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4일
모두 죽는다(7)
우리가 죽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건 죽기 싫다는 욕망의 좌절에 기인하기 때문에 죽지 않으면 당연히 행복해야 할 것이다. 아무도 죽어본 경험이 없어서, 또는 죽음을 넘어선 경험이 없어서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우나 실제로 죽지 않는다면 행복을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비유적으로 생각해보자. 여기 대학생이 한 사람 있다. 졸업도 없이 계속 학생으로만 남게 된다면 그는 그 상황을 견뎌내지 못할 것이다. 교수도 마찬가지다. 5년이나 10년이 아니라 정년 때까지 계속해야 하는 일에 흥미를 잃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가 수행하듯이 학문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한 여자, 또는 한 남자와 평생을 사는 부부 관계는 어떤가? 세월이 흐르면서 둘의 관계가 매너리즘에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사랑의 농도가 세월과 더불어서 진해질 수 있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만약 결혼이 5년, 또는 10년만 함께 사는 제도라고 한다면 두 사람의 관계가 훨씬 친밀해질 것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원리적으로는 그렇다. 똑같은 삶의 반복을 사람은 견뎌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우리 모두 피하고 싶어 하는 죽음은 오히려 은총이다. 죽음으로 인해서 삶이 빛을 내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죽음이 있어야만 삶도 있는 거고, 죽음이 없으면 삶도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죽음이라는 섬뜩한 느낌으로서의 불안을 떨쳐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년의 결실이란 전에 이룩한 선(善)에 대해 회상할 일이 많다는 것이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무엇이든 선으로 간주되어야 하네. 한데 노인들이 죽는것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또 어디 있
겠는가? 젊은이들도 똑같은 일을 당하지만 그럴 경우에는 자연이 반항하고 저항한다네. 그래서 젊은이
들이 죽으면, 마치 강한 불길이 많은 양의 물에 의해 꺼지는 것처럼 보인다네. 그러나 노인들이 죽으면,
마치 외부의 힘이 가해지지 않는 가운데 불이 다 타서 저절로 꺼지는 것처럼 보인다네. 그리고 마치 과
일이 설익었을 때에는 따기가 힘들지만 농익었을 때에는 저절로 떨어지듯이 젊은이들에게서는 폭력이,
노인들에게서는 완숙이 목숨을 앗아 간다네. 그리고 내게는 이런 '완숙'이란 생각이 너무나 즐거워. 내가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침내 항해 끝에 마침내 육지를 발견하고는 항구에 입항하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네.
교수님의 글은 진짜 솔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