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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경험은 그렇게 엄청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거기에 몰입하기가 어렵다. 살아있음, 즉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크고 작음이나 높고 낮음의 차이가 없이 모두 똑같다. 알프스 풍경이나 내가 살고 있는 영천의 원당 언덕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 비싼 돈을 들여서 알프스에 가지 않아도 어디서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사막도 좋고, 광야도 괜찮고, 오밀조밀한 한반도 산천도 모든 게 창조 사건의 절정이다. 하나님이 행하신 창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여기서 관건이다.
하나님 안에서 살아있다는 사실을 아는 목사는 크고 장엄한 교회당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여건이 주어지거나 필요에 따라서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된 고품격의 예배당을 건축할 수 있겠지만 그것에 목을 매지 않는다. 교회의 다른 일들도 마찬가지다. 교회 성장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그런 것에 마음이 가지 않는다. 하나님 안에서 이미 살아있다는 것을 충분히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목사들에게 이런 느낌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다른 데 한눈을 팔수밖에 없다. 이는 곧 목사들에게 하나님 경험이 없다는 말이 된다. 살아있다는 경험은 곧 하나님 경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경험이 없이 하나님을 설교해야 할 목사의 운명은 고달프고 불쌍하다. 그런 목사에게서 신앙 지도를 받는 신자들도 불쌍하다. 당신의 하나님 경험은 얼마나 확실하냐는 질문을 피하고 싶지 않다. 우선 하나님 경험에 대한 예를 성경에서 몇 군데만 찾아보겠다. 구약에서 세 군데와 신약에서 세 군데,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하나님 경험에 대해서 짚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