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13일
무덤에 묻히심(1)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 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15:42)
마가복음 기자가 지적하고 있는 ‘이 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한 날입니다. 이 날을 ‘준비일’, 즉 안식일 전 날이었다고 적시합니다. 안식일은 토요일이고, 유대인들에게 하루의 시작은 아침이 아니라 저녁이니까 이 날은 금요일을 가리킵니다. 저녁이 되기 이전까지를 말합니다.
복음서 기자가 굳이 이렇게 ‘이 날’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이유는 예수의 죽음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데에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에는 예수님의 죽음을 용납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어떻게 인간처럼 죽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신의 본성은 불사(不死)와 불멸(不滅)입니다. 예수님이 신이라면 죽지 않았을 것이며, 만약 죽었다면 신이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더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인간적 속성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세상을 초월하는 신이 어떻게 세상의 한계를 그대로 안고 사는 사람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간적 속성은 실제가 아니라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라는 겁니다. 이런 주장을 가현설(假顯設, docetism)이라고 합니다.
초기 기독교는 애초부터 이런 가현설적 주장을 배척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적인 속성을 그대로 안고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일관되게 주장했습니다. 사도신경이 말하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도 바로 그 사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이 날’에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는 이 땅에서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갖고 살다가 죽었습니다. 이런 이를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즉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분이라고 믿습니다. 이제 날이 ‘저물어서’ 이 날이 지나가기 직전입니다. 예수님의 운명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저희 교회에 심한 병에 걸려 극심한 고통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여인이 오게 되었습니다.
수술 후 재발해서 더 큰 고통을 겪는 것 같습니다.
예수는 믿지 않았다는군요.
소문을 듣고 저희 교회에 오고 싶어서 왔는데.
예수님께서 낫게 해 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오신 것 같습니다.
정말 그 여인을 치료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여인이 부활의 주님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묵상을 읽고, 생각이 나서 적어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