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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독교인들은 이 증언활동에서 진리물음에 대해 책임이 있는 한 신학자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 좁은 의미에서 말로 증언하는 특수 봉사직을 지닌, 교회공동체 안에서 특별히 부름을 받아 특별 사명을 띤 신학자들의 책임이야말로 얼마나 막중한가? 다음의 현상은 혐오를 일으킨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교회의 지도자, 불같은 복음 전도자, 설교자, 이런저런 실제적 교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투쟁자라고 하면서도 자신들의 “임무는 신학이 아니라 설교요 행정이다.”라고 확신에 차서 주장하는데, 이런 주장은 우리에게 혐오를 일으킨다.(58쪽)
바르트는 신학을 교회의 기능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소. 신학의 주제인 그리스도교 신앙이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고유한 경험과 인식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뜻이오. 부활의 주님이 교회 공동체에서만 경험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소. 바르트의 이 말이 신학을 축소시키는 것이라고 보면 곤란하오.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역할이 신학에게 있소. 교회는 신학으로부터 바른 소리를 들어야 하오. 목사들이 신학을 멀리 하는 것은 자기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과 같소. 바르트는 그런 태도를 혐오한다고 말하오. 오늘 한국교회는 신학무용론에 찌들려 있소. 신학적 성찰 없이 교회가 운용되고 있소. 결국 오늘 한국교회는 성령이 아니라 힘의 논리라는 우상의 지배를 받게 되었소. 그게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는 나보다 그대가 더 잘 알 것이오.
교수님께서 거의 매일 이형기 교수님의 복음주의 신학입문을 가지고 이렇게 하시잖아요.
저는 제프리 브로필리가 쓰고 신옥수라는 분이 번역한 바르트 교회교의학 입문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처음 읽는 거라 솔직히 이해하면서 읽기보다 그냥 글줄따라서 책을 본다고 하는게 더 맞다고 생각하는데요.
물론, 제가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을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바르트라는 사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렇게 방대한 책에 구체적이고 엄밀한 논증 그리고 신학자지만 철학과 같은 관련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 그리고 브로밀리라는 사람도 대단하다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게 그 방대한 교의학을 한 권으로
요약해서 낼 정도면 교의학을 거의 독파했다고 과언이 아니네요. 알고보니 이 사람이 혼자서 판넨베르크의
조직신학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을 '혼자서'번역 한 걸로 나와있네요.... 한국에서 판넨베르크의 조직신학 1권을 정교수님을 포함한 세 사람이서 교회교의학을 여러 교수님들이 나눠서 하고 있는것을 감안하면 정말 대단한 역량을 가진 사람 이란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 바르트나 판넨베르크에 견줄만한 신학자가 나올 수 있을까요? 아니면 나온다고 해도 과연 그 사람들의 진가를 인정해 줄까요? 저는 잘 모르지만 서남동, 안병무 교수의 민중신학과 윤성범, 유동식 교수의 토착화신학을 그냥 아무개 신학 정도로 대접하는 것을 보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