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구원(36)

조회 수 1205 추천 수 0 2018.02.20 20:24:56

아무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더 정확하게는 모든 것과의 단절을 통해서 절대적인 대상과의 합일이 이루어지는 죽음의 순간을 일상에서 살아내는 것이 영성의 핵심이다. 그것이 곧 구원 경험이기도 하다. 그 죽음의 순간에 나는 혼자 있고 싶다. 요즘 고독사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로 대두되는 것 같다. 주변 사람과 단절된 채 혼자 고독하게 죽으니 그가 죽었는지 아무도 모르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두 달 후에 그 사실이 밝혀지기도 한다. 아무도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서 고독하게 죽는다거나 시신이 방치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죽음은 그 자체가 고독할 수밖에 없는 절대 사건이라는 점에서 나는 역설적으로 고독사를 원한다.

죽음은 인생에서 아무도 동행해주지 못하는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사건이다. 죽는 순간은 육체적으로도 고통스럽다. 자는 듯이 곱게 죽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가쁜 호흡을 몰아쉬면서 천천히, 또는 갑자기 숨을 멈추게 되고 의식이 사라지고 심장이 멈춘다. 아내나 남편, 자식과 손자들이 그 긴박한 상황에 자꾸 끼어드는 건 아무 도움이 못된다. 편안히 임종을 맞는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말짱한 정신으로 죽음에 집중해야 할 그 순간에 누군가 옆에서 자꾸 말을 걸면 불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가슴이 쿵 하고 울리는 느낌으로 시를 읽는 사람에게 재미있는 티브이 드라마 봅시다.’ 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혹시 그 순간에 내가 아이구, 무서워 죽겠으니 내 옆에 있어줘.’ 하고 매달리면 노망 든 것이다.

임종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상상해볼 수 있긴 하다. 한 사람이 침대에 누워서 의식이 점점 흐려지는 걸 느낀다. 가족들이 여보,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 힘내세요, 하고 말한다. 목사와 교회 어른들이 그 자리에 와서 함께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는 중에 고통 없이, 평화롭게, 맑은 미소를 비치면서 숨을 거둔다. 가족들은 일제히 운다. 그리고 장례를 준비한다. 사람들은 장례식에 모여서 유족들에게 고인에 대한 찬사를 겸한 덕담을 전한다. 유족들도 고인이 행복하게 세상을 떴다고 생각하면서 위로를 받는다. 장례는 고인을 위한 게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니 그런 방식으로 위로를 받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냉정하면 보면 죽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는 장면이라고 하더라도 죽는 순간의 사람을 혼자 죽지 못하게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지 몰라도 내 생각에는 그렇다. 그 무엇보다도 신앙의 관점에서 그렇다.


[레벨:4]선비다움

2018.02.21 17:58:21

목사구원을 처음부터 오늘 36회분까지 다 읽어 보았습니다. 하루하루 새기고 묵상해 보아야 하겠지만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일사천리로 읽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매일 묵상을 읽으며 목사가 천착해야 할 일, 곧 구원경험 혹은 믿음과 삶의 일치에 자신의 삶을 예수께 걸어야 하는 것임을 배웠습니다. 작금의 기술이나 방법론에 몰두하는 영혼의 빈곤함은 목사나 일반 신자나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 참으로 목사(신자도 마찬가지)는 자신이 예수의 구원에 참여하고 있는지 자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무엇보다도 구원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구원을 완성한 것도 아닌 겸손한 구도자로서의 자세가 필요함을 배웠습니다.

 

목사는 아니 구원이란, 성경텍스트에 묻고 또 묻는 진지함과 집중력이 필요한 고단한 삶의 여정에 들어선 사람이요 때문에 고독한 싸움이 시작된 길임을 배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지나가는 삶은 풍성한 생명의 길로 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일어난 구원 사건이 우리에게 그 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임을 분명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죠. 물론 아직은 종말에 가서야 온전하게 이루어질 일들이겠지만 미리 맛본 구원의 경험은 미래에 더 확실히 경험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치열한 신학적 작업이나 깊이가 없이 이끄는 신앙이나 설교나 목회행위가 과연 우리의 삶을 어디로 이끌지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목사는 신자나 교회를 관리나 유지차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경험으로 이끌어야 한다.’ 이것이 말씀 묵상을 읽으며 느낀 저의 한 마디 소감입니다.

 

목사님의 목사구원을 읽으며 최근 평창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일본의 한 선수 인터뷰가 생각났습니다. 이상화를 제치고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미터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1위에 오른 고다라 나오라는 선수입니다. 한국방송에 그 인터뷰가 소개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왜 스케이팅을 하며, 스케이터로서 고리(얼음)는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나는 스케이트 날 아래에 있는 고리(얼음)을 즐긴다. 그것이 내가 스케이팅을 하는 이유이다. 나는 스케이터로서 얼음과 일치되는 것 자체를 즐긴다.”

 

저도 하나님과 일치되는 영혼의 해방감, 매일 이 세상에서 구원을 경험하고 그것으로 기뻐하는 영적인 스케이터가 되고픈 소망을 매일 묵상과 인터뷰를 보며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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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8.02.21 21:20:03

와, 고다라 나오는 단순히 스포츠 선수가 아니라

예술가이고 철학자군요.

저 멘트를 제가 외워둬야겠습니다.

'... 얼음과의 일치...'

선비다움 님의 잔잔하면서도 진솔하고

영혼의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대글을 잘 읽었습니다.

구원론적 목회만이 목사의 영혼을 행복하게 하니까

최선을 다해서 이 길을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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