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티재 출판사에서 2010년 12월 출판한-<인문학을 만나다>에 실린 대담-

 

<대구성서아카데미>

하양으로 갔다. 그곳에서 인문학적 성서읽기와 설교비평으로 알려진 정용섭 목사님을 만났다. 「다비아」라는 모임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목사님은 우리에게 맛있는 점심식사를 사주셨고, 그 후 인터뷰는 찻집에서 이루어졌다.

정승원: 선생님 <다비아>라는 모임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정용섭(이하 정): 그 전에 먼저 다비아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나요?

김: 대구(Dea-gu) 바이블(Bible) 아카데미(Academy) 아닙니까?

정: 네, 잘 알고 계시군요. 다비아는 대구 성서 아카데미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 말을 놓고 처음에는 언어 유희라고 할까요 이런 저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다비아’[다 비우라는 말] 혹은 ‘답이야’[여기에 오면 답을 얻을 수 있다는 말]등과 같은 말과 같은 언어 유희가 있었는데 제가 다 기억을 못하겠네요.

시작하게 된 정확한 날짜는 찾아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2000년에 독일로 가서 2년 동안 있다가 국내로 돌아왔습니다. 2001년 2월 말에 돌아와서 어떤 교회의 교육 목사로 적을 두면서 제일 처음 한 작업이 대구 YMCA에서 ‘인문학적 성서읽기’였습니다. 매주 화요일이나 목요일 저녁에 모여서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이 모임은 여태까지 한국교회가 하던 성경공부와는 다른 관점으로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어떻게 다르냐 하면, 한편으로 한국교회의 성경공부는 성경의 정보를 다루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중고등학생 때 역사 암기하는 것과 비슷했지요. 다른 한편으로 한국교회의 성경공부는 실용적인 차원의 QT[Quiet time]식 성경공부였습니다. 제게는 이러한 공부들이 죽은 성경공부로 느껴졌습니다. 정보를 암기하는 것이나 2000-3000년 전의 고대의 관점을 알지 못한 채 적당하게 실용적으로 적용하는 공부의 한계를 절감했었습니다. ‘인문학적 성서읽기’는 그런 방식을 극복하기 위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인문학적 성서읽기’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첫 번째는 젊은 목사들이나 신학생들이었습니다. 이들에게 텍스트의 지평 이해에 도움을 주자고 생각했었습니다. 가다머(H.-G. Gadamer)의 『진리와 방법』을 인용해서 말하자면 목사들로 하여금 ‘방법’이 아니라 ‘진리’에 집중하게 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두 번째 부류는 지성적인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에서 왕따당하기 쉽습니다.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고자 하는 지성인들은 교회 안에서 설 자리가 없다고 할 수 있지요.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든지, 선/악 이원론에 묶인다든지 마이너리티에 대한 태도를 보면 그들이 설 자리가 정말 없어요. 그래서 그들이 숨쉴 공간을 주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YMCA에서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빌립보서, 사도행전, 로마서, 누가복음의 인물들...

정승원: 그 시기가 출발점이군요...

정: 말하다보니까 그 시점이 출발점이 되는군요.

정승원: 그 때 멤버들이 지금도 구성원들입니까?

정: 다비아에는 멤버라는 것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 때 관심을 가진 분들이 한 달에 한번, 두 달에 한번 그렇게 모이곤 했었습니다. 그런 분들이 모여서 운영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운영위원회를 통해서 모임이 이루어졌었습니다. 현재는 주로 온라인(on-line)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모이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체계가 잡혀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하기가 어렵네요. 또 수년 전부터는 서울지역에서도 요청이 있어서 오프 모임을 가졌었습니다. 그 모임의 제목도 역시 ‘인문학적 성서읽기’였었습니다. 그렇게 오프 모임을 계속하다가 4년 전부터 온라인으로 모입니다. 지금 우리 홈페이지에는 하루에 1000명 정도가 접속합니다. 매일 그렇게 와서 글을 읽으신다는 것이 제가 보기에도 신기합니다.

김: 저도 함께 모임을 하는 어떤 선생님이 사이트를 보시곤 매우 기뻐하시면서 사이트 주소를 받아 적으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정승원: 1000명이 접속하는 것을 보니 많은 사람들이 다비아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정: 저는 현풍에서 한 10여년, 하양에서 계속 살았기 때문에 다비아의 모임들이 어떤 반향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사상』에 글을 쓰면서 이러한 요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목사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반신도들에게도 그러한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문학적 성서읽기가 「순복음 교회」의 축복이나 「사랑의 교회」의 제자도처럼 대중적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인문학적 읽기가 아니라면 성서에서 볼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믿습니다. 성서를 읽다가 질문이 생길 때 교회에서 그것을 물으면 매우 난감한 상황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성인들은 몹시 고통스럽지요. 저는 오히려 수천년 전의 역사적 상황에서 그 본문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묻고 오늘날 신자유주의나 남북대치의 상황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를 묻는 인문학적 성서읽기의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혼자만 그렇게 생각한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도 동조해 주니까 최근 제가 신이 나지요.

정승원: 저는 기독교가 기복신앙보다는 인문학적 성서읽기처럼 인문학적 욕구와 접속할 때 더 좋은 결과를 산출하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작업은 기독교를 살리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김: 모임하면서 어려웠던 점이나 힘든 순간은 없었습니까?

정: 그런 질문은 약간 상투적이네요.(웃음) 저는 기본적으로 어려운 일은 안 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묻는 취지가 무엇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어떤 방향이 있는데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의 일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사실 제게는 어떤 목표나 목적이 없습니다. 현재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지 이것으로 뭔가를 해 보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저는 한국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릭 워렌 목사의 『목적이 이끄는 삶』에 대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뭔가를 너무 행하려고 하는 것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 장자의 영향 때문인 것 같은데, 너무 목적 중심이 되면 본질을 놓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이런 ‘인문학적 성서읽기’가 한국교회의 변화와 발전에 어떤 물꼬를 터뜨리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가끔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김: 목사님, 목적은 아니고요 이념과 뜻이라고 할까요? 다비아의 방향성은 무엇입니까?

정: 우리가 모토로 하는 것은 인문학 정신입니다. 인문학 정신이 우리의 기본 이념이라고 할 수 있지요. 설교 비평 때도 한 말이지만, 다비아에서는 설교자들과 기독교 신앙인들에게 최소한의 소양 혹은 영적인 교양을 제공해 주려고 합니다. 그것은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서의 놀라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능력입니다. 칼 바르트(K. Barth)가 이야기했잖아요. 성서 안에 “하나님의 놀라운 세계”가 있다고 했잖아요. 모차르트의 악보를 어떤 사람은 그것을 콩나물로 알지만 어떤 사람은 그것에서 놀라운 세계를 찾아냅니다. 성서의 세계로 들어가는 작업은 성서에 대한 역사비평적 연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저는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이 두 가지를 연결하는 작업입니다. 저는 성서와 인문학을 연결하는 작업을 조직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다비아에서는 그러한 조직신학 훈련을 하고자 합니다.

정승원: 저는 선생님의 작업이 담론투쟁이며 문화적 확장의 작업, 사유나 해석의 지평을 넓히는 작업으로 느껴집니다.

정: 저는 그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러한 담론투쟁이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원래 기독교 전통이 그거[담론투쟁]예요. 나사렛이라고 하는 작은 지역에서 시작한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유대교라고 하는 종교적 제국, 로마라고 하는 정치적 제국, 헬라라고 하는 사상적 제국 가운데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융통성입니다. 이 가운데 엄청난 담론 투쟁이 있었지요. 바울이 유대인들과 싸운 담론 투쟁은 놀랍습니다. 3-4세기 경에 이르게 되면 헬라철학과의 관계 속에서 형이상학적인 작업까지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신학은 기독교의 형이상학(metaphysic)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담론투쟁이라고 하셨는데 정확하게 지적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 나라와 신자유주의는 담론의 투쟁 과정 중에 있습니다. 경쟁력 제일주의나 경제 제일주의와 싸워야지요. 이것은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제가 쓴 설교비평도 읽어본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하던데, 그 이유가 아마 투쟁적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정승원: 제도적인 균열이 일어나기 전에 담론투쟁이 먼저 일어나지요. 저도 학교 밖에서 인문학 운동을 하고 있는데 담론투쟁이 먼저 이루어지면 제도적 균열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정: 그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아마 설교비평을 쓸 수 있는 이유도 제도 밖에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도 밖에는 자유가 있는데 힘이 없지요. 힘을 확보하려면 제도권 안에 들어야합니다. 그런데 제도 안에 들어가면 할 말을 다 못하지요. 딜레마가 있습니다. 다비아는 제도 밖에 있기 때문에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다비아가 안티-기독교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근본적(fundamental)입니다. 한쪽에서는 우리가 너무 진보적이라고 합니다. 진화론, 동성애, 대체복무 받아들이기 때문이지요. 다른 한쪽에서는 우리가 너무 전통적이라고 합니다. 삼위일체를 그대로 믿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정승원: 선생님의 단체가 처음에는 급진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들어보니까 오히려 상식적인 기독교를 놓고 고민하시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에큐메니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 에큐메니칼이라는 말은 다양한 뜻이 있습니다.

김: 아마 정승원 선생님은 교회일치운동으로서의 에큐메니칼이 아니라 종교간의 대화나 소통으로서의 에큐메니칼을 말씀하는 것 같습니다.

정: 저는 종교대화의 문제나 한국적 신학의 문제로 작업할 여력이 없습니다. 저는 우리 노래나 잘하자고 생각합니다. 일단 기독교를 아는 것 자체만하더라도, 이것을 정통적으로 아는 것만으로도 매우 힘든 일입니다.

정승원: 그러면 선생님은 마르크스주의(Marxism)나 민중신학과 거리를 두고 계십니까?

정: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지는 않았지만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 특히 마르크스주의의 인간미, 평등, 평화에 대해서는 공감합니다. 주한미군 철수나 민족주의적 관점의 활동에도 동의합니다. 그런 것이 제 글의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보수적인 사람들이 위험하다고들 이야기하지요.

김: 선생님 책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우리가 선생님 책을 좀 알고 있지만 책에 대한 선생님 말씀을 한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정: 제가 쓴 책은 장르가 다양합니다. 『말씀신학과 역사신학』은 제 학위논문이며 학문적인 방식으로 글쓰기를 해 본 것입니다. 각주달고 참고문헌 쓰면서 서양학자들의 글쓰기를 흉내낸 것이지요. 저는 김영민 선생님의 글을 좋아합니다. 특히 그분이 쓰신 글쓰기의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에 깊게 공감합니다. 그래서 논문적 글쓰기보다는 에세이적 글쓰기를 더 좋아합니다. 제가 쓴 책은 에세이, 설교집, 성서의 인문학적 읽기 등 다양한 장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번역한 것들도 있네요. 이 모든 것들은 저의 인문학적인 신앙을 그냥 편하게 풀어 놓은 것입니다. 어떤 장르로 쓰든 상관없이 제 인문학적인 세계를 풀어놓은 것입니다. 저는 인문학적인 것과 신학적인 것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제게는 똑같은 것입니다. 특히 목회자들은 설교를 통해서 에세이적 글쓰기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목회자는 참 좋은,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셈이죠

김: 선생님의 에세이적 글쓰기가 많이 와 닿네요.

정: 지금 오프 모임으로 목사들 대상으로 「설교 포럼」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갖는데 다음 달에 할 네 편의 설교를 미리 작성을 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 설교를 놓고 종말론, 구원론 등 그 속에 내포된 사상들을 놓고 토론하는 작업을 해 보고자 합니다. 이 일은 제가 마지막까지, 건강이 허락될 때까지 하고 싶은 일입니다.

정승원: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마치 신학계의 아방가르드 같다고 느껴집니다.

정: 그런가요? 욕심같아서는 제도권 신학교에서도 이런 「설교포럼」의 방식으로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좋을 것 같은데, 지금 신학교는 분과별로 나누어져서 이런 방식의 수업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정승원: 요즘 대안학교 이야기도 많이하고 대안학교들도 조금씩 생겨나고 있습니다. 제도권의 학습이 한계가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안 신학교 같은 구상을 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 지금 다비아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일단 공부하는 것을 녹음해서 mp3파일을 시범적으로 시도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 운영의 문제 때문에 아직 정기적인 프로그램으로 운영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승원: 선생님,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담론을 만들어내는 세대와 제도를 만들어내는 세대를 구분합니다. 선생님처럼 담론을 만들어내는 세대가 있다면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내는 세대가 나와서 대안 신학교를 만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정: 담론과 제도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기독교에서도 그런 담론을 통해 제도를 구성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민중교회라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 운동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저는 민중교회가 약화된 이유는 당파성 혹은 파당성만을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파성을 담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편성을 담보하는 것도 역시 중요합니다.

정승원: 저희는 문화사적인 맥락에서 인문학 커뮤니티들을 탐방취재하고 있습니다. 이 커뮤니티들 가운데에는 제도적인 인정을 받지 못하는 곳도 있지만 우리는 문화사적으로 이러한 커뮤니티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 판넨베르크도 역사를 바꾼 사건은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예수의 십자가 사건도 일상적인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눈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닐 수 있지요. 우리들의 모임이 그런 것일수도 있겠군요. 그러한 통찰은 인문학적인 식견이면서도 매우 기독교적인 관점인 것 같습니다.

정승원: 모든 인문학적인 사건은 창조적 소수자들에 의해서 일어났다는 것은 문화사적으로 증명된 일입니다. 기독교 안에서도 이러한 담론적인 투쟁이 많이 벌어져야 하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이야기들이 상식적인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 (웃음) 제가 뭔가를 주려고 했는데, 많이 받네요. 오늘 인터뷰를 하면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는 그저 누가 보든지 말든지 충실하게 해 왔습니다. 지금도 매일 묵상을 합니다. 그것이 즐겁고...이런 말씀들을 나누니 힘이 납니다.

김: 우리가 찾아 뵌 모임들을 보니 모두 꾸준하게 해 오셨습니다. 모두 사람들이 알아주든 몰라주든 열심히 묵묵하게 해 오셨습니다.

정승원: 선생님처럼 생각하시고 계속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선생님도 그러한 큰 흐름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정: 그런가요? 그런 일을 기독교적인 용어로는 성령이 하신다고 말합니다. 영은 온 세계 곳곳에 만연해 있는 것인데 그 속성이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숨 안쉬다가 숨쉬면 영이 왔다고 합니다. 봄에 싹이 피면 영이 왔다고 믿었습니다. 기독교적인 차원에서 기(氣)나 도(道) 이런 것들은 성령과 상통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셔서 만나게 되고 각자가 서로 모르게 생각했지만 우리가 서로 통했군요.

정승원: 저는 선생님이 하시는 작업은 상식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작업이 많이 퍼져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정: 상식적이고 옳은 것. 그런 것들이 인문학적인 것입니다. 그런 상식적이고 옳은 것이 많아져야 합니다.

김: 목사님, 다비아 모임 시간과 장소에 대해서 소개해 주십시오.

정: 이제 모임이 이렇게 저렇게 모양을 바꾸어서 했습니다. 초창기에는 매주 모여서 ‘인문학적 성서읽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두 달에 한번씩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기독교 사상에 정기적으로 4년 기고를 했습니다. 그 때 잠깐 쉬었다가 그 이후에 한달에 한번씩 모여서 조직신학공부를 했습니다. 그것을 1년 반 동안 했고, 그 다음에는 판넨베르크(W. Pannenberg)의 설교집을 함께 읽었습니다. 지금은 수요일 저녁에 교회의 모임 겸해서 성경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대구 상동에 있는 공간울림이라는 대구 샘터교회 예배처소에서 「시편」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인간 삶의 흔적인 인문학적인 차원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정승원: 선생님이 가장 영향받은 신학자는 누구입니까?

정: 제가 크게 영향받은 신학자는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르트와 판넨베르크입니다. 바르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교회활동의 중심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배웠고, 판넨베르크에게서는 역사가 어떻게 신학의 중심이 될 수 있는지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말씀과 역사가 신학적인 키워드입니다. 여기에서 역사라는 것은 실증적인 역사가 아니라 보편적인 역사, 즉 보편사를 의미합니다. 말씀은 기독교를 뜻하고 역사는 세계를 뜻합니다. 말씀과 역사를 변증법적으로 포착하는 것이 저의 평생의 과제입니다. 비록 이 두 분에게는 못 미치지만 몰트만(J. Moltmann)에게도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그의 정치신학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레오나르도 보프(L. Boff)를 통해서 민중신학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김: 사상가들 중에는 선생님께 영향을 끼친분이 없었나요?

정: 하이데거(M. Heidegger)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특히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테제에 큰 감동을 받았고, 후기의 사물(Ding)과 사방세계(Geviete)를 통해서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었지요. 동양철학자로는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노자의 무위사상은 기독교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성경말씀과 통하는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책들에게 영향을 받았고 자연과학과 생물학에도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음악가들이 있습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C. Abbado)라는 지휘자가 있습니다. 2001년도에 베를린 필 하모니에서 베르디(G. Verdi)의 레퀴엠을 지휘했습니다. DVD로 나왔는데, 연주가 한 시간 10분인데 중간에 휴식도 없이 계속됩니다. 끝마치고 아바도가 한 일분 정도 가만히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 ‘방송사고가 났나?’ 아니면 ‘무슨 이상이 있나?’ 생각을 했는데, 1분 정도 지난 다음에 손을 내리면서 옷을 추스르고 박수가 나왔습니다. ‘아바도가 왜 그렇게 숨도 안쉬고 그렇게 있었을까?’ 여러 가지로 생각을 했습니다. 레퀴엠은 요한 계시록을 주제로 해서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한 것입니다. 죽음과 관련하여 희망과 절망, 두려움이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이 지휘자가 한 시간 동안 다른 세계를 다녀왔다는 것입니다. 깊은 꿈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과 같지요. 음악 뿐 아니라 미와자키 하야오의 작품과 같은 일본의 에니메이션도 세계를 새롭게 보는 인사이트들을 주었습니다. 그러한 자극과 상상력을 가지지 않고 어떻게 성서를 읽을 수 있겠습니까?

김: 우리 작업 자체가 지역이라는 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런 다비아 활동 자체를 지역이라는 관점에서는 어떻게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까?

정: 다비아와 지역 간의 관계를 의식하고 무언가를 해 본적은 없었습니다. 정말 여기에서 소수로 시작하고 알려지지 않은 모임을 가진 것 뿐이었는데 전국적인 모임이 되었군요. 갑자기 이 모임이 커지니까 서울에 있는 몇 사람이 이름을 바꾸자는 요청을 했습니다. 이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갑론을박이 많았는데 그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지역에서 시작했는데, 조금 촌스럽지만 ‘대구’라는 명칭을 그대로 두었습니다. 우리 다비아는 지역에 있지만 전국에 영향을 끼치는 모임, 그것을 지향합니다.

정승원: 인문학은 지역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컨텐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컨텐츠가 있으면 세계적인 모임도 될 수 있지요.

정: 인터넷 문화가 지역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이 한계를 터주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은 우리 지역의 인문학이 살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우리 대구의 인문학 역사를 제가 자세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과거에는 영남학파와 같은 좋은 전통이 있었는데 점점 약화되는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김: 다비아와 대중성의 관계에 대해서 묻고 싶습니다. 대중화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까?

정: 그런 질문은 인문학적인 것은 아니지만, 살아가는데는 필요한 질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대중성이라는 것은 우리 다비아가 더 본질에 충실하면 따라온다고 믿습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대중성을 얻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그래서 대중성을 지향하기 보다는 본질을 지향하지만 소통을 간과하지 않으려 합니다. 기독교적으로 말하자면 ‘소금’이고 싶습니다. 짜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고 결국 소통하지 않겠습니까?

김: 다비아에서 함께 일하는 분들은 어떤 분들이 있습니까?

정: 다비아에 고정 칼럼을 쓰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일꾼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분들은 여러 가지 경로로 칼럼을 쓰게 되셨습니다. 정기적으로 칼럼을 올리다가 고정공간이 만들어진 경우도 있고, 만남을 통해서 칼럼을 쓰게 되신 경우도 있었습니다. 홈페이지는 서울신학대학교 이길용 박사님이 맡아주고 있습니다.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승원: 언제 가장 기쁘십니까?

정: 여기에서 기독교를 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반응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을 만나면 힘이 납니다.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가르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가다머가 100세 되었을 때 슈피겔과 대담을 했습니다. 편집장이 가다머에게 평생동안 철학을 했는데 철학의 가장 큰 목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가다머는 “철학은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에 대해서 질문할 줄 아는 것을 키우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대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주는 것이지요. 저는 신학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삶 자체가 신비로우니까 신학도 그러한 질문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지요.

정승원: 교회에서 질문을 잘못하면 시험에 들었다는 소리를 듣게 되죠.

정: 교회에서 생각을 하게 해야 하는데, 젊은 목사들이 그러한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데, 교회현실을 고려하면 그렇게 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의 문제도 있지만 구조적 문제도 있지요. 교회에서 그런 방식으로 목회하기는 어렵습니다.

김: 목사님, 마지막 질문을 드려야 겠습니다. 다비아의 전망을 어떻게 그리고 계십니까?

정: 다비아의 전망보다 나 개인적인 전망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빨리 다비아의 실무에서 손을 떼고 텃밭을 가꾸고 책을 읽고 숨쉬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습니다.(웃음) 그러나 아직 다비아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앞에서 한 이야기들이 다 뒤섞여 있는데 구체적인 몇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다비아의 정신에 따른 성서공부 모임이 각 지역에 많이 조직이 되어서 활성화되고, 그 조직이 연합되어서 활동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갔으면 좋겠습니다. 광주나 청주에도 다비안들이 있습니다. 각 지역의 모임이 활성화되어 네트워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광주 성서 아카데미」나 「대전 성서 아카데미」 같은 모임이 생기면 좋겠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려면 내가 뛰어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그렇게 적극적인 사람이 되지 못해서 기대만 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가능하다면 대안 신학교나 사이버 신학교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신학생들이나 목회자들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줄 수 있는 신학교가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김재현- 계명대학교 교양교육대학에서 기독교 교양을 가르치고 있다. Q복음서와 성서 내러티브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저서로는 학위논문을 출판한 <Q의 예수 이야기: Q에 대한 서사 비평적 연구>와 강의록은 출판한 <Q 복음서와 원시 기독교: 교양인들을 위한 초기기독교 강의>가 있다. 다양한 인문학 커뮤니티에 접속하며 즐겁게 살고 있다. verticalkjh@naver.com

정승원-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고 대구에서 살고 있다. 현재는 달서구 도원동에 위치한 ‘앞산마을학교’에서 청소년들을 만나고 있다. ‘마을교육연구소’의 연구원으로 동네에서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안적인 작은 방과후학교(마을학교)’를 기획하고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대구지역의 인문학 강사들과 함께 대중적인 인문학 수업을 기획하고 만들어 지역에 보급하는 일도 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노어노문학과 박사과정에 있으며, 공부하는 지인들과 모여 토요일 오전마다 인문학 스터디를 하고 있다. bakht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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