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구원(93)

조회 수 976 추천 수 0 2018.05.10 21:28:38

(93)

소멸은 우리를 허무에 떨어뜨린다. 내가 생각하는 소멸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소멸은 질적인 변화이지 무조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이걸 실질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면 하나님의 품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걸 설명해도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설명하는 것 자체가 간단하지 않다. 이미 앞에서 하나님 나라와 그 통치와 하나님 경험에 대해서 말했기 때문에 전달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여기서는 내가 소멸되어야만 하나님의 품에 안길 수 있다는 사실만 말하겠다.

지금 우리는 밥을 반드시 먹어야만 산다. 잘 먹으려고 사생결단 투쟁한다. 밥을 먹는 과정과 포만감을 통해서 즐거워한다. 이런 즐거움을 느끼려면 일단 배가 고파야 한다. 우리는 좋은 집에서 살기 위해서 사생결단 식으로 살아간다. 좋은 집을 좋은 집으로 느끼려면 나쁜 집에서 산다는 걸 경험해야 한다. 늘 좋은 것을 배부르게 먹는 사람은 먹는 즐거움을 점점 잃게 되고, 늘 멋진 집에 사는 사람은 그런 느낌 자체를 점점 잃게 된다. 이것이 인간 삶의 모순이자 역설이다. 이런 모순과 역설의 운명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절대 생명이라 할 하나님의 품에 안길 수 없다. 모순과 역설의 운명을 벗어나는 것이 소멸이다.

흔한 예를 들자. 여기 해바라기 씨앗이 있다. 그 씨앗이 그대로 자기 형태를 유지한다면 해바라기 꽃을 피울 수 없다. 씨앗이 소멸되어야만, 즉 질적인 변화가 있어야만 발화된다. 씨앗과 꽃 사이에는 생명의 능력이 자리한다. 씨앗을 불속에 넣거나 유리병에 넣어두면 꽃으로 변화되지 않는다. 생명의 능력은 흙과 물과 탄소와 햇빛 등등의 질료를 통해서 나타난다. 여기서 씨앗은 현재의 이고 꽃은 하나님의 생명이다.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위의 설명이 이론적으로 이해가 가지만 실제적으로는 공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기 소멸은 자기를 확대함으로써 살아야 한다는 우리의 본성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다. 이 단계에서는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직접 느낄 수 있도록 내공을 키우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당신은 당신의 설명을 실제로 실천하면서 사느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겠다. 각자 자기가 아는 것만큼, 또는 느끼는 것만큼 삶을 누리고 거기에 참여할 수 있을 뿐이지 남에게 보여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는 보여줄 수 있으나 우리의 일상에서는 그게 잘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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