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일
생명충만감
부활 경험은 본질적으로 죄와 죽음의 극복 경험이라고 설교 마지막 단락에서 말했다. 죄와 죽음이 우리의 삶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죄와 죽음의 극복을 다른 말로 하면 생명충만감이다. 그것이 아직 마지막이 오지 않았으나 은폐의 방식으로 이미 지금 여기서 부활을 경험한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다.
1) 생명충만감은 순간의 깊이에서 주어진다. 하이데거 표현으로 순간(Augenblick)은 우리가 생명충만감에 이르는 통로다. 순간에는 무진장한 깊이가 숨어 있다. 그 깊이는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사람에게만 보인다. 지금 내 서재 창문 밖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가 보인다. 한 순간이고 한 찰나다. 나뭇잎에 반짝이는 햇빛은 1억5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태양에서 왔다. 나는 대나무 잎에서 그 태양의 빛을 보고 있다. 지금이라는 순간에 일어나는 우주론적 사건이다. 내가 더 설명하지 않는 수많은 깊이가 이 순간에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그 안으로 들어간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의 깊이로 들어가는 것이면서 동시에 창조 사건과 하나 되는 것이다. 죄와 죽음이 극복되는 생명충만감이 거기서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으로 주어진단 말인가.
2) 기독교 신앙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된다고 믿는 것이다. 이것이 앞에서 말한 순간의 깊이와 다른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물론 다르긴 하다. 순간의 깊이를 느끼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구별된다. 그러나 이것은 삼위일체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 아들이 구별되기는 하나 본질적으로 하나인 것처럼 다른 게 아니라 하나다. 창조의 신비를 아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아는 것은 우리가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생명 충만감에 휩싸인다는 점에서 서로 깊이 연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