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7일
나의 묵시적 운명
나는 아직 씩씩하게 걸을 수 있다. 테니스장에 나가면 젊은 사람 못지않게 뛴다. 나는 아직 숨을 편안히 쉴 수 있다. 음식을 씹을 수 있고, 물을 마실 수 있고, 적당하게 소화시켜서 필요한 양분을 섭취하고 나머지는 배설할 수 있다. 샤워도 할 줄 알고, 양말도 내 손으로 신고, 신발도 스스로 신는다. 뭘 볼 줄도 알고 냄새를 맡을 수도 있고, 손을 만져서 촉감을 느낄 수도 있다. 생각할 줄도 알고 성경을 해석할 줄도 알며, 음악을 감상할 줄도 안다. 이렇게 일일이 열거하다보니 내가 할 줄 아는 게 참으로 많다. 이게 아직 내가 살아있다는 흔적들이다.
그런데 이런 모든 능력들이 사라져버릴 순간이 곧 들이닥칠 것이다. 혼자서 걷기도 힘들고, 씻기도 힘든 순간이 온다. 시나브로 그렇게 되기도 하고, 갑자기 그렇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살아있다는 조짐들이 완전히 멈추는 순간이 온다. 숨을 쉬지 못하고, 심장이 멈추고, 모든 의식이 멈추는 순간이 말이다. 그런 절체절명의 순간을 늘 각오하고 산다. 그걸 생명의 블랙홀이라 불러야 할지, 의식의 백야라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생명 현상이 멈추면 내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분자와 원소들은 급속히 해체의 길로 들어선다. 죽은 시체를 매일 한 장의 사진으로 찍어서 10년 후에 동영상으로 돌려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게 될 것이다.’는 말씀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나의 운명은 묵시적 대파국을 앞에 두고 있다. 그것마저 하나님의 손길이니 거룩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침부터 목사님 신앙에 감탄하고 갑니다.
그것마저 거룩하다니요. 저도 이런 수준에 도달하고 싶습니다. 늘 강건하셔서 좋은 말씀 오래도록 보고 듣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