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트 신학 이야기(20)

조회 수 2080 추천 수 0 2011.02.28 23:47:37

하나님의 말씀과 그 증인들을 대면하고 있는 신학의 자리는 그것의 장은 텅 빈 공간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개교회로서의 공동체이다. 너무 막연하고 부담을 주는 ‘교회’(Kirche)라는 말을 피하고 -전적으로 항상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교회로서의 공동체’(die Gemeinde)라는 말을 가지고 어느 경우에나 일관성을 가지고 나가야 신학적으로 타당하다.(55쪽)

 

     바르트가 앞에서 두 가지 주제를 설명했다는 사실을 그대가 기억할 것이오. 하나님의 말씀과 증인이오. 오늘 신학은 이 사태와 대면하고 있소. 하나님 말씀이 없는 신학, 증인이 없는 신학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소. 도대체 그런 신학이 있기나 한 거냐 하고 말이오. 그런 신학이 있소. 그런 신앙도 있소. 그게 뭔지는 앞에서 설명했기 때문에 여기서 길게 반복하지 않겠소. 오늘 상당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말씀 없는 신앙, 증인을 무시하는 신앙을 옳은 것처럼 착각하고 있소. 이제 바르트는 신학의 자리를 교회 공동체 안에 설정하려는 것이오. 독일어로 교회를 가리키는 단어가 두 개요. 하나는 ‘키르헤’(Kirche)이고 다른 하나는 ‘게마인데’(Gemeinde)요. 앞의 단어는 라틴어를 어원으로 하고 뒤의 단어는 고유한 독일어요. 바르트는 키르헤보다는 게마인데를 사용하고 싶어 하오. 왜냐하면 키르헤는 관념적인 성격이 강한 반면에 게마인데는 구체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오. 어느 단어를 택하든지 여기서 핵심은 교회의 구체성이오. 신학은 교회 밖의 학문이 아니라 교회 안의 학문이라는 뜻이오. 교회 밖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현상적으로, 종교사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그것은 신학이 아니오. 여기서 말하는 신학은 바로 신앙이기도 하오. 구체적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 공동체에 참여하지 않는 신앙은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오. 가능하다 하더라도 최소한 건강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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