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에티오피아 내시
(행 8:26-40)        
12월21일

사마리아에서 다시 유대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열 두 사도는 아니었지만 사도들 못지않은 영적인 권위를 소유한 헬라파 기독교 공동체의 일곱 지도자들 중에서 스데파노는 첫 순교자로서 기독교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으며, 지난번에 이어 오늘 우리가 다시 한번 더 공부하게 될 필립보 역시 기독교 역사에서 가볍게 처리될 수 없는 인물이다. 그 이유는 기독교의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이방인에게 이르는 그 과정에서(행 1:8) 빌립보가 사마리아와 이방인 선교의 장을 열었기 때문이다.
  원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북쪽 지역 갈릴리에서 시작되었지만 예수 이후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터를 잡은 곳이 바로 예루살렘이었기 때문에 누가는 예루살렘을 세계 선교의 구심점으로 제시했다. 유대는 지리적으로 예루살렘을 포함하는 남쪽 지역을 가리킨다. 복음의 출발이 예루살렘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유대 지역이 복음을 가장 빨리 받을 수밖에 없다. 사마리아 지역 출신들은 유대와 같은 이스라엘에 속해 있으면서도 혈통적으로나 종교적인 점에서 유대인으로서의 순수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유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달리 별도 취급을 받았다. 그 지역은 기독교의 세계 선교 과정에서 세 번째의 위치에 놓인다. 필립보를 비롯한 헬라파 기독교인들이 유대 지역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겠지만 누가는 빌립보에 의한 사마리아 전도만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지리적인 순서로만 본다면 사마리아 선교 다음에는 갈릴리 선교가 뒤따라야 하지만 누가는 이 문제를 지리적인 차원보다는 복음이 유대의 중심으로부터 이방세계로 확장되는 차원에서 보았기 때문에 갈릴리를 취급하지 않고 이방 선교로 직접 넘어간다. 합법적으로 이방인 선교에 초석을 놓은 사람은 로마 백부장인 고르넬리오에게 복음을 전한 베드로였지만(10장), 본격적으로 이방인 선교를 활성화한 사람은 자칭 이방인의 사도라 부를 정도로 이방선교에 헌신한 사도 바울이었다.
그런데 베드로와 바울의 이방인 선교가 보도되기 전에 에티오피아 고위관리에게 복음을 전한 필립보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것은 누가가 초기 기독교에 관한 여러 전승을 취사선택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직관적으로 이 에티오피아 사람을 이방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누가는 그 사실을 고의로(?) 누락시킨다. 반면에 누가는 로마 백부장이었던 고르넬리오 사건에서는 그를 이방인이라고 명시적으로 밝힌다는 것을 보면, 여기에는 어떤 편집사(史)적 내막이 숨어 있는 것 같다. 헬라파 지도자인 필립보에 의해서 이방인 선교가 시작되었다는 전승을 알고 있었지만 열 두 사도의 권위를 약화시키지 않기 위해서 이방인 선교의 역사적 사실을 유보하고 있다는 말이다. 어쨌든지 우리는 이미 행간을 통해서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사마리아를 거쳐, 이제 이방인들에게까지 이르게 된 역사적 분기점을 읽을 수 있다.

필립보와 에티오피아 사람의 만남
필립보의 사마리아 전도가 예루살렘에서 파송된 베드로와 요한에 의해서 보완 받은 후 빌립보는 이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본문 26절에 의하면 ‘주의 천사’가 빌립보에게 나타나 “여기를 떠나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남쪽 길로 가라”고 지시한다. 천사의 지시를 그대로 따르던 빌립보는 그 한적한 길에서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케의 재무를 총괄하는 사람인 한 ‘내시’를 만난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여왕이 다스리던 그 시대에 내시를 가장 중요한 재무관리 총책으로 삼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그것이 반드시 거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궁정관리를 지칭하는 말일 수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지 필립보가 만난 에티오피아 고위관리는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끝내고 아프리카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차에서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다.
누가는 ‘주의 천사’가 나타나서 필립보에게 일러주었다고 설명한 다음, 이어서 ‘성령’이 “가서 저 마차에 바싹 다가 서 보아라” 하고 말씀하셨다고 전한다(29). 그뿐만 아니라 누가는 필립보가 에티오피아 사람에게 설교하고 세례를 베푼 다음에 ‘성령’이 빌립보를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고 묘사하고 있다(39). 우리는 이런 현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실증적으로 접근할 수는 없다. 여기에는 인간의 인식과 해석, 심리적이거나 예술적 감동에 연관된 여러 요소들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상황을 해석하고 선택할 때 그 과정에서 어떤 초월적 힘을 경험할 수 있는데, 그것을 천사, 또는 성령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필립보가 졸지에 사라졌다는 것은 에티오피아 사람이 어떤 깊은 감동 속에서 머물러 있는 순간의 경험, 즉 일종의 엑스타시 순간의 경험인지 모른다. 필립보가 정상적인 방식으로 자기 갈 길을 갔지만 무아의 경지에 들어간 사람의 눈에는 갑자기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는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아야 한다. 우리가 아직 모르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초월적 능력이 이 사건에 개입했을 수도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해석과 심리의 과정을 통해서 그런 힘들이 활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흡사 시인이나 작곡가들이 어떤 힘에 사로잡혀 창조 작업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말씀 해석
필립보는 마차에서 이사야서를 읽고 있는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그 뜻을 아는지 물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누가 나에게 설명해 주어야 알지 어떻게 알겠습니까?”(31). 이 내시가 원래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는지 아니면 이방인으로서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성지 순례를 하고 구약의 예언서를 들고 다니면서 읽을 정도로 종교적인 사람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에티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여행에 쏟았을 모든 노력을 생각한다면 그의 종교적 열정이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이 사람은 여왕의 총애를 받은 소수의 사람에게 내린 특전을 몽땅 이 성지순례에 투자했을지도 모른다. 양피지로 만든 이사야서를 끼고 다니면서 읽을 정도였다는 사실도 역시 그의 종교적 열정의 강도를 읽을 수 있게 한다. 그렇지만 그는 자기가 읽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 상황을 답답하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뜨거운 종교적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에티오피아 고위 관료가 이사야서를 이해하지 못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지금 읽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라는 필립보의 질문에 대해서 내시가 모른다고 대답한 것은 당연할 뿐만 아니라 모르면서도 아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하다. 우리가 종교 경전이나 문학 작품을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가장 일차적인 이유는 그 작가의 정신세계를 따라잡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낱말이나 문장은 우리가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대충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이 모여서 이루어진 한 작품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만약 모든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고전에 속하는 작품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성서와 기독교의 가르침을 대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은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질문하지도 않는다. 한국 교회 신자들처럼 질문이 없는 신자들도 없을 것이다. 질문하지 않고 주어진 것을 무조건 믿기만 하면 좋은 신앙인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믿음이라기보다는 광신에 가깝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광신을 기독교적 ‘영성’으로 오해한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일지 모르겠다. 참된 영성은 궁극적인 생명이신 하나님에 대해서 진리의 차원에서 끊임없이 질문함으로써 생명의 세계로 심화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질문의 문을 닫아걸고 단순히 감정의 차원에서 자극받는 것을 영성으로 생각함으로써 영성의 본질을 훼손시킨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의 근본 교리(도그마)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부활하심으로 참된 생명의 세계를 선취하셨으며, 이 세계를 심판하러 오신다는 신조를 우리는 옳다고 믿는다. 다면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은 이 신조가 늘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런 신조의 실체적 리얼리티가 역사의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깊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 열린 자세로 참여하는 게 영성이다.

세례 이후
내시는 깨달음이 있자 곧 세례를 받고 싶어 했다. 내시에게 세례를 베푼 필립보는 자기 길을 갔고, 내시도 역시 자기 고향을 향해서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누가는 여기서 이 내시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자 주의 성령이 필립보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셨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볼 수 없게 되었지만 기쁨에 넘쳐 제 갈 길을 갔다.”(39).
세례, 기쁨, 길이라는 세 단어에서 우리는 기독교의 본질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예수와 함께 죽고 그와 더불어 다시 산다는 의미의 세례는 우리의 삶을 완전히 예수에게 위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당연히 우리를 존재론적 기쁨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왜냐하면 세례는 우리의 신분이 완전히 바뀌는 종교적 징표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3개월 이상 매일 교리를 배워야 하는 로마 가톨릭의 영세교육에 비해서 단 한 두 차례의 형식적 교육으로 끝나는 개신교회의 세례교육은 이런 점에서 문제가 적지 않다. 심한 경우에는 본인이 세례받기를 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강요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받는 일도 벌어진다. 특히 수백 명, 수천 명씩 집단적으로 세례를 베푸는 군대 교회의 세례 이벤트는 세례의 의미를 추락시킬 뿐이다.
오늘 본문의 내시는 세례를 받은 다음, 필립보가 사라졌지만 그래도 기쁨이 넘쳤다고 한다. 기독교적인 기쁨은 사람과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황이 변했다고 하더라도 기쁨의 능력이 손상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더구나 내시는 그런 기쁨으로 자신의 길을 갔다는 점이 중요하다. 기독교 신앙은 각각의 신자들에게 자신의 ‘길’을 독립적으로 가게 한다. 자신에게 깨달음을 준 사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깨달음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미 동양의 스승들은 깨달음이 있는 제자들을 붙들어두지 않고 떠나서 자신들의 길을 가게 했으며, 지혜로운 부모들은 자식들로 하여금 빨리 독립하도록 가르친다. 세상의 이치도 그렇지만 기독교 신앙에서도 역시 사람에게 매달리는 게 아니라 진리 자체에 집중하는 게 핵심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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