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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메시지를 선포할 때 ‘회개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말을 무조건 죄에 대한 비판으로 보면 곤란하다. 죄를 더 이상 짓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향해서 삶의 방향을 전환하라는 뜻이 바로 회심(메타노이아)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을 죄라고 생각했다. 예수의 메시지에 따르면 율법에 묶이는 것이 오히려 죄인 셈이다.
예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방식으로 죄를 회개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그렇다.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죄를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의 해방을 말한 것이다. 예수에게는 누가 죄인이냐 하는 것보다는 인간이 어떻게 죄로부터 해방되느냐 하는 문제가 더 중요했다는 뜻이다. 예수의 이 말이 당시 신학자라 할 서기관들의 분노를 샀다. 죄에 대한 관점이 달랐기 때문이다. 서기관들은 죄를 현상적으로 대했다면 예수는 존재론적으로 대했다. 그래서 예수는 당시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죄인으로 분류된 이들을 향해서 더 이상 죄를 짓지 말고 도덕적이고 종교적인(율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죄인으로 분류된 사람들의 친구로 살았다.
죄를 존재론적으로 본다는 말은 두 가지 사실을 가리킨다. 하나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도덕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상대적이다. 인격 도야를 통해서 조금 더 세련되고 교양이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있지만 완벽하게 도덕적인 사람은 될 수 없다. 간음한 여자를 향해서 돌을 들고 있던 사람들에게 예수는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다 흩어지자 예수는 그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8:11)고 말씀하셨다. 이 사건에서 핵심은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에 있는 게 아니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이다. 이 여자는 생존을 위해서 몸을 팔던 매춘부로 보인다.
'바로 회심(메타노이아)다'
바로 회심(메타노이아)이다.
해방과 자유!
이 얼마나 위로와 기쁨이 되는 기적같은 일인지요.
오늘 말씀에 이 죄인은 새 힘을 얻습니다. 솔라피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