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4:6절은 다음과 같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이 문장에서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표현이다. 이걸 문자적으로만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얼굴은 2천 년 전 유대 지역에 살았던 삼십대 초반의 유대인 한 남자의 모습과 다를 게 없다. 예수님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도 아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하나님의 영광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얼굴은 예수님이라는 인격체와 그의 운명을 가리킨다. 바울이 저 구절을 통해서 말하려는 것은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사실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영광은 ‘빛나고 아름다운 영예’라는 뜻이다. 일상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헬라어 성경은 영광을 ‘독사’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이를 영어 성경은 glory라고 번역했다. 마틴 루터는 독사를 영어 glory와 동일한 라틴어 어원에서 온 Glorie가 아니라 순수한 독일어인 헤어리히카이트(Herrlichkeit)로 번역했다. 이 단어는 영광이라는 뜻 외에 장엄함, 숭고함이라는 뜻이 들어 있는데, 좀더 독일어 원뜻을 살려서 번역하면 ‘주(主)다우심’이다. Herr는 주라는 뜻으로, 영어의 Lord이다.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을 가리켜 영광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은 구원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구원자로서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분이시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을 ‘어두운 데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신 분이라고 표현했다. 옳은 말이다. 창조의 첫 번 사건인 빛을 포함해서 창조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이 행하신 새로운 창조이며, 동시에 첫 창조의 완성이다. 이 엄청난 사실을 뚫어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고 노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