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웃 일본에서 일어난 대재앙 앞에서 일본 사람들만이 아니라 세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망연자실에 빠졌소. 적게는 일만 명, 많게는 수만 명이 이번 재앙으로 목숨을 잃었소. 얼마나 많은 기가 막힌 사연이 거기 담겼겠소. 바로 결혼을 앞둔 이들, 오랜 병마에서 겨우 일어선 이들, 그동안 고생하다가 이제 겨우 숨을 돌린 사람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 청소년들과 아이들도 다 거기에 포함된 거요. 그뿐이 아니오. 수많은 사람들이 이번에 장애를 입고, 가족을 잃었소. 그들이 앞으로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의 무게를 생각하면 깜깜하오.

     이번 대재앙을 신앙적으로 오도하는 이들이 나올까 염려했는데, 그런 일이 벌어졌소이다. 매스컴 보도에 따르면 우상을 섬기는 일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운운 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소. 하나님이 한국을 지켜주신 것에 감사드린다거나 생수통에 태극기 마크를 붙여서 보내자고 주장한 정치인들도 있었소. 일본이 완전히 망했다는 식으로 보도하거나 한류가 식을까 걱정하는 언론도 있었다 하오. 그들의 말은 실수가 아니오. 자신들의 세계관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오. 남의 불행을 행운의 기회로 삼으려는 심리가 인간에게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걸 저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일은 철면피한 일이오. 이런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소. 대개는 일단 이웃의 고통을 마음과 몸으로 아파하는 거요. 남의 불행에 측은지심을 느끼는 게 인간 본성이오.

     그대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세상 창조주이면서 지금도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을 허락하셨는지 따져 묻고 싶을 거요. 성서기자들 중에서도 그대와 비슷한 심정을 경험한 이들이 많다오. 노아홍수, 소돔 사건, 욥 이야기가 그런 걸 다루고 있소. 복음서에도 선천성 시각장애인에 얽힌 이야기가 나오오. 무죄한 이의 고난, 이유를 알 수 없는 대재앙에 대해서 성서는 일관된 대답을 하지 않소. 가장 일반적인 대답은 죄요. 인간의 불행과 그 불행의 마지막 자리인 죽음이 죄로 인해서 왔다고 말하오. 이것을 죄 숙명주의로 오해하지 말아야 하오. 고대 성서시대 사람들은 인간 운명에 내리는 대재앙과 인간의 죄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한 것이오. 인간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어떤 힘들이 작용한다고 본 거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성서가 모두 죄를 거론하지도 않소.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불행의 원인을 죄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소.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은 장애가 치유되는 것이오.

     욥기를 그대가 잘 알 거요. 욥이 당한 재앙은 인간이 살아서 당할 수 있는 최대의 것이었소. 욥의 친구들은 욥의 죄를 거론했고 욥은 자신의 결백을 말했소. 재앙의 원인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다퉜소. 욥기는 그런 논란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말하오. 소위 신정론의 문제는 우리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넘어서는 문제라는 것이오. 그것을 억지로 해명하려는 것은 불신앙이라는 것이오. 이런 대재앙 앞에서 해야 할 일은 그것을 극복하는 것뿐이오.

     노아홍수 이야기는 표면적으로 볼 때 인간의 죄로 인한 대재앙을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것을 말하는 거요. 노아 가족은 홍수 뒤에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소. 더 이상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이오. 이것은 두 번째 창조 이야기요. 아니 새 창조 이야기요. 노아 가족들은 번성하리라는 축복을 받소. 그리고 이것은 희망에 관한 이야기요. 비통과 허무와 절망을 불러오는 대재앙을 인간이 결국 극복할 수 있게 하겠다는 희망 말이오. 노아홍수 전승에 따르면 하나님의 약속은 무지개로 나타났다고 하오. 오늘 우리는 어디서 이 무지개를 발견할 수 있겠소? 그리스도인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구름 사이로 나타나는 이 무지개를 발견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소. 참화를 당한 일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바라오.


한밀

2011.03.16 1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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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보다 더 종교적인 그들...

 

다른사람들을 위해 최소한의 생필품만 사는 사람들,

사재기나, 새치기, 약탈, 압사사고, 자기자식 살려내라고 목놓아 우는 이들없는 그들,

길게 늘어선 버스와 지하철을 기다리는 행렬들...

자신들이 믿는 신에대한 울분과 원망없이

대재앙의 자연 재해 앞에서 묵묵히 대처해나가는 그들의 모습속에서

종교인의 한사람으로서 신비로움마저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경고",

"우상숭배의 결과",

"한반도를 향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얘기하는

우리네 기독교인들로 인해

하나님은 꽤나 속이 상하시겠다....

 

주님,

희망의 무지개를

고통당하는 그들에게 비쳐주시고

하루속히 주님의 공의가 온세상에 깃들게 하소서

 

주님,

우리가 지금은 거울을 보듯이 희미하게 주님의 뜻을 이해하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보듯이

주님의 뜻을 알기 원합니다.

 

주님,

우리가 어릴때에는 말하는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아도,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는( 신앙이 성숙하게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는

그런 달라지는 모습들이 우리에게 있게 하여 주옵소서.

 

욥의 고통에 대해 반응하는 세명의 친구들보다는

다니엘의 사자굴에 같이 들어가는 세명의 친구들이

더욱 필요한 때입니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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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별과 달

2011.03.18 00:14:18

목사님, 가까운 이웃나라에서 이런 대재앙이 일어나고

날이 갈수록 안정 보다는 더 암울하고 걱정스런 소식만 들려 오네요..

저는 요즘 일도 손에 안잡히고 제가 신경이  온통 그쪽으로 곤두 서있는것 같아요..

자연의 힘이라는 것이 정말 대단한것 같아요.

 

한, 나라와 그 이웃나라와, 온 세계를 지금 떨게 만들고 있는것 같습니다.

일본이 빨리 안정을 되찾아야 할텐데 점점 공황 속으로 빠져드는것 같아   걱정이 많이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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