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먼 곳을 다녀오느라 저녁밥은 혼자 먹게 되었다. 젓가락을 들고 식탁을 내려다보니 너무 놀라웠다. 밥, 김치, 멸치볶음, 게맛살, 오뎅국이 거기 있었다. 저건 우주다. 내가 우주를 먹다니, 이것보다 더 놀라운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저녁밥을 먹으며 다시 절감했다. 이 세상을 사는데 필요한 게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밥 한 그릇이면 된다는 것을. 김치가 있으면 더 좋다. 김치가 없어도 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으면 충분하다. 이것만으로 내가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자유롭겠는가. 무엇이 부럽겠는가. 이건 자기만족이 아니라 삶의 궁극적인 실체다.
어제 교회에서 성찬식을 집행한 탓에 식탁을 영적으로 더 풍요롭게 느꼈나보다. 어제 나는 이런 말을 했다. 내 마음에 깊이 각인된 말이다.
빵과 포도주와 촛불이 있습니다.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없을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빵과 포도주와 촛불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저것이 곧 예수님의 몸이며, 피입니다. 하나님의 몸이며, 피입니다. 저것이 바로 생명의 원천입니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은총에 휩싸여 있다. 그 은총을 소리 높여 외쳐도 좋다. 이런 은총을 아는 사람에게 세상의 다른 일들은 모두 사소한 것들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었는지도 사실은 무의미한 일이다. 성찬의 신비를 모르면, 한 끼 식탁의 우주론적 능력을 모르면 우리의 영혼은 허망한 것에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이런 은총을 실제적으로 우리가 함께 나누며 살아갈 길을 찾아야겠다. 오늘 저녁밥을 맛있게 잘 먹었다.
목사님,
어제 샘터교회에서 성찬식 할때
저 말씀을 골똘히 들어두긴 했는데
다 잊어먹어서 안타까웠어요.
다시 여쭤 볼수도 없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빵과 포도주와 촛불만 있으면 충분하다..
알아들을 듯 말듯.. 벙벙했습니다.
생명의 원천이라는 말씀에서 비로소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멍합니다.
마치 폭탄 맞은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