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구원(187)

조회 수 955 추천 수 0 2018.09.19 21:16:53

(187)

나의 말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 성수주일 운운하면서 예배를 강조하던 이들의 주장과 무슨 차이가 있냐고 말이다. 나는 예배를 율법이나 주술의 차원에서 강조하는 게 아니다. 참된 안식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주어진다고 믿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일정한 의식을 통해서 집약적으로 표출되는 예배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만약 예배를 통해서 순전히 종교적 낭만과 세속적인 욕망만 자극될 뿐이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지 않는다면, 그런 예배는 드리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다.

50:4-9절은 종의 노래로 불린다. 시인은 모욕과 수치를 당하는 신세였으나 전혀 주눅이 들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 그는 8절에서 이렇게 담대하게 외친다.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세 가지 명제가 이 구절을 구성한다. 1) 하나님은 나를 의롭게 하신다. 2) 그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다. 3) 그러므로 나와 다툴 자는 없다.

하나님은 나를 의롭게 하신다.’는 말은 구약만이 아니라 신약을 포함한 성경 전체의 핵심 주제에 속한다. 의롭다는 것은 도덕적이라거나 모범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죽었다 깨도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의는 하나님의 생명 통치에 전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맡길 때 발생하는 구원 사건이다. 다시 기초 교리를 말할 수밖에 없다. 성경은 인간이 죽음에 이르게 된 이유를 죄로 본다.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손되었기에 생명과도 단절된 것이다. 그 어떤 노력으로도 인간은 생명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유일한 길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의롭게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의는 하나님으로부터만 주어진다. 의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바로 생명을 얻는 것이다. 그렇다고 죽음이라는 실존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죽는 게 분명한데도 의를 통해서 생명을 얻는다는 주장은 모순처럼 들릴 것이다. 이 모순을 돌파할 수 있어야만 성경이 가리키는 삶의 깊이에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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