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9일
톰 라이트(8)
부활을 제거해버리면 ‘기독교는 물질세계의 문제를 무시해버렸다.’는 칼 마르크스의 비난은 아마도 정당한 비난이 될 것입니다. 부활을 제거해버리면 ‘기독교는 소원을 비는 종교’라고 말한 프로이트도 정당합니다. 부활을 제거해버리면 ‘기독교는 약자를 위한 종교’라고 한 니체의 비판도 옳게 됩니다. 하지만 (몸의) 부활을 제자리에 회복시킨다면 우리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니체를 예언자로 치켜세우는 포스트모더니즘 세계에 등을 돌리고만 있지 않고 그 세계에 참여할 수 있으며, 그들이 벌이는 게임에 뛰어들어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인간보다 더 지혜로우며, 하나님의 약함이 인간보다 더 강하다는 부활의 소식으로 그들에게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121 쪽)
기독교의 미래는 밝은가, 어두운가? 21세기가 끝날 때 쯤, 또는 22세기에도 여전히 교회는 인류 역사에 살아남을 것인가? 가까운 미래는 모르겠지만, 좀더 먼 미래를 내다본다면 그때에도 기독교가 살아남을 것이라는 보장은 할 수 없다. 기독교의 주장이 세상 사람들에게 더 이상 설득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면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모든 종교에서 흥망성쇠라는 게 있다.
위에서 톰 라이트가 열거한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는 한 세기 전에 기독교가 설득력이 없다고 비판한 인물들이다. 당시 교회는 그런 비판을 받을만했다. 이런 비판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교회가 진리의 차원에서 자기 해명을 꾸준하게 제시하지 못하면 결국 외면 받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기독교의 뿌리는 그런 비판에 근거가 흔들릴 정도로 취약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근거가 흔들린다면 그건 우리가 근거를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뿐이다. 가장 핵심적인 근거인 부활을 오해하면 흔들리겠지만 바르게 알면 그 어떤 세속적 비판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죽음 이후를 바라는 부활신앙과
이 세상의 거대한 교훈과 풍조속에서
바로 오늘 여기서 하늘 나라 백성으로서 감당해야할 실존,
이 둘 사이가 은밀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셨죠?
매일 매일 둘 사이의 긴장과 타협, 내적 갈등, 주도권 싸움.... 속에서
어떤 판단과 선택이 정답인지, 어느 길이 내게 최선이고 복이 될지
암중모색 해나가면서
비틀거리긴 하지만 그분이 세워 놓으신 푯대를 향해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는지,
자기 열심과 자기의와 진리의 편린에 갇힌 채
제 자리를 맴돌고 있는건 아닌지,
아니면 엄한 길로 빠진건 아닌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합니다.
팔십 평생 어간을 침묵속에 지켜보고 계시다가 한 몫에 심판하시지 말고
이 삼십년에 한번씩 중간점수라도 매겨 주시면 참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