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날

조회 수 11624 추천 수 1 2009.12.22 21:37:14
 

동짓날



오늘은 일 년 중에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동짓날이다. 이런 날은 매년 우리에게 왔다. 그리고 갔고, 앞으로 다시 올 것이다. 언제까지 올 건가? 영원히 반복되지 않는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지구의 기울기가 달라지면 낮과 밤의 길이도 당연히 달라질 것이다. 지금도 북극 가까운 마을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밤이 길다.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는다. 지구와 거기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은 마치 마술과 같지 않은가. 

동지가 올 때마나 나는 빙하기를 견딘 까마득한 우리 조상을 기억한다. 지금 우리 인간과 비슷한 유인원들은 각자 처해진 상황에서 빙하기를 맞았다. 겨울이 점점 길어지고 여름은 짧아진다. 먹을거리를 찾기도 힘들다. 어른들은 그런대로 추위와 굶주림을 견뎌낸다 하더라도 아이들과 노인들은 결정적인 위험에 노출되었다. 가족 전체가, 그들 종족 전체가 멸종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마치 거대한 혜성이 3달 뒤에 지구와 충돌한다는 확실한 사실을 접한 현대인들처럼 말이다. 오늘이야 인간의 과학기술로 어떤 조치라도 취할 수 있지만 고대인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지질학적 보고에 따르면 지난 지구 역사에서 빙하기는 네 번 이상의 큰 빙하기가 있었다고 하다. 최근의 빙하기는 4천만 년 전 남극 빙상의 발달로 시작해서 3백만 년 북극 빙상의 발달로 크게 확대된 것이다. 그 뒤로 빙하 현상이 확대되고 축소되는 현상이 반복되다가 1만 년 전에 끝났다. 북극 빙상이 크게 발달한 3백만 전은 호모 에렉투스(직립인)가 나타난 시기이다. 그들에게 닥친 혹독한 시련이었으리라. 다행히 불의 발견으로 그 악조건을 견뎌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뒤로 여러 유인원들이 크고 작은 빙하 현상에 노출되었다. 대다수의 유인원들이 멸종하고, 지금 인간의 조상이 된 한 유인원만이 생존했다.

45억 살을 먹은 지구가, 마치 사람이 홍역을 앓듯이, 네 번의 큰 빙하기를 겪었다면 앞으로 또 빙하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그걸 누가 단언하겠냐만, 또 빙하기는 절대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보다는 앞으로 40 여 억년을 더 지탱해야 할 지구에 빙하기가 찾아온다는 말이 훨씬 개연성이 높다 하겠다.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날는지 우리는 예측할 수 없다. 지구의 생태적 현상은 아주 짧은 시간 안에서는 예측할 수 있지만, 조금만 뒤로 넘어가면 그게 아예 불가능하다. 1억년 후에 지구가 어떻게 변할지 누가 계산해낼 수 있단 말인가?

예측 불가능성은 시간이 길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지구의 생명 메커니즘이, 그 물리적이고 생물학적인 메커니즘이 총체적이라는 사실에 연유한다. 지구 내부의 맨틀 층이 어떻게 변하는가에 따라서 인간의 운명도 좌우된다. 지구 대기권의 공기 배합이 균형을 잃으면 지금까지의 모든 생명 형식은 그 근거를 잃는다. 지금 사람이 모여 살고 있는 마을이 해발 5천 미터 정도의 공기밖에 없는 생활환경으로 바뀐다고 가정해보라. 그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은 지구의 생명 현상 메커니즘의 변화에 따라서 얼마든지 가능하며, 그것이 또 생명 현상 메커니즘 자체를 바꾼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 자신보다는 엄청나게 큰, 결정적으로 다른 것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다.

동지는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만약 동지가 계속된다면 결국 우리는 더 이상 이 땅에 살지 못할 것이다. 지금의 동지보다 밤이 더 긴 날도 올 수 있다. 밤이 점점 길어져서 낮이 아예 없어지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건 아주 간단하다. 지구의 자전이 그치면 지구의 한쪽은 영원한 밤이다. 그곳은 얼음으로 뒤덮일 것이다. 다른 한쪽은 영원한 낮이다. 그곳은 황무지나 사막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동지는 그런 날에 대한 예표다.

인간은 개인적으로 언젠가는 동짓날을 맞아야 한다. 우리는 밤이 늘어나고 낮이 짧아지는 순간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발버둥을 친다고 하더라도 우리 운명에 밤의 시간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언젠가는 영원한 밤의 세계로 들어가리라. 죽으리라.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그 절대 어둠으로 빠져들 것이다.

그러나 동짓날은 새로운 희망의 날이다. 이 날부터 다시 낮이 기운을 차린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왜 12월25일을 성탄절로 삼았는지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동양의 동짓날이 로마에서는 12월25일이었다. 양쪽 모두 밤이 가장 긴 날이면서 동시에 낮이 다시 늘어나는 날이었다. 어둠의 세계가 빛의 세계로 전환되는 카이로스였다. 예수는 생명의 빛이다. 그로 인해서 죽음의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인류가 생명을 얻게 되었으니 이 날을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 어둠과 죽음의 깊이를 아는 것만큼 우리에게는 예수를 통한 빛과 생명의 깊이가 열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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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9]유니스

2009.12.24 17:05:17

동짓날을 이렇게  묵상하기는 처음입니다.

마침 읽고 있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에 이런 글이 나오는군요.

 

일찍이 알라누스 데 인술리스는 이렇게 노래하셨느니라.

"이 세상 만물은 책이며 그림이며 또 거울이거니

장미는 우리의 모습을 그리고, 우리의 운명을 설명하고, 우리의 삶을 읽어준다.

장미는 아침에 피어, 만개했다가  이윽고 시들어가니까."

그분은 하느님께서 피조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끝없는 영생의 상징 속을 거니셨느니라. 

 

목사님 덕택에 동짓날 팥죽만 생각하다가  이런 서늘한 가르침을 배웁니다.

[레벨:8]성요한

2010.12.23 18:56:14

동짓날을 멋진 시각을 묵상하셨군요!

 

저도 지리산 골짝에서 동짓날 달밝은 밤에

희미하게 보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눈이라는 시를 한 수 썼습니다.

 

사랑채에 올렸는데

 

여기도 복사 해 놓습니다.

 

눈/시각

성요한

 

 

지구에 사는 우리 눈에

달은 가장 큰 별이지만

우주의 가장 작은 별이랍니다.

 

 

내 입장만 생각하면

크게 보이는 것도

입장을 바꿔 보면

별것 아닌게 있죠!

 

 

내게 너무 익숙한 것들이

항상 문제가 되죠!

 

 

그래서,

때로는

자기 눈을 가릴 필요가 있죠!

 

 

‘달을 보기보다 손가락만 바라보는 눈’을.

 

 

달빛에 가려

보일 듯 말듯 희미한 저 별도

사실은 달보다 수백 배 크고 밝은 별이라네요.

 

 

달이 밝고 크게 보인다고

우주에서 가장 큰 별이라 우긴다고

그게, 과연...... 믿음일까요?

 

 

저 별이 비록 희미하게 멀리 보여도

세상을 아름답게 비춰주는

별이랍니다.

 

 

추신: 2010년 대림절 달 밝은 동짓달 보름 어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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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예베슈

2012.01.27 08:43:14

정 목사님께서 자연과학을 전공하셨다고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역시 인기 짱 이셨을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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