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3일
모두 죽는다(6)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가장 분명한 것은 우리 몸이 지구의 원소로 해체된다는 사실이다. 그게 바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는 말씀이 가리키는 것이다. 이런 말씀이 실감나지 않을 수도 있다. 내 살, 내 피부, 내 혈관과 피가 너무 확실한 것이라서 이 모든 게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이론적으로는 동의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잘 안 된다. 이론과 실제의 부조화로 인해서 사람들은 몸을 가꾸는 일에 과도할 정도로 삶의 에너지를 쏟는다. 그런 방식으로 자기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사람은 몸만이 아니라 영혼도 있다. 죽으면 영혼은 어떻게 될 것인가? 기독교인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답은 영혼불멸이다. 몸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 예수도 이런 방식으로 말씀하신 적이 있다. 영혼불멸설은 부활 사상의 빛을 약화시킨다. 그리고 영육 이원론의 위험도 따른다. 이런 문제는 신학적으로 아직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영혼불멸도 틀리지 않으며, 완전한 죽음으로부터의 부활도 옳고, 영육 이원론은 오류이고, 그래서 몸의 부활이 옳다. 이런 관점들이 경우에 따라서 서로 모순되는데, 신학은 그런 모순을 억지로 해결하지 않는다. 모순은 모순 그대로 안고 가면서 그 모든 비밀이 드러날 순간을 기다린다.
말이 약간 옆으로 흘렀다. 다시 오늘의 주제로 돌아와서, 죽으면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방식의 모든 삶은 완전히 끝난다. 여기서 즐거웠던 것들이나 슬픈 일들이나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이데거 식으로 표현해서 모든 것들과의 무연관성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세상 마지막 때 부활의 세계로 들어간다고 믿는다.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윗글의 논지에서는 조금 벗어나지만
제가 다비아에 와서 바뀐 주요한 시각 중에 하나가
'모순은 모순 그대로 안고 가면서 그 모든 비밀이 드러날 순간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시각의 변화가 조급함이나 서두름, 과도한 집착 없이 진리를 응시하고
꾸준히 걸어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준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진리를 내가 다 알 수 있고
알아야만 한다는 교만과 욕심을 조금이나마 내려논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도 잠시였으니
이제 잠시 후면 하이데거의 표현대로 무연관성으로 떨어지겠죠?
정말 그 곳은 어떤 곳일까? 지금 저라는 자아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요?
정말 궁금하기는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