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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사전적인 의미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어떤 상태를 가리킨다. 그런 자유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좁은 집에서 살다가 넓은 집으로 이사 가면 좁은 집에서 겪게 되는 불편한 상황에서 자유로워진다. 돈이 많으면 자신이 원하는 고급 오디오기기를 구입할 수 있고, 해외여행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북한에는 주거 이전의 자유가 없다고 한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북한 체제에서 한 순간도 살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은 제한적인 자유만 누리고 있다. 어쨌든지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는 억압적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억압적인 상황으로부터 벗어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또는 무한적으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목사의 경우를 예로 들자. 담임 목사가 평신도 지도자 한 사람과 대립한다고 하자. 그는 교회에서 상당한 리더십을 행사하는 장로다. 당회를 열 때마다 감정이 상할 정도로 다툰다. 목사는 당회 때만이 아니라 예배 중에서도 약점 잡히지 않으려고 자기 검열을 하면서 영적으로 점점 위축된다. 자유가 손상 받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자기와 매번 충돌하던 장로가 여차여차한 사정으로 교회에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직접 다툴 일이 없어서 부분적으로나마 자유를 얻었을지 모르지만 그 목사는 또 다른 문제로 힘들어할 것이다. 장로와의 대립에 모든 신경이 곤두설 때는 없었던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난 것이다. 사람이 원래 그렇다. 한 가지 자유를 얻으면 또 다른 억압적인 상황이 다시 불거진다.
에릭 프롬은 자유를 두 가지로 구분했다. 하나는 ‘freedom from’이고 다른 하나는 ‘freedom to’이다. 전자는 소극적인 자유다. 위에서 설명한 억압적인 상황으로부터의 해방이다. 후자는 적극적인 자유다. 자발적이고 주체적이고 내면적인 해방을 가리킨다. 그가 기독교 신앙을 염두에 두고 말했는지 모르겠으나 하나님을 향한 삶의 태도야말로 적극적인 자유를 향한 게 아니겠는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나오는 그 소극적 적극적자유 맞나요?
너무 오래전에 읽어 내용도 자세히 기억이안나는....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