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오스틴 비판적 읽기 - 12

제 2 장 : 오스틴의 믿음, Case study

5. 오스틴이 말하는 ‘나쁜’ 믿음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행동은 정반대로 할 때가 많다. 명심하라. 믿음은 좋은 쪽뿐 아니라 나쁜 쪽으로도 그대로 이루어진다. 나는 감기를 계획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마트에 가면 자기 미래를 예언하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 벌써 감기철이군. 감기약을 미리 사두는게 좋겠어. 작년에 감기가 극성을 부렸잖아. 그때는 운좋게 넘어갔지만 올해는 어떨지 모르지.”
마치 반드시 감기에 걸릴 사람들 같다. 그들은 부정적 믿음을 넘어 실제로 감기약을 산다. 그리고 며칠 후 정말로 감기에 걸린다. 비록 부정적인 믿음이지만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들은 감기를 기대하고 계획한 탓에 정말로 감기를 불러들였다. 바로 그렇다. 좋은 믿음이든 나쁜 믿음이든 그대로 이루어진다.> (<잘되는 나>, 295쪽)

오스틴은 그의, 책 <잘 되는 나>에서 믿음을 말하면서 거기에 새로운 수식어를 붙여 사용한다. ‘부정적 믿음’, ‘나쁜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신기한 노릇이다. 지금까지 믿음에 관하여 ‘바른’ 믿음인지 아닌지, ‘큰’ 믿음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우리로서는 의아할 따름이다. 오스틴은 그렇게 실로 이해되지 않는 주장을 펼친다. 좋은 믿음이든 나쁜 믿음이든 이루어진다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 그런 말은 듣느니 처음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듣도 보도 못한 주장’이다. 줄여 말하자면 ‘듣보주’이다.

그러나 성경은 나쁜 믿음 또는 부정적 믿음에 대하여 한번도 언급하지 않는다. ‘나쁜 믿음’, '부정적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은 ‘악한 선인’이라는 말처럼 애당초 이루어질 수 없는 단어 조합이기에 그렇다. 분명한 형용모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틴은 버젓하게 그 말을 사용하고 있으니 웬일인가? 오스틴의 그런 믿음 사용법이 올바른지 보기 위해, 먼저 성경에서 ‘믿음’과 관련된 글을 살펴 보기로 하자.

믿음이 있다, 없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너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행함이 있다. 행함이 없는 너의 믿음을 나에게 보여라. 그리하면 나는 행함으로 나의 믿음을 너에게 보이겠다.>(약 2:18, 새번역)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행함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믿음이 그를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약 2:14, 새번역)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막 16:14)

<깨끗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다 깨끗합니다. 그러나 더러워진 자들과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깨끗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정신도 양심도 다 더러워졌습니다> (디도서 1:15, 공동번역)

믿음이 크다(= 강하다, 충만하다, 굳건하다), 적다(= 약하다, 부족하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 15:28)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골2:5)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행 11:24)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 15:1)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우리가 떡을 가져 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마 6:6-12)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 6:30)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마 8: 26)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고전 8: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살전 3:10)

‘나쁜’ 믿음은 존재할 수 없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성경에서는 '나쁜', '부정적'이란 수식어는 믿음과 관련하여 사용된 적이 없다. ‘믿음이 있다, 없다’ 라거나 ‘믿음이 약하다, 강하다’ 라는 것들만 존재할 뿐, 오스틴이 말하는 것처럼 '부정적 믿음', '나쁜 믿음'이란 말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그런 말이 보이지 않을까? 성경이 긍정적인 것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부정적인 말, 나쁘다, 부정적이다 라는 말을 쓰지 않아서일까? 아니다. 그런 '믿음'이 애초에 없었기 때문에 성경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믿음은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요, 있으면 큰가 적은가의 비교급으로 바뀔 뿐이지, '부정적', '긍정적' 또는 '나쁘다'의 형태로는 나타날 수 없는 것이다. 성경에 그런 믿음이 없으니, 오스틴이 주장하는 것처럼 ‘나쁜 믿음’, ‘부정적 믿음’이란 말은 있을래야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오스틴은 '믿음'이란 말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생각하는대로 이루어진다’는 말 대신 ‘믿음’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그것이 마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인 것인 양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 안에 답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그의 글 속에 그런 용법이 잘못되었다는 단서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들은 감기를 기대하고 계획한 탓에’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기대’와 '계획'은 생각의 요소이지, 믿음의 요소가 아니다. 따라서 오스틴이 말하고자 하는 '부정적 믿음', '나쁜 믿음'이 사실은 ‘믿음’이 아니라 단순한 ‘생각’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글은 다음과 같이 고쳐 읽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행동은 정반대로 할 때가 많다. 명심하라. 생각(믿음)은 좋은 쪽뿐 아니라 나쁜 쪽으로도 그대로 이루어진다. 나는 감기를 계획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마트에 가면 자기 미래를 예언하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 벌써 감기철이군. 감기약을 미리 사두는게 좋겠어. 작년에 감기가 극성을 부렸잖아. 그때는 운좋게 넘어갔지만 올해는 어떨지 모르지.”
마치 반드시 감기에 걸릴 사람들 같다. 그들은 부정적 생각(믿음)을 넘어 실제로 감기약을 산다. 그리고 며칠 후 정말로 감기에 걸린다. 비록 부정적인 생각(믿음)이지만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들은 감기를 기대하고 계획한 탓에 정말로 감기를 불러들였다. 바로 그렇다. 좋은 생각(믿음)이든 나쁜 생각(믿음)이든 그대로 이루어진다.> (<잘되는 나>, 295쪽)

물론, ‘생각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말도 터무니 없기는 마찬가지! 그것도 아울러 알아두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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