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9일
속죄 제사
어제 설교를 이해하는데 키워드는 속죄 제사다.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가 어떤 의미인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그걸 설교 시간에 간단히 언급했지만 보충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사람들은 보통 겉으로 나타난 파렴치하고 부도덕하고 폭력적인 행위를 죄라고 생각한다. 옳은 생각이다. 그런 행위들은 생명을 파괴한다. 그러나 죄에는 더 심층적인 차원이 있다. 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드러나는 행위의 존재론적 깊이에서 삶을 파괴하는 차원을 가리킨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이미 간음한 것이고, 친구에게 욕하는 자마다 이미 살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의 법은 겉으로 드러난 행위만을 규정할 뿐이어서 이 문제를 결국 해결할 수 없다. 법은 여기서 필요조건이되 필요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여기 살인범이 있다고 하자. 살인죄로 기소되면 그는 10년, 또는 20년 감옥살이를 해야 한다. 이것으로 살인에 연루된 수많은 일들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살해당한 남자의 아내, 또는 자식들이 겪어야 할 앞으로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상상해보라. 그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서 더 큰 불행하고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다. 트라우마를 해결하지 못한 정치 지도자나 종교 지도자에 의해서 벌어지는 일들을 우리는 역사에서 종종 경험한다. 살인자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그가 그런 끔찍한 행위를 하게 되는 데에는 수많은 사건들이 연관되어 있다. 그의 행위에 대한 책임이 그에게 없다는 뜻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난 행위 이면을 인간은 완전하게 추적할 수 없다는 뜻이다.
고대 이스라엘은 인간 삶의 심연에 은폐되어 있는 이런 엄청난 문제를 법과 윤리와 제도로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하나님께 속죄 제사를 드렸다. 나는 그들의 이런 태도가 옳다고 보며, 그들의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되었다는 신약성서의 주장 역시 옳다고 본다.
세상은 참 요지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