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 1월3일(목)

조회 수 2938 추천 수 0 2013.01.03 21:24:17

     오늘 오후에 큰 딸이 대구문예회관에서 (아르바이트) 연주가 있다고 해서 지하철역까지 차로 데려다 주기로 했다. 하양에서 대구문예회관에 가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차를 운전해서 가는 거다. 밀리지 않으면 한 시간 걸린다. 다른 하나는 버스를 타는 거다. 하양에서 출발하는 518번은 대구 시내를 관통하느라 두 시간이 족히 걸린다. 세 번째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거다. 딸은 지하철을 선택했다. 지하철은 단번에 가지 않는다. 하양에서 안심역까지 버스가 차로 가야하고, 안심역에서 서부정류장까지는 지하철, 서부정류장에서 문예회관까지 택시를 타야 한다. 서부정류장에서 문예회관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긴 하지만 이렇게 추운 날은 어쩔 수 없다. 이야기를 줄여야겠다.

     나는 먼저 나와 아파트 지하에 놓아둔 차를 몰고 나왔다. 뒤따라 나온 큰 딸이 아파트 아래 현관에서 내 차의 뒷자리로 올라탔다. 아파트 마당이 여전히 눈얼음으로 덮여 있어서 조심스레 차를 몰아 아파트 밖으로 나왔다. 기름 계기판이 바닥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다. 주유 중에 내 스마트폰의 진동이 울렸다.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어서 꺼내기도 힘들어 시간이 걸렸다.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에 진동이 끝났다. 확인해보니 큰딸 전화였다. ‘얘가 주유 중에 장난하나, 왜 이래.’ 하고 뒷좌석을 돌아봤다. 근데 거기에 당연히 있어야 할 딸이 없었다. 급히 전화 걸기 버튼을 눌렀다. 딸 목소리다. “아빠, 지금 어디 있어요?”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얘가 언제 차에서 내렸다는 거지. 차 문을 열지도 않고 공중부양으로, 차 문 틈새로 연기처럼 내렸다는 말인지. “지금, 주유하고 있는데, 너 어디냐?” “청구슈퍼 앞이에요.” 아파트 구내 슈퍼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다.

     급히 슈퍼 앞으로 차를 몰았다. “어떻게 된 거니?” 했더니, “내가 타지도 않았는데 그냥 떠나면 어떻게 해요?” 하는 거다. 너 분명히 탔잖아. 뒷좌석에 물건이 많아서 올라가지 않고 그냥 문을 닫고 앞좌석으로 가려고 했는데, 차가 떠나버렸어요. 나는 네가 탄줄 알았지.

     나는 아직도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딸은 분명히 뒷좌석에 탔다. 그리고 나는 뒤에 사람이 있다는 느낌을 그대로 안고 유유히 아파트를 빠져나와 주유소 앞까지 운전했다. 내가 혼을 어딘가 빠뜨리고 산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려가다가 한 번씩 쉰다고 한다. 자기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내가 인생에서 딸들의 템포를 기다리지 못하고 너무 빨리 달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레벨:16]맑은그늘

2013.01.04 04:14:07

ㅎㅎㅎ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글을 읽으면서 많이 웃었습니다.

이해가 될듯 하면서도 안되는 상황이라서요...

비슷한 경험이 없지만, 당채 상황상 이해가 안되서요.

암튼 정목사님의 이런 일들을 공개하심에 웃기도하면서도 일상의 영성을 느낄수 있어서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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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1.04 08:20:22

호미 님이 웃으셨다니

상황 전달이 잘됐나 봅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세상에 많겠지요.

예수 없이 굴러가는 오늘 한국교회.

좋은 새해가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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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6]바이올렛

2013.01.04 11:10:40

목사님! 저도 같은 경험 재미있네요^^

저도 몇년전 예배후 매주 권사님을 모셔다 드렸는데..

문닫는 소리에 출발하고..

권사님과 이야기하며 한 참 오다...

뭔가 반응이없는 이상한 느낌에

거울로안보여...뒤로 돌아보는 순간

소름과 함께...무섭고...섬뜩한 느낌...

 

권사님도 가방만 넣고 문닫는 순간

제가 출발하는 바람에 타지못하고...

아~그래서 상당한거리를 되돌아갈 수도 없고해서

버스 정류소에서 한참기다렸다 모셔다드린 

귀신에 홀린 기억이있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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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1.04 11:22:31

ㅎㅎ 빈틈없는 바이올렛 님도 그런 일이 있었다니

이제 좀 안심이 됩니다.

우리는 모두 빈공간과 에너지로 이뤄진 원소 덩어리이니

옆에 누가 있건 없건 똑같겠지요? ㅎㅎ

발은 좀 괜찮아지셨느지요.

새해 첫주일에 교회에서 보겠습니다.

복 많이 받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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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6]바이올렛

2013.01.04 16:14:27

지난해 27일까지 학교. 자원봉사일까지

한해 일 모두 마무리하고 오늘까지 계속 집에만 있습니다.

발은 아직 완전하지는 않는데요

꽉 끼는 구두만 아니면 괜찮을것 같습니다

 

목사님도 복된 한 해 되시구요

앞으로 귀신에 홀린것같은 사건들이 점점 더 많아지더라도

그냥 일상이거니 생각하시고

실망하거나 슬퍼하지마시기바랍니다ㅎㅎ

 

넘치는 주님의 복!!! 늘 감사하며...

주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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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3]웃겨

2013.01.04 13:25:43

에이.. 목사님, 템포가 빠르기보담은...

혹, 노망이나, 치매를  의심해 보심이...ㅋㅋ

호로영화 한 장면 인줄 알았습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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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1.04 14:44:07

앗, 정말 그러네요.

노망을 의심해보지 않다니,

그게 바로 노망끼인지 모르겠군요.

웃겨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가족들도 모두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레벨:5]Antonio

2013.01.04 22:37:35

마지막에 인디언들의 얘기가 감동적입니다. 마지막 5줄 퍼가도 되는지요?

정말 바쁜 세상을 살고 있는데 자기가 어디쯤 달리는 지도 모르는 현대인들의 모습...

마치 기호지세인듯... 호랑이 등을 타면 브레이크도 없어서 멈출 수도 없어요^^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해를 준비해야 될 때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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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1.05 00:07:44

안토니오 님,

펌은 얼마든지 좋습니다.

좋은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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