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0356.jpeg


오후 햇살이 무척 좋아 기분 좋게 대문도 없는 집을 나섰다

불어오는 바람도 강한 듯 하지만 볼에 와닿는 느낌은 상쾌하고 부드러웠다

집에서 조금만 아랫쪽으로 내려가면 좋아하는 대왕참나무 숲이 있고

그 뒷줄에는 잣나무도 작게 군락을 이루고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겨울나목들의 선을 음미하며 타박타박 그 숲 옆을 지나는데

때마침 강한 바람이 무리로 달려와 숲을 오롯이 휩쓸고 지나갔다

쏴아아~  살그랑 찰그랑~

아름다운 화음이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바람이 휩쓸고 가는 잣나무 군락에서는

초록바늘 무수한 잣나무잎 틈 사이사이로  쏴아아~하고 

바람이 휘집으며 내는 힘찬 파도 소리가 났다

붉으레 곱던 단풍이 겨울이 되어 색이 빠지고 마르고 말라

물기라곤 하나도 없이, 그러고도 봄이 되도록 달려 있는 대왕참나무 잎은

비어진 마른 몸에서 종처럼 맑고 경쾌한 소리, 살그랑찰그랑~

그 소리가 얼마나 매력적이며 마음을 간질거리게 하는지,

간혹 바람이 부는 날의 산책에서는 대왕참나무 아래서 한참을 그 소리에 빠져 서 있곤 한다


오늘은 두 나무군락 사이에 서서 그 아름다운 하모니에 빠져버렸다

신의 지휘아래 강한 바람이 지나가고 두 나무의 악기가 어우러진 자연의 협주곡,

가을, 풀벌레의 오케스트라 연주뿐만 아니라

오~ 겨울엔 바람과 나무들의 연주도 있었구나….감동의 마음,

움직임도 잊은 채 이어지는 연주에 몰입했다.


산골에서의 겨울은, 풍경도 채도 낮게 가라앉고, 사위도 더욱 고즈넉하다

또, 봄은 도시보다 한참 늦게와서 긴 겨울이 내게 제일 힘든 계절이었다

색에 민감하다보니 변화없는 무채색 풍경이 지루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눈과 귀를, 마음과 생각을 여니 흥미진진, 점점 매력적인 겨울이 되고 있다

느끼고 깨닫는 만큼 세상은 풍요로운 선물로 가득하다  단지,

내가 못보고 못듣고 못느낄뿐이었구나 또 다시 느낀 순간이었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