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비우기

Views 1469 Votes 0 2016.03.28 21: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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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비우기

 

우리집 옆 마당에 자그마한 텃밭이 있다.

몇 년 동안 그곳에 채소를 심어서

그런대로 싱싱한 먹을거리를 거둬들이는 재미를 보았다.

시행착오도 몇 번 거치니까

이제는 어떻게 재배해야 하는지 감이 약간 잡힌다.

진작 밭을 정리해야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가 오늘 작정하고 텃밭으로 나갔다.

이 모습이다.

 IMG_0504.JPG

흉하다.

특히 저 검은 비닐이 그렇다.

저게 없으면 매일 김매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텃밭이라도 비닐을 깔아야 한다.

저건 한번 쓰고 더 이상 못 쓴다.

걷어내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지난주에 한번 밭에 나가서 몇 시간에 걸쳐

대충 정리한 게 저 정도다.

겨우내 말라붙은 방울토마토, 가지, 깻닢, 오이 줄기를

다 뽑아내고 지지대로 뽑아냈다.

이제 저걸 다 갈아엎어서 흙은 고르게 해주고

퇴비를 골고루 뿌려줘야 한다.

두 시간쯤 곡괭이를 들고 설쳤는데

비닐 제거 잡업도 다 하지 못했다.

마른 풀 태우는 작업으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낸 탓이다.

사진 위 부분에 검게 나오는 곳이

불탄 자국이다.

왼편에 마른풀 무더기가 있는데,

여기저기 긁어모으면 아직도 마른풀이 많이 남아 있다.

아래는 다른 각도에서 찍은 사진이다.

  IMG_0505.JPG

그림자는 내 모습이다.

두 시간만 움직였는데도 몸이 정상이 아니다.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자칫 잘못 디디면 발목이 시큰하고

무릎도 시큰 거리는 순간이 있다.

더 이상 일하다가는 아무래도 몸이 고장 날 거 같이

게으른 농부가 지혜로운 농부라는 확신을 갖고 서재로 올라왔다.

아래는 앞마당 마른풀 태우는 장면이다.

IMG_0506.JPG  

앞마당 크게 염려가 없지만

첫 사진에 나오는 텃밭은 산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서

불길이 옮아 붙을까 걱정이 되어

아예 수도꼭지에 연결된 호수를 준비해놓고 처리했다.

엄살떨듯이 설명했는데,

텃밭 가꾸기가 보통 일이 아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호기심으로 옆에서 거들던 집사람이

이제는 아예 내다보지도 않고,

두 딸들은 다른 식구처럼 행동하니

몽땅 내 몫이다.

할 수 없다.

수도승처럼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텃밭과 놀아야겠다.

텃밭아, 함께 그냥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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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세계

2016.03.29 08:04:22

정말 마음을 비워야 겠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어떻게 해서든

삭막한 도시를 떠나 작은 텃밭을 일구며

소박하게 사는 게 작은 소망 중에 하나였는데

오늘 포스팅을 보니 꿈이 와장창이네요~ ㅎㅎㅎ

제가 홍삼을 의지해야 하는 허약체질인데

아내는 저보다 더 하고, 아이들은 파리만 봐도 기겁을 하거든요.

당분간은 목사님을 통해 대리 만족이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는 화이팅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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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6.03.29 21:31:02

허약체질이라도

시골에서 거기에 맞게 살면 됩니다.

이런 데 들어오면 좋아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들어오지 않는 게 좋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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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2016.03.29 12:02:53

ㅎㅎ 마음을 비우고 채소를 가꾸면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서울 관악산에 가면 거의 정상 부근에 조그만 암자 하나 있는데

추사 김정희가 말년에 기거하면서 채소를 키우며 살았다고 하지요.

자신을 '채소가꾸는 노인'이라고 칭하면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채소 가꾸며 조용히 사는 것은 저의 말년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목사님은 벌써 그 '경지'에 이르기 직전이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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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2016.03.29 12:04:41

마을에 관리기 가진 사람에게 부탁하면 한 10분이면 밭을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소에 마을분들과의 교감이 있다면 금방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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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6.03.29 21:33:16

집을 잘못 앉혀서

텃밭으로 관리기를 끌고 들어갈 수가 없어요.

언덕 절개지와 건물 사이에 너무 좁아요.

멀리 보고 그쪽을 좀 넓혀서 관리기 출입이 가능하게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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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2016.03.29 23:02:51

저도 몇년전 어머니께서 텃밭을 만드시는통에 제가 고생을 했습니다.

결국 다 포기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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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6.03.30 16:43:23

수고 많으셨습니다.

삶 자체가 크고 작은 것들의 포기, 그리고 포기...

결국에는 자기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과정인가 봅니다.

staytrue

2016.03.30 09:23:53

현실과 이상의 괴리 ... 

좋은말로 텃밭하나 일구며 산다는 현실은 이런거군요 ㅋㅋ

저는 젊어서 한 10분이면 후딱 뒤집을 거 같은데 ... ㅎㅎ


아무튼, 인생이란게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이상을 내려놓는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것일까요, 

이상과 현실을, 큰수레와 작은수레를 일치시키는 것일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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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2016.03.30 16:48:17

아마 스테이트루 님이라면

30분이면 대충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저렇게 정리 안 된 텃밭의 현실을

그냥 나의 이상으로 여길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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