에서 지적한 그런 “마음”과 '의도'가 아니었다 라고 한다면,
사랑채 게시판이라고 하는 것이 부담 없이 나누는 대화 공간이라고 하는 만큼,
‘한글’님은 게시자에게 다짜고짜
‘자, 게시자는 펌 글이 아니라 게시자가 깨달은 게시자 자신의 생각만을 정리해 올려라’
라고 하실 게 아니라
게시자가 올린 게시물의 이런저런 내용에 대해서 내 생각은 이러이러한데
게시자는 그러면 이런 내 생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라든가, 또는
독자로서 내가 생각하는 이런저런 부분에 대해
게시자로서 깨닫고 생각하고 있는 한도 안에서 답변해 주신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되겠는지 경청해 보겠다 등등
게시글 독자인 한글 님으로서는 게시물 내용을 놓고 게시자에게 질문하는 형태 혹은
해당 게시물 내용에 관해 “한글 님 자신이 깨달은” 생각을 표명하는 모습으로
발언해 주시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2C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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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설혼합주의 [諸說混合主義]
WCC 비판글들은 혼합주의가 들어갈 자리에 다원주의를 넣는 것 같습니다.
지난 번 '종교 다원주의를 반대한다'는 표현의 댓글을 '종교 혼합주의를 반대한다' 로 수정했습니다.
WCC를 극렬하게 반대하는 분들은
제가 보기에 15세기 전후로 '마녀사낭'에 참여한 분들과 비슷합니다.
그들의 행태는 트집잡기 이상, 이하도 아닙니다.
트집을 잡기 시작하면 끝이 없답니다.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을 트집잡았는데,
터무니 없는 이야기는 아닌 거지요.
믿음소망사랑 님은 한국교회의 전형입니다.
진실하시고 열정이 있는 분이지요.
자신이 배운 대로 열심히 행동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가르친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문제입니다.
이런 걸 생각하면 한국교회의 미래가 암담합니다.
에피소드 한 가지 말씀드립니다.
수년 전에 설교 비평을 열심히 할 때
이단사이비 대책 위원회인가, 뭔가 하는 단체에서
저에게 공식적으로 문서를 보냈습니다.
구원파의 박옥수 목사와 귀신론의 김기동 목사의 설교를
다른 정통 교회 목사의 설교와 같은 차원에서 비평한 이유는 무엇인지,
밝히라는 공문이었습니다.
분명하게 밝히지 않으면 문제 삼겠다는 거였지요.
모른 척 했습니다.
그 뒤로 아무 말이 없네요.
한국교회가 WCC를 문제 삼는다는 것은
일종의 블랙 코미디입니다.
그건 신앙도 아니도 신학도 아니고,
그야말로 마녀사낭과 다를 게 없습니다.
이런 일들이 한국교회에서 일어나다니,
유구무언입니다.
그냥 모른 척 하고
진도나 나갑시다.
시간이 많이 남은 게 아니니까요.
2C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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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용섭 목사님이 설교에 미사 강론 모델 제시한 부분 등
이 웹 페이지에서의 정용섭 목사님 발언에 의하면
그저 '우리는 우리끼리, 우리만의 "진도" 나가고 우리만의 우리 갈 "길"(?) 이나 가자'라거나
마치 '마녀재판에 회부된 피해자'와 같은 형편에 처한 쪽이라고 자기정체성(?)을 확립하시고 나서
WCC 쪽 편에 서서 해당 사안에 대해
했었구요)
"참 불쌍하"고도 한심한 독자 그리스도인들을 계도할 수 있는
변명 아닌 변명인 공개 게시물 발언도 다 나왔던 판인데
유구무언이라시며 저런 행태들(?)은 모른 척 무시하겠다 하고 마실 게 아니라
계도를 위해서라도
사역자의 도리가 아닐런지요 하고 삼가 말씀 드려 봅니다?
게다가
'믿음소망사랑' 님 같이 “저렇게 사리분별이 어려울 정도로 순진한 이”들을 데리고
WCC 관련해 '믿음소망사랑' 님이 올린 게시물 내용이 그처럼 “트집 잡기 하는 행태”라 규정하셨으니
그렇다면
“바리새인들의 트집잡기 행태들”과 “마녀 사냥하는 억지들”에 불과한 것들이라고 규정하신 내용들에 관해
정 목사님의 그 ‘바른 가르침’을 받아 “문제” 되는 바로 그 "마녀 사냥"(?) "행태"에 연루되지 않고
"제대로 된" "사리분별"을 하면서 "예수님을 트집 잡는 바리새인" "꼬락서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리분별" 제대로 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
정용섭 목사님의 친절한 계도를 통해 가능할 그런 기회를 기대할 수도 있을 법합니다만..? ^^
이를 테면
"예수님을 트집 잡기 했던 바리새인들의 행태"와 다름 없는 것이자
이 기독교 모임 공간에서는 뭐든 툭하면 비방, 매도되어야 할 "행태들"(?)인 것으로 심심찮게 규정되곤 하니
해서,
다비아 공간에서만의 그같이 독특한 어휘 정의(定義)와 관련된 어법에 대해 그리고
이슈 자체에 대한 무시와 외면을 선동하면서 "우리끼리 굴러갈 우리 길(?)이나 가자" 고 하는
일부 배타적 다비안들의 그 "전형"적인 다비아만의 모습에 대해
좀더 들여다 보게 된 기회가 되기는 했습니다만,
마치 소경이 소경 인도하듯 신자들을그릇 인도하고 있는 그같은 심각한 잘못에서 벗어나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기독 신자들에게 바른 가르침을 베풀기 위해서라면
회원들의 그런 의혹들이나 궁금증들 혹은
'무식'하고 미혹에 빠져 있어 "사리분별도 못 하는 순진"한 독자들의 이해를 도와 주시거나
닉네임 ‘한글’님 말씀처럼
해당 사안의 “사실 관계”(?)에 관해 “목사님께서 깨달은 것을 올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
[간단히 쓰자면 "나는 (핵심을) 아는데 너는 모른다" 군요.
구구단 처음 외우고 많이 썼는데, 물론 그 후로도 많이 써먹긴 했지만, 참 오래간만에 보네요.]
이게 2C120님 댓글에다 제가 단 댓글이구요, 길게 쓰자면,
[간단히 {위 댓글을 요약해서} 쓰자면, "나는 (핵심을) 아는데, 너는 모른다" {라고 쓰셨}군요.
{"나는 2 곱하기 1 뭔지 아는 데, 너는 모르지?" 라는 놀리는 식으로} 구구단 처음 배우고 많이 썼는데, 물론 그 후로도 많이 써먹긴 했지만, {이렇게 명시적으로 '나는 아는 걸 너는 모른다' 라고 쓰는 글은} 참 오래간만에 보네요.] 입니다.
제가 짧게 댓글을 달아서 제3자라면 오독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본인이 쓰신 글을 생각해 보시고 그 글에 달린 덧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다른 식으로는 읽기 어렵죠. 물론 제 댓글이 긍정적인 내용이 아니긴 했지만, 그렇다고 "구구단 수준"이라고 비난하는 내용은 더욱 아니었지요..
유독 본인에 관련된 언급에 대해서는 오독하거나 강하게 반응하시는데요, 어쩌다 보니 이 사이트에서만 그러시는 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도 그렇게 하시는 지 생각해 보시고, 말씀 주시면 좋겠습니다.
2C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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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독후 소감 댓글을 놓고
[간단히 쓰자면 "나는 (핵심을) 아는데 너는 모른다" 군요.
구구단 처음 외우고 많이 썼는데, 물론 그 후로도 많이 써먹긴 했지만, 참 오래간만에 보네요.]
이게 2C120 댓글에다 빈이 님이 단 댓글이구요, 길게 쓰자면,
[간단히 {위 2C120님 댓글을 요약해서} 쓰자면, "나는 (핵심을) 아는데, 너는 모른다" {라고 쓰셨}군요.
{"나는 2 곱하기 1 뭔지 아는 데, 너는 모르지?" 라는 놀리는 식으로}구구단 처음 배우고 많이 썼는데, 물론 그 후로도 많이 써먹긴 했지만, {이렇게 명시적으로 '나는 아는 걸 너는 모른다' 라고 쓰는 글은}참 오래간만에 보네요.] 입니다.
빈이 님이 짧게 댓글을 달아도
제 3자가 기초 독해력 자체가 아주 부족한 일부 다비안들 같은 사람이 아닌 이상
오독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본인이 쓰신 글을 생각해 보시고
그 글이 남의 덧글에 대한 명시적인 조롱, 비방 공격 덧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다른 식으로는 읽기 어렵죠.
물론 2C120 댓글이 원글 설교에 대해서
“오, 은혜로운 설교 말씀, 감사, 감사합니다!”라는 식의 감격/찬양 일변도의 내용이 아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즉
그 댓글이 원글 설교에 대한 감격, 감사, 찬사가 아니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독후 소감을 놓고서 거기에다가,
저 댓글은 다름 아니라
“(내가 한참 어린 수준일 때 모습, 다시 말해 겨우) 구구단 처음 배우고 많이 써 먹을” 때 모습에서나
할 수 있었던 고 모양, 고 방식으로 잘난 척하며 감히 나서서
“난 핵심을 아는데 원글 설교 필자는 핵심을 모르는구나~”라며
원글 설교 글에 토를 달며 ‘놀리고’(?) 있는 댓글인 거라면서, 비난, 공격해 댄 빈이 님 댓글 행태는
그야말로 영 아니올시다 모습이었지요.
유독 정 목사님 발언과 관련된 이쪽 언급에 대해서는 오독했다며 몰아부치려 들거나
정 목사님을 거들기 위한 추임새로 강하게 반응하시는데요,
어쩌다 보니 이 사이트에서만 그러시는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도 그렇게 하시는지 생각해 보시고,
눈 가리고 뭔 아웅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님의 어이도 없는 견강부회 댓글에다 뭘 또 다 답변하라고 불러 내는
이런 일까지 한 부분에 관한 한,
스스로의 견강부회 댓글(2013.04.30 02:18:31)에 대해 님은 좀 부끄러움을 느껴도 될 법하다고
생각되네요.
2C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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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갑되어 한 행세들 하면서 마이크 잡고 떠들어 대곤 할 수도 있는,
조잡한 글쓰기 "전형"들을 위해 특별히 엄선된 치외법권(?) 구실을 톡톡히 다 해 주고 있는
이 게시판—은
영 체질과 적성에 안 맞는 데인데 거 참, 자꾸만 이 게시판 쪽에서
본인 자신이 풀이해 놓은 주해 내용까지
결국 그 뻔한 내용의 본질 그대로 드러나게 되어 버린 데 대한 책임을
그 둘은 서로 어떤 점에서 어떻게 다른 거다
라고 본인 주장을 입증할 책임이란 건 본인에게 있겠건만
업어치기든 들어메치기든 그 각론 해결조차 잘 안 된 논지를 갖고 나오셔서는
말 그대로 해당 발언 모습에 대한 “사실관계” 표명을 위한 지적이었던 것 뿐이었으니
님을 지칭해 님을 여기 이 게시판에 나오라고 ‘불렀다’는 것과 등식화될 수 없다는 건
자명하구요. 다시 말해
이번에는 또, 그 부분에 관한 한 이현령 비현령 식이 되어서는
잡탕 섞어찌개나 두리뭉실 비빔밥 메뉴로 책임전가해 보고 싶어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