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일
택배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어제 오후에 낯선 전화가 왔다. 보통 때는 내 폰에 입력되지 않은 번호는 받지 않는데, 어제는 무슨 느낌이 왔는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떤 젊은 여자 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택배 왔는데, 집에 계시지요? 5분 안에 도착합니다. 택배 직원들은 대개 남잔데 간혹 여자들도 있다.
5분이 아니라 2분 만에 택배 짐차가 우리 집 쪽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서 밖으로 나갔다. 비도 오고 하니 가능하면 내가 차 앞에 나가서 물건을 받아올 생각이었다. 내려가면서 보니 짐칸의 문이 열렸고 여자가 문 안쪽을 들여다보고 남자가 짐칸에서 물건을 골라내고 있었다. 둘 다 젊었다. 남매처럼 보이기도 하고, 부부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슨 관계냐고 물으려 하다가 공연한 거 같아서 그만두고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면서 물건만 받아 올라왔다.
택배 일은 정말 단순 노동이다. 아침에 가서 물건 받아 하루 종일 집에 배달하면 된다. 물론 물건 주인이 없을 때라든지, 무서운 개가 있다든지, 주인이 물건 인수를 하지 않으려고 할 때도 있어서 늘 쉬운 거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다른 직업에 비해서는 크게 신경 쓸 일은 없어 보인다. 서울샘터 교우 중에 택배 일을 하는 분이 있어서 가끔 물어보면 자기 적성에 딱 맞아서 70세까지는 즐겁게 하고 싶다고 한다. 수입도 그런대로 만족스럽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지 아니면 눈높이를 낮춰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어제 택배 일을 하는 젊은 부부를 보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도 젊었다면, 그리고 목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아내와 함께 택배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제의 그 부부는 인상이 좋았다. 특히 아내로 추정되는 젊은 여자의 웃음 띤 얼굴이 인상 깊었다. 막 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면서도 저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얼굴을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고상한 일을 하면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