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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시대의 세계관은 오늘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다. 자연과학의 틀에서 본다면 그들은 유치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분명하다. 예를 들면 그들은 바람의 물리적 현상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태양과 지구와 달의 역학적 관계도 몰랐다. 비가 오는 걸 보고 하늘 위에 물이 있다고 생각했다. 물질의 원소가 몇 개인지도 몰랐다. 그들은 화산 폭발이나 지진을 하나님의 현현으로 생각했으며, 질병과 재앙을 신의 징벌로 여겼다. 이런 걸 일일이 열거하면 끝이 없을 정도로 고대인들과 오늘 우리 사이에는 지식의 양에서 좁혀질 수 없는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근본을 뚫어본다는 점에서는 성경에 속한 사람들이 우리보다 못하지 않다. 아니 우리보다 훨씬 성숙한 사람들이다. 비록 자신들의 제한적인 지식을 바탕에 놓고 생각하고 말했지만 그들의 생각과 말은 원초적인 근원에 닿아있었다. 다른 종교 문헌들도 마찬가지다. 장자와 노자의 글은 21세기 첨단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심층적인 세계를 가리킨다. 그들이 뚫어본 도(道)는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원천적인 토대로서 인간의 인식론에 제한받지 않는다. 플라톤의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이도스가 여기에 해당된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색즉시공(色卽是空)의 공은 오늘의 물리학에 그대로 적용된다. 우주의 대부분이 빈 공간이고, 원소의 대부분도 빈 공간이다. 현대철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노자와 장자와 석가보다 더 뛰어나다고 볼 수 없다. 성경기자들도 이런 이들과 동일한 수준에서 뭔가 근원적인 것을 경험했고, 그걸 자신들의 언어로 표현했다. 그러니 성경의 깊이가 무한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