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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추상적으로 들린다. 한국교회가 사용하는 찬송가의 제목 분류를 보면 하나님 나라는 ‘교회’ 항목에 포함된다. 교회라는 큰 주제 아래 하나님 나라가 놓인 셈이다. 완전히 거꾸로다. 하나님 나라의 여러 항목 중에 교회가 포함될 수는 있지만 교회 아래에 하나님 나라가 자리하는 건 아니다. 한국교회에서 하나님 나라가 협의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 여기서도 확인된다. 죽어서 가는 천당이나 지금 여기서 누릴 수 있는 마음의 평화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미 여기서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생명 창조주이시니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다는 말은 생명의 통치가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당연한 말이다. 우리가 여기서 숨을 쉬고 먹고 배설하고 사랑하면서 살아간다. 이것이 모두 생명 현상이다. 우리의 주제에 따른다면 이미 (목사)구원이 가까이 이르렀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것을 우리가 눈여겨보지 못하고, 또한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더 큰 업적을 이루어야만 생명을 누리는 것으로, 즉 구원받은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영혼이 건조하게 되고, 다른 방식으로 만족할만한 대상을 찾는다. 그게 목사에게는 목회 업적을 크게 내는 것이다. 아무리 큰 업적을 남겨도 영혼의 만족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매달리는 이유는 제 각각 다르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은총을 맛보지 못하거나 오해한다는 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