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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23일
의로워짐
구약의 속죄제사는 죄를 용서받는 종교의식이다. 죄를 용서받는다는 것은 의로워진다는 뜻이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최대 관심은 의(義)다. 율법의 정수가 바로 의다. 이런 열정이 지나쳐서 율법주의에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의를 얻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초기 기독교가 주장한 의는 고대 이스라엘의 그것과 달랐다. 율법 실천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게 의에 이르는 길이었다. 예수를 믿음으로써 의로움을 얻는다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없지 않다. 세상과 종교 양측으로부터 오해받는다. 세상의 기준과 종교의 기준이 기독교의 기준과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의 기준은 학력과 지위 등이고, 종교의 기준은 경건한 삶의 태도 등이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예수를 믿는 것은 의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없다. 이런 비판에 대해서 기독교는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지난 설교에서 ‘의’는 단순히 인간이 행하는 도덕성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만 가능한 생명의 능력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인간의 도덕성은 근원적으로나 파생적으로 양면성이 있어서 그것만으로 의를 얻는다고 말하기 어렵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생명 능력이 예수의 운명에서 실행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를 믿음으로 의로워진다고, 즉 생명을 얻는다고 믿는다. 이게 옳은지 아닌지는 여전히 논쟁 중에 있다. 이 논쟁은 종말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안고 가야 할 것이다.
목사님
저 김가연입니다
그간 평안 하셨는지요
어쩌다 길 잃고 살다 이제야 돌아 왔습니다
지금도 창원에서 염소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이제 종종 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