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3일
영광과 찬송
종교 언어는 일상 언어와 뚜렷이 구별된다. 종교 언어에 무작정 노출되는 사람들은 현실 감각이 떨어질 수 있다. 기독교인들에게 그런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예수가 구름 타고 내려올 때 자신은 공중 부양할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휴거라는 언어를 고지식하게 받아들인 결과다. 사이비 종파들에게는 이런 경향이 더 강하다. 교주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자신들의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 이런 잘못에 빠지지 않으려면 종교 언어의 근본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 문제를 지난 설교에서 짚었다. 영광과 찬송이 그것이다. 사사로운 것이 끼어들지 않는 지극한 삶의 태도가 바로 영광과 찬송이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님 앞에서만 우리는 사사로운 것을 벗어날 수 있다. 거꾸로 사사로운 것을 벗어나야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 하나님 경험은 사사로움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여기서 사사로움은 핵심적으로 자기에 대한 관심이다. 이해타산이고 이기심이다. 이런 데서 벗어날 때 영광과 찬송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다. 쉽지 않겠지만.
이런 경험이 무엇인지 맛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많다. 간혹 열광적인 부흥회 유의 집회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다. 박수치고 노래하면서 엑스타시의 상태로 빠져든다. 이 순간에는 일절 다른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영적으로 지극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 문제는 이게 감정적인 데 치우친 것이기 때문에 감정이 식으면 이게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마치 마약에 취한 사람이 거기서 깨어나면 현실을 견디지 못하는 거와 같다.
세속의 삶을 버텨내야 하고, 혼자 구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기독교인들에게 최선은 예배다. 예배를 예배답게 드린다면 그는 영광과 찬송이 가리키는 지극한 영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도 훈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