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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찬송가를 부를 때 일단 가사를 생각한다. 다른 이들도 그럴 것이다. 예배에서 요즘 부르는 ‘거룩 찬송’은 김의작 작곡의 ‘거룩송’이다. 이 곡은 『새로운 예배찬송』 475장이다. 가사는 간단하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주 자비를 베푸소서.’ 되풀이해서 부르는데 25초가 소요되는 곡이다. 거룩, 전능, 자비에 집중하려고 한다. 짧은 시간에 많은 걸 생각할 수는 없으나 마음을 거기에 두려고 노력한다. 평소에 이 개념들을 알고 있었으면 집중도가 좀더 높아진다. 찬송가를 똑바로 부르기 위해서라도 신학공부는 필요하다.
우리의 주는 거룩하고 전능하신 존재다. 거꾸로 거룩하고 전능하신 존재가 우리의 주이시다. 우리가 어디서 거룩성과 전능성을 경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아는 게 필요하다. 21세기 현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자연과학과 자본이 거룩하거나 전능한 존재는 아니다.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이는 거룩하고 전능한 존재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것들이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지 못한다. 자비는 여러 가지로 불안하고 불완전한 우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이 곧 자비다. 이 거룩 찬송이 불리는 25초 동안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전능하심, 그리고 그분의 자비에 내 영혼이 끌리도록 최선을 다한다.
찬송가를 부를 때 악보를 가능한 정확하게 따라가는 게 좋다. 은혜롭게 부르면 충분하지 악보대로 부르는 게 뭐 중요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집에서 혼자 부르는 경우라면 자유롭게 불러도 좋으나 교회에서 회중 찬송으로 부를 때는 악보에 충실해야 한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하나는 찬송가를 작곡한 사람의 음악적인 영감에 호응하는 것이 찬송가를 찬송가답게 부르는 최선의 길이라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악보에 충실해야만 ‘함께 드리는 예배’의 본질이 훼손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기 혼자 흥에 겨워서 찬송 중에 아멘을 연발한다거나 길게 끌면서 소리를 내는 건 예배를 드리는 온당한 자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