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30일 그는 살아나셨다(13)

조회 수 2174 추천 수 0 2009.12.29 23:37:55
 

2009년 12월30일

그는 살아나셨다(13)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16:6)


부활에 관한 설명에서 어려운 점은 우리가 그것을 아직 직접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여기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확인해볼 수 있겠지만, 그는 이미 하나님의 우편으로 옮기셨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단 한번 일어난 그 부활을 우리가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단 한번으로 끝난 사건이며, 그래서 우리가 확인할 길이 없다면 결국 그것은 일어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 하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런 질문은 불가지론의 입장입니다. 부활은 확인이 불가능한 것이고 알 수 없는 것이기에 그것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 제기를 우리 기독교인들은 불편하더라도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비난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들의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신앙을 건강하게 만드는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진리라고 한다면 그런 질문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더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즉 기독교 신앙의 극단적인 교조화와 관념화를 막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한번밖에 일어나지 않은 부활 사건을 실증적인 과학적 사고방식에 익숙해 있는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변증할 수 있을까요? 이건 단번에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종말에 이를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역사의 끝인 종말이 이르면 모든 생명이 확연하게 실증적으로 드러날 테니 더 이상의 논쟁은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 한 복판에서는 진리의 차원에서 논쟁해야만 합니다. 예수의 부활이 왜 모든 인간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건인지를 보편적 진리의 틀 안에서 해명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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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09.12.30 01:00:10

저는 어제 이어...

죽음이 죽은 후에야  비로소 참 생명의 세계가 시작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 생명이신 것이 분명하지요.

이런 참 생명이신 예수에게 '신앙의 근거'를 두고  살아 가는 사람들이 성도들이겠구요.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고요.

그러기에, 왜 우리가 '생명지향적인'사람들이 되어야 하는지,

아니, 왜 될 수 밖에 없는지 깨닫게 됩니다.

이제, "영생은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아들을 믿는 것"이라는 의미를 조금 알듯 합니다.

영생.. 그것은 죽음을 이겨내신 그 분한테만, 오직 한 분!

예수님께만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군요!!

[레벨:21]데오그라시아

2009.12.30 07:36:20

라라님 그리스도의 생명은 종말이나 죽음 이후에만 경험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안에서 생명은 종말에만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서도 실증적으로 경험되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죽었고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안에서 그의 생명에 참여케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것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바로 우리의 부활이라는 뜻이지요..그러면 어떻게 그 부활의 생명을 현재에서 경험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려 놓을 때 종말에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그 완전한 생명을 조금이라도 맛 볼수 있을 것입니다. 마치 예루살렘 시므온이 아기예수를 보고 내가 주의 구원을 보았다고 고백한 것처럼 그 고백이 오늘 이 시간 바로 우리에게 이루어지겠지요. 그때는 온전한 자유 평안을 누릴 것입니다. 자유와 평안은 구원의 실제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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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09.12.30 13:07:11

데오그라시아님, 답글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내용에 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다만, 저는 "그리스도의 생명은 종말이나 죽음 이후에만 경험될 수 있다"는 의미로 말씀 드린 내용이 아니라, "죽음"을 죽이신(멸하신) 예수님의 존재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묵상해 본 것이랍니다.

그리고 "죽음이 죽은 후에야  비로소 참 생명 세계가 시작된다" 는 전제하에서 우리의 생명 문제를 생각해 보고 싶었던 것이랍니다. 말씀하신대로 그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당연히 여기서 그 '생명'의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이지요.

감사합니다.

[레벨:21]데오그라시아

2009.12.30 20:46:54

그렇군요..제가 잘못 보았네요.. "죽음이 죽은후에야  비로서 참 생명의 세계가 시작된다" 라라님의 영적 내공이 저보다 한 수 위인 것 같습니다. ㅎㅎ 라라님의 글을 읽고 저도 좋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죽음의 세력과 그 죽음을 있게한 모든 죄의 권세는 깨어졌습니다.그 결과.예수의 죽음 그 순간 참 생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생명의 확증이 부활로 나타났겠지요..아 그러면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참 생명의 경험은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얼마나 깊이 그 죽음에 동참하느냐에 따라 나타나겠네요.."내가 그리스도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나이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것이 아니요" 한 바울의 고백이 생각납니다...주여 그리스도의 그 죽음에 더 한층 더 깊이 참여케 하소서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이루신 그 생명에 한 걸음 더 나가가게 하시고 그 생명으로 충만케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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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4]저별과 달

2009.12.30 22:22:07

데오그라시아님, 진정한 참 생명과 부활의 능력을 아시는 분 같군요..

저는 이걸 얼마 전에야 확연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죽어야만 참 생명을 알고, 부활의 능력도 맛볼수 있다는 것을요..

조금만 얘기 하자면. ..

몇해전에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화를 보면서

예수님이  매질 당하는 장면,

수욕을 당하면서 가시 면류관을 쓰는 장면,  

십자가에 고통스럽게 못질 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속으로 안타까워 하고

예수님 얼마나 고통 스럽고 힘들 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그 수준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어느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고통 당하는 것이 바로 나여야 한다는것.

내가 그렇게 죽어야 한다는 것

내 중심적. 내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것에서 죽어야 한다는것.

적당히 죄와  즐기고 사는 것에서 완전히 죽어야 한다는 것.

내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옛 자아가 죽어야  다시 산다는 것.

그렇지 않고서는 십가가와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죽지 않고는 부활의 능력을 알수 없다는 것..

내가 죽어야만 부활의 능력을 알수 있다는것..

 

분노, 음란, 탐욕, 시기, 미움, 원망등 내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

내 중심 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죽어야 만이 참 생명과 참 부활의 능력을 알수 있다는것. 

 

저는 왜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가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하는지 깊이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건 사도 바울이니까 가능한 것일거야 하면서 그냥 주어진대로 세상 살이 하면서

예수 믿으면 그게 구원이지.. 믿음이 최고니 믿음만 굳게 붙잡으면 될거야 하며

내 중심적으로 내가 편한대로 신앙 생활 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바울 선생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신 말씀과

로마서 6장 전체 말씀들이 확연하게 새롭게 다가 오더군요..

내 중심적인  자아를 죽이고 그리스도의 죽음에 더 한층 깊이 참여 하는 성도..

그런 사람이 진정 거듭난 사람이요..

부활의 능력을 알수 있을것이요.. 참 생명으로 가득찬 사람 이란걸 어느날 알게 되었습니다.

데오그라시아 님의 대글에서 또 한번 확인 하고 갑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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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09.12.31 02:07:46

저별과 달님, 제가 다비아에서 별달님을 안지 꽤 되었지요?

그동안 평안히 지내셨는지요? 전에는 자주 사진을 올려 주시던데,

요즘엔 많이 뜸하시네요.

오랜만에 이 방에서 별달님의 댓글을 읽게 되는군요.

그래서 더욱 천천히 긴 호흡으로 읽어 봤습니다.

위 데오그라시아님의 글에 댓글을 다신 것이라서,

불쑥 나서는 것이 실례라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제 느낌을 좀 드려 보고 싶어서 몇자 적습니다.

별달님, 위의 내용에 저도 깊은 공감을 합니다.

다만, 위 내용은 이미 별달님이나 제가 다비아에서 숙지한 내용이 아닌가 싶어서입니다.

말씀하신 내용들이 전혀 생소해 보이지 않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겠지요.

정용섭목사님께서는 사람에게는 두 가지 유형밖에는 없다고 하시면서,

한 유형은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라고 하시잖아요?

그 사람이 바로 자기자신을 내려 놓지 못하고, 자기욕심, 자기 맘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라구요. 별달님 표현대로라면, 자기자신을 철저히 죽이지 않는 사람이겠지요.

그러면, 자기자신을 내려놓은 사람들, 주님의 십자가와 함께 날마다 죽는 사람들(사도바울 표현)은 이제 누구(무엇)을 향하여 살까요? 바로 주님을 바라보고 살겠지요.

이 분이 바로 참생명의 소유자시니까요. 그러기에 그 분을 바라보며, 그 분과 함께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아가는 사람이 '생명지향적인 사람' 아니겠는지요.

정목사님께서도 누누히 후자의 사람이 되어야 된다고 강조하시지 않으시던지요.

그것을 그 분의 언어(신학적 언어)로 표현하시는 것이라는 생각은 안 드시는지요.

 

별달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시는지, 제가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씀하신 내용은 이미 저와 별달님이 같이 알고 있는 내용을

달리 표현하시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지만 곁붙여 봤습니다.

평안한 시간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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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09.12.30 21:16:24

데오그라시아님,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겸손의 말씀이십니다.

생각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글을 무데뽀로 올리는 것 같아 송구스러울 뿐인데요.

제가 오히려 데오그라시아님의 댓글을 읽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특히 "마치 예루살렘 시므온이 아기예수를 보고 내가 주의 구원을 보았다고 고백한 것처럼

그 고백이 오늘 이 시간 바로 우리에게 이루어지겠지요." 라는 말씀이 제게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참 감사했습니다. 자주 오셔서 좋은 말씀 들려 주세요.

 

"주여 그리스도의 그 죽음에 더 한층 더 깊이 참여케 하소서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이루신 그 생명에 한 걸음 더 나가게 하시고 그 생명으로 충만케 하소서 아멘.."

 

진심으로 아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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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모래알

2009.12.30 21:24:58

라라 님!

두 분의 화답글이 참 보기 좋습니다.

 

이 곳은 지금 아침이지만 한국에서는 열 네 시간 먼저 새해를 향해 가고 있네요.

금년에 제게 있었던 좋은 일 중 하나는 지난 가을 서울 샘터교회를 방문했던 사건입니다.

라라 님과 맛난 커피 마시며 나누었던 이야기들..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한 제 삶의 기록이 될 것입니다.

 

추운 겨울.  따뜻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십시요.

새해에도 물론 건강하시고 매일매일 따뜻하고 복된 날들이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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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09.12.30 21:37:06

모래알님, 언제나 따스한 말씀 감사합니다.

저도 모래알님을 뵐때마다 달팽이님처럼 큰 누님(형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답니다~!^^

여기 시간으로는 27시간만 있으면 한해가 꼴깍 넘어 간답니다.^^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다비아와 샘터교회가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모래알님께서도 마지막 남은 시간 행복하게 보내시고,

새해에도 좋은 사진, 좋은 글 많이 많이 올려 주시기를 학수 고대 할께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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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10.01.29 08:51:41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하나님의 생명의 재 시작임과 동시에 완전한 부활을 기다리는 기독교인들의 신앙고백이라고 봅니다.

단순히 암기 해오던 사도신경이 점점 들어 옵니다.

그것이 2천년 동안 기독교인들에게 전승된 것은 하나님의 세계를 경험한 자만이 고백할 수있는 언어라고 배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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