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밥, 1월7일(월)

조회 수 3114 추천 수 0 2013.01.07 23:29:14

 

     오늘 먼 곳을 다녀오느라 저녁밥은 혼자 먹게 되었다. 젓가락을 들고 식탁을 내려다보니 너무 놀라웠다. 밥, 김치, 멸치볶음, 게맛살, 오뎅국이 거기 있었다. 저건 우주다. 내가 우주를 먹다니, 이것보다 더 놀라운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저녁밥을 먹으며 다시 절감했다. 이 세상을 사는데 필요한 게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밥 한 그릇이면 된다는 것을. 김치가 있으면 더 좋다. 김치가 없어도 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으면 충분하다. 이것만으로 내가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자유롭겠는가. 무엇이 부럽겠는가. 이건 자기만족이 아니라 삶의 궁극적인 실체다.

     어제 교회에서 성찬식을 집행한 탓에 식탁을 영적으로 더 풍요롭게 느꼈나보다. 어제 나는 이런 말을 했다. 내 마음에 깊이 각인된 말이다.

 

     빵과 포도주와 촛불이 있습니다.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없을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빵과 포도주와 촛불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저것이 곧 예수님의 몸이며, 피입니다. 하나님의 몸이며, 피입니다. 저것이 바로 생명의 원천입니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은총에 휩싸여 있다. 그 은총을 소리 높여 외쳐도 좋다. 이런 은총을 아는 사람에게 세상의 다른 일들은 모두 사소한 것들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었는지도 사실은 무의미한 일이다. 성찬의 신비를 모르면, 한 끼 식탁의 우주론적 능력을 모르면 우리의 영혼은 허망한 것에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이런 은총을 실제적으로 우리가 함께 나누며 살아갈 길을 찾아야겠다. 오늘 저녁밥을 맛있게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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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13.01.08 00:08:27

목사님,

어제 샘터교회에서 성찬식 할때

저 말씀을 골똘히 들어두긴 했는데

다 잊어먹어서 안타까웠어요.

다시 여쭤 볼수도 없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빵과 포도주와 촛불만 있으면 충분하다..

알아들을 듯 말듯.. 벙벙했습니다.

생명의 원천이라는 말씀에서 비로소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멍합니다.

마치 폭탄 맞은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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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1.08 12:12:46

라라 님,

빵, 포도주, 촛불에 대한 저의 멘트는

라라 님도 다 아는 이야기고요.

잊지 말자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지구의 사물들,

예수 사건,

생명,

그것의 원천에 대한 생각...

이런 것들이 통합적으로 작동되어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채워갑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런 것이 너무 멀게 느껴지겠지만요.

오늘도 촛불과 같은 태양이 밝게 빛나는군요.

언젠가는 촛불이 꺼지듯이 꺼지겠지만요.

아직 태양이 있는 한

생명을 노래할 이유가 있는 거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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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13.01.09 19:13:00

예, 목사님,

메너리즘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러다 정신들어 화들짝 놀라게 되고요.

 

삶의 매 순간이 몽땅 다 경이로 채워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소망하게 됩니다.

날마다 새롭게 하소서..라고요.

 

그런데,

빵과 포도주만 있으면 충분하다.. 는 이해가 될 것도 같았는데,

거기에 '촛불'이 등장하니 진짜 깜깜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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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41]새하늘

2013.01.08 11:49:56

아, 아직도 나는 멀었습니다.

집에서나 교회 식사때도 반찬투정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남자들 한달에 한번씩 하는 설거지 하는 것도

남자들 선동해서 도망가곤 합니다.

그래서 젊은 여자 분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ㅠ.ㅠ

 

우주의 만찬.

우주의 생명.

지금 내 식탁 앞에 펼쳐져 있다는 것을 다시 새기며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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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1.08 12:15:52

새하늘 님,

반찬투정, 농담이겠지요.

설겆지 도망, 재미로 하는 거겠지요. ㅎㅎ

우리가 먹는 저 일상의 먹을거리와

우리 스스로 일치되는 그 절정의 순간까지,

그게 살아있는 한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으나,

영적인 훈련의 길을 같이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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