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8일 그는 살아나셨다(22)

조회 수 1908 추천 수 0 2010.01.07 23:24:30
 

2010년 1월8일

 

그는 살아나셨다(22)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16:6)


부활에 관한 바울의 이야기는 어제로 접고 다시 마가복음 본문으로 돌아옵시다. 무덤 안에서 천사는 예수가 살아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는 더 이상 시체가 놓인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그 자리는 비었습니다. 예수는 시체가 머무는 죽음의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생명의 자리로 옮겼습니다. 단순한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 죽음이 개입하지 못하는 궁극적인 생명입니다.

위의 설명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아무 내용도 없는 것을 말로만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건 아닐까요? 우리는 이런 질문을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곤란한 질문이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우리가 대답할 말을 찾기 힘들다고 하더라도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걸 적당하게 피하면 우리의 신앙은 공허해지고 맙니다. 이런 공허한 신앙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열광적 신앙은 바로 그런 공허의 이면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지금 큰 딜레마에 빠져 있는 셈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앞에서 몇 번에 걸쳐서 지적했듯이 인류 역사에서 유일회적인 사건이었으며, 종말에 가서야 우리에게 확연하게 드러날 생명의 원천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직접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생명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우리는 그것을 실증적인 언어로 설명해야 합니다. 설명이 불가능한 것을 설명해야 하다니요.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과 같습니다.

아무도 부활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는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부활 경험자들의 목록을 바울이 전하고 있으며, 복음서에도 부활 현현에 대한 보도가 나오는 건 분명합니다. 부활에 대한 성서의 증언을 진지하게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칫하면 부활 신앙을 근본적으로 오해할 수 있으니까요.


[레벨:17]아우

2010.01.08 18:33:30

단순한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셨다는 말에 공감만땅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말을 들으니까 구약시대때 사람들의 수명이 생각났습니다.

그들은 969세까지 살아도 결국은 죽었다는 사실에서 인생의 허무를 깨닫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969세라는 말 자체가 더 궁금해집니다.

이게 사실언어인지, 아니면 어떤 다른 메시지가 숨겨져 있는지 말입니다.

구약시대, 구약성서가 기록될 무렵의 산술 방식이 오늘 우리와 다른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들이 현대인들의 수명과 비교할 수 업을 만큼 실제로 오래 살았는지 궁금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이런 대목은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어이쿠~ 머리야!

 

 

[레벨:9]김용남형제

2010.01.08 19:28:55

오늘 갑자기, 제 속에서 나오는 '숨'이 성령으로부터 온 물질이며 성령 자체임을 직감케 되었습니다.

고체, 액체, 기체, 그리고 그 이상, 그것은 구약성서의 루아흐 표상, 곧 성령이라는 것.

이렇게 보면 '단순한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표현하신 그 '단순한 생명'은,

'영원한 생명'의 한 파편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숨에서 물이 비롯되고, 물이 만물을 구성하는 분자의 원천이라면,

그 연결고리의 근본에 기독교의 성령론을 대입함으로

모든 사물의 진정한 실체가 시나브로 열릴 것을 기대해도 좋겠지요?

'생명'이야말로, 기독교 신학과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에 총체적이고 유기적인 변증법을 제공할,

인류가 몰입해야 할 단 한가지 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 생명은 곧 예수 자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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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모래알

2010.01.08 22:49:34

정 목사님!

 

고린도전서를 읽으며 늘 질문이 생긴 것이

바로 복음서의 증언, 말하자면 천사를 만났던 여자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앞서 목사님의 설명대로 사도바울에게는 그 여자들의 체험보다는 자기 자신의 부활 체험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고 이해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 은 남습니다.

남의 체험은 과연 내 체험 보다 의미가 없는 것일까 하는 주변적인 의문이지만.. ^^

 

마태복음 27 장 53 절에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이 귀절은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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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0.01.08 23:11:53

모래알 님이, 정 목사를 꼭 찝어서 질문하시는 바람에

이 방에 다시 들어왔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과 복음서 사이의 차이를

제가 무슨 수로 설명할 수 있겠어요.

이렇게만 생각해두세요.

부활 전승은 오랜 시간을 두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처음에 시작했다가 없어진 것도 있고,

중간에 다른 것이 끼어든 것도 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 전승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바울이 그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복음서끼리도 서로 입장이 다르구요.

고린도전서 15장이 말하는 부활 경험자 목록이 먼저 생겼을까요,

아니면 복음서가 말하는 여성 경험자들의 전승이 먼저 생겼을까요?

더 이상 나가면 저도 머리가 복잡해지니, 그만 줄입니다.

마 27:53절은 나중에 추가된 구절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인류 구원의 관점에서 해석하면서 추가된 것이겠지요.

(이런 방식으로 성서를 비평하다가는 은혜를 다 까먹겠지요? ㅎㅎ

걱정하지 마세요.

기독교는 이런 비평을 다 거쳐왔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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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3]모래알

2010.01.08 23:42:33

ㅎㅎ 목사님!  이 방 주인이 정 목사님 아니셔요?

마침 얼마 전 얻은 에벨링의 "신앙의 본질" 해적판 중 부활에 대한 글을 읽고 있는 중이어서

목사님의 글을 따라 가기가 어렵지 않았어요.

헌데 마태복음은 저희 교회에서 이번 주부터 새벽에 신약 통독을 시작하며 그저께 읽으며

머리를 퉁~ 쳤던 곳입니다. 

걱정 안 합니다.  걱정 마셔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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