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없이 성경읽기

 예수님은 ‘말씀’만 강조하셨을까? / 마 4:4, 신 8:1-10
 
마태복음 4장에는 예수님의 시험받으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마귀에 이끌려 광야로 가신 후에 40일을 금식하신 후에 받게 된 시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마귀의 요구에 신명기의 말씀을 가지고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4:4)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구절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떡에게만 관심을 쏟지 말고 영적인 것에, 하나님 말씀에 더 충실하도록 하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시험을 당하는 예수님의 절박한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찬탄의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떡보다는 말씀을 강조하는 이 구절의 의미에 대하여 추호도 의심을 하지 않습니다. 저도 이 구절 자체의 의미에 대하여 그러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흔히들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대립시키는 구절로 이해하는데, 예수님은 이 구절을 단순히 그런 생각으로 인용하셨을까요? 단순히 떡과 대치되는 것으로 말씀을 언급하셨을까요? 그런 식의 이항대립의 의미로 받아 들여도 될까요?

영과 육의 이항대립

이 구절을 그런 식으로, 영과 육의 이항대립으로 이해하는 견해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먹는 문제가 인간의 진정한 삶에 있어서 본질적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떡이 없으면 죽는가? 죽는다. 그러나 그 죽음은 육신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육신만 죽일 수 있는 사람을 두려워 말고 육신과 영혼을 함께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가르쳐 주셨다(마 10:28). 그렇지만,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외적인 것, 물질적인 것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살고 있다. 그래서 영적 생활을 시작할 수 없는 것이다. …중략 ….떡, 빵이 없는 것은 단지 육신의 생명을 해할 뿐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보다 중요한 요소는 그 영이다. 영의 범죄로 인간이 죽었었고 영의 순종으로 인간 속에 새 생명이 시작된다. 이 영의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어진다. 물론 그 영의 순종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 

<사람은 먹는 것으로 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음식뿐 아니라 말씀의 양식 즉 영적인 양식으로 사는 존재이다. 떡(음식)이 육체를 위한 양식이라면, 말씀은 영적인 양식이다. 본래 사람은 영적인 존재인 것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다. 그러므로 영적 욕구가 말씀을 통해 채워질 때 인간은 존재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떡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은 떡이 사라지고 나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게 됩니다. 떡 한 가지로는 심령의 깊은 갈망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떡으로만 살게 되면 절망과 좌절만을 초래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삶은 내적인 만족과 즐거움을 가지고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충성스런 복종의 삶으로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 만족과, 즐거움과, 힘을 주는 생명의 떡입니다>.

존 맥아더도 <A Macarthur Study Bible>
에서 이 구절을 해설하기를, physical hunger 와 spiritual needs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들은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장면에 한정해서 본다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마귀가 제시한 떡 즉, 육적인 허기를 채우는 방편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말씀, 즉 영적인 것을 강조하신 것, 하나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구약 성경 인용 취지

굳이 데리다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영과 육의 이항대립은,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현실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 그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도 육신의 몸을 입고 있었기에, 그 굶주림이 실제상황이었을 것이지만, 과연 우리에게 지금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이 구절,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는 그 말씀으로 우리 현실을 이겨나갈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이 구절을 다른 각도로 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혹시 예수님이 구약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실 때에 다른 의미로 인용하셨는데, 우리가 영과 육의 이항대립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그 구절을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먼저 예수님이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실 때의 그 취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에서 어느 한 구절을 인용하실 때, 과연 그 문장만 생각하고 인용을 하셨을까요? 문맥은 고려하지 않은 채 거두절미하고 전체의 문장 속에서 한 구절만 쏙 빼서 사용하셨을까요? 아니면 그 문장이 소속된 전체 문단의 문맥을 고려하시는 가운에 그 구절을 인용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실 때에 마귀가 하는 것(마4: 6)처럼 단편적으로, 문장의 단어만을 고려하는 식으로는 인용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신명기 원래 본문의 내용

예수님이 그 구절을 인용하신 참 뜻을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인용하신 성경말씀으로 돌아가 그 의미를 찾아봐야만 합니다. 바로 신명기 8장 3절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

그런데 이상한 점이 발견됩니다.
예수님이 인용하신 구절(마4:4)이 소속된 원래의 본문(신명기 8장 1-10절)을 살펴보면,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대립시켜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예수님이 인용하신 구절인 마태복음 4장 4절은 분명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대비시켜 언급하시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본래 본문인 신명기에서 8장 4절 이하를 살펴보면, 예수님이 언급하신 ‘말씀’(곧,영적인 것)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이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영적, 물적 그런 의도로 이 말씀(신 8:3)을 인용하신 것으로 생각한다면, 당연히 그 뒤를 이어 그 말씀을 뒷받침하는 구절들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신명기 8장 4절 이하를 살펴보면,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을 것에 관하여 계속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 즉 영적인 것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 요지라면, 신명기 8장 1-10절에서 3절 이하에 연이어서 나오는 구절들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이 영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그 다음에 영적으로 인하여 생기는 복이라든지, 영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들을 열거하는 것이 논리상 맞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들은 그러한 기대를 무너뜨리는 말들입니다.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4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7-8절)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9절)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10절)

위에 인용한 구절 중 어느 하나 영적인 것을 의미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모두다 육적인 것들뿐입니다. ‘의복’, ‘발’,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등 육적인 것을 강조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왜 예수님은 그런 육적인 것, 즉 먹을 것을 계속하여 언급하고 있는 원래의 구절에서 3절만 쏙 빼어낸 다음에,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답변인즉, 우리가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에 대응하는 말씀(마4:4)으로 쓰인 이 구절을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해석을 쉽게 해버리고, 그래서 정작 중요한 의미를 놓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신8:3)은 원래의 맥락에서 홀로 떨어져 나와 신약 마태복음 4장 4절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더니, 이제는 그 자체로 더 강한 의미를 가진 말씀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즉 영적과 육적인 것을 구분하는 대표적인 구절로 변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영과 육의 철저한 분리(?). 떡이 아니라 말씀! 무슨 구호같기도 한 그런 명제가 이제 무너뜨릴래야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한 성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의 원래 말씀에는 3절에 이어 그 구절을 보완해주는 4-10절의 말씀이 있었는데, 그 누구도 그 구절들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3절까지만 읽고  4절 이하의 말씀은 다 잊었습니다. 8절, 9절, 10절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을 것’에 대한 배려를 해주시고 계시는데, 그만 '빵만으로 살 것이 아니라' 라는 말씀이 우위를 차지하는 바람에 이 구절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 번역의 문제

왜 그런 일이 생긴 것일까요? 바로 번역의 문제입니다. 우리말 성경은 대부분 ‘모든 말씀'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영어성경 중에서 그렇게 번역해 놓은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원어를 찾아보면, 히브리어 성경에는 '말씀'이란 단어가 없습니다.
그리고 영어성경중에서도 NASB 와 Expanded bible은 ‘모든 것’(everything)으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He humbled you and let you be hungry, and fed you with manna which you did not know, nor did your fathers know, that He might make you understand that man does not live by bread alone, but man lives by everything that proceeds out of the mouth of the LORD."

Revised Standard Version (RSV)도 이를 좇아 '모든 것'(everything)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말씀’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것이 말씀이라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만, 생각해 봅시다.
입으로 나오는 것이 어디 ‘말씀’뿐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1:3), 하나님의 입으로 말씀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창1:6), 하나님이 입술로 말씀하시니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신 것,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이 어떤 때에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신명기 8장 3절에서 번역하기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언뜻 보면 맞는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고 오히려 '모든 역사', '모든 것'이라 해야 맞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신명기 구절을 인용한 마태복음 4장 4절에서 ‘말씀’이라는 단어는 희랍어로 ‘레마’입니다.
이 ‘레마’를 단순히 ‘말씀’으로만 번역하기에는 부족합니다. 희랍어에서 레마의 정의는 ‘word’라는 의미 외에 ‘thing’ 이라는 의미도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every word 라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지만 everything라고도 번역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신명기 8장 3절의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 그리고 마태복음 4장 4절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바꿔 읽어야만 그 의미가 훼손되지 않고 바르게 전달이 될 것입니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4:4)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8:3)

그렇게 해석을 해야만 신명기 8장에서 3절의 뒤를 이어 4절, 7-8절, 9, 정, 10절 이 등장하는 것들이 사리에 맞게 됩니다. 그런 것들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에 해당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에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을 인용하실 때에, 그 구절을 단순히 영적 육적  분리를 염두에 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것으로 살아야 한다는 취지로 말씀하신 것인데, 우리들은 그 구절을 영과 육의 이항대립으로 받아들여 결국은 하나님을,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오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떡으로만 살아가는 게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되, 우리에게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육적인 모든 필요까지도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그들을 먹이시고 보살피시며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4장 4절에서 잘 못 비롯된 영과 육의 이항대립을 해체시켜, 이 세상을 온전히 주관 – 영과 육 모두- 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우리 입술로 나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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