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3일
그는 살아나셨다(17)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16:6)
예수 부활에 관한 논쟁은 교회와 교회 밖의 대결만이 아닙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교회 안에서의 대결입니다. 교회 안에도 예수의 부활을 역사적인 사건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부활이 없어도 신앙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의 부활을 순전히 실존적인 차원에서만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지금 여기서 예수를 만나서 그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2천 년 전에 무슨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의 사랑을 뼈저리게 느끼고 그 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부활신앙이라고까지 말합니다. 부활은 예수의 삶과 가르침이 제자들의 가슴에 새롭게 불길처럼 타오른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위의 이들과 입장을 달리하는 이들 중의 한 부류는 예수의 부활을 열광적인 차원에서만 접근합니다. 부활을 단순히 다시 산다는 것으로만 받아들입니다. 이들에게는 부활이 구호로만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 구호를 앞세운 채 교회 행사와 부흥에만 몰두합니다. 제가 보기에 예수 부활을 바르게 알고 믿는다고 한다면 그런 일에 과도하게 매달리지 않습니다. 그런 모든 행사들이 부활 생명에 비해서 아주 초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초라한 일에 삶의 에너지를 쏟는다는 것은 부활 생명을 모른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예수 부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신자들과 교회가 얼마나 될까요? 부활에 대한 영적인 경험이 없어도 오늘의 교회는 얼마든지 유지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존재 근거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는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처럼 허망한 일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위기 아닐는지요.
언급하신 "사랑의 실천"에 관해서라면 지구상의 종교계에서 기독교가 그다지 큰소리칠 입장이 못된다고 봅니다. 물론 가르침 그대로 한다면야 완벽한 사랑실천이 되겠지만, 아쉽게도 지금까지 기독교가 절대로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한편은 죠지 뮬러나 쉬바이처 같은 사람들의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기독교사회 성립 이후에도 도처에서 전쟁과 살인과 약탈, 약한자에 대한 폭악, 타인에 대한 몰배려와 인권유린 등 극악은 여러모로 맹위를 떨쳤습니다.
비기독교계의 사랑실천에 관해 가까운 예를 들어보면, 한반도에서도 유교사회이던 조선시대 경주에서 최씨, 담양에서 O씨, 그리고 논산에서 윤씨 등 널리 알려진바 있는 선한 지주들은 가난한 이웃에 대한 배려로, 곡식으로 채워진 뒤주를 (누가 와서 퍼가든) 늘 개방해 뒀다는 얘기로 유명하지요. 기독교가 없었던 사회인데 어떻게 그처럼 이웃에 대한 배려를 할 수가 있었을까요? 또한 최근에 방글라데시에서 무일푼 서민들에 대한 무담보 대출로 그라민은행이 성공하여 그를 주창한 경제학자 유누스라는 사람이 노벨상까지 받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대표적인 기독교 국가인 미국의 월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모기지사건이 터지기 이전 미국에서는 심지어 가련한 사람들에게 감당못할 액수의 주택구입대출('모기지론')을 잔뜩 부추겨 해주고서는 얼마 있다가 결국은 대출자인 금융기관이 그 집을 모조리 뺏어버리는 그런 극악한 일들(소위 고의적 사기대출)이 판을 쳤지요. 이런 걸 보고도 기독교가 (실천에) 실패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그 눈이 뭐가 잘못된 것이겠지요.
빌리그레이엄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더만요. "만약 하나님이 미국 사회를 징벌하시지 않는다면, 소돔과 고모라성 징벌에 대해 정당성을 찾지 못할 것이다" 대충 이런 얘기 말입니다.
기독교가 가르친 "사랑"이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 필요한 "보편적 사랑"이야 그저 가능하다고 보여집니다. 원래, 인간의 본연적 심성에 "측은지심"이라는 게 존재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자본주의와 함께 걸어온 기독교사회에는 이제는 그것마저도 씨가 말라버린게 아닐까요? 살육의 정글에서처럼, 약육강식만 날로 더더욱 횡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첨단이고 발전한 것"이라면서 새로 탄생되는 사회적 제도들 모두가 결국은 그런 것들에 불과하지요.
지구촌 기독교계가 각성하고 올바른 제 갈 길을 찾아야 하겠다는 뜻의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