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과서 문제로 정부와 국회가 난리법석이다. 여야가 정치의 명운을 걸고 싸울 태세다.

지금의 역사 교과서가 좌파들의 시각으로 도배되어 있고,

그로 인해 국가관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으니 올바른 국가관 확립을 위해서는

교과서 검정제도를 폐지하고 국정화하겠다는 것이 싸움의 핵심이고 박근혜 정부와 여당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편협한 국가관과 아집이 부른 평지풍파다.

아니,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행각과 독재를 덮고,

5.16군사쿠데타를 나라를 구한 혁명으로 되돌리고,

국가를 근대화시킨 위대한 대통령으로 역사화하기 위한 개인적 몽니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역사 속 아버지를 정당화하기 위한 딸의 효성스런 한풀이이며,

아버지의 무덤에 침을 뱉은 자들에 대한 보복이자 역사 되돌리기이다.

얼마 전에 여당의 원내대표인 유승민 의원을 배신자로 낙인찍어 축출하느라

국민을 피곤하게 만들고 국력을 낭비했듯이

대한민국을 근대화시킨 위대한 아버지의 무덤에 침을 뱉은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국민을 피곤하게 하고, 국론을 분열시키고, 그렇게도 소중히 여기는 국력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국민에게 맡기고 역사에 맡기면 되는 것을 자기 손으로 뜯어고치려 하는,

자기 손으로 아버지의 삶을 정당화하려 하는 자가당착이요 오만이다.

 

물론 인간적으로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부모를 총탄에 잃은 딸의 아픔과 깊은 상처,

아버지의 삶에 대해 무한 애정과 존경을 가진 딸의 심정을 생각하면

유독 배신에 치를 떠는 것,

아버지의 무덤에 침을 뱉는 자들에게 분노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이해된다.

모든 인간은 지극히 연약하며, 과거의 경험과 자아의 경계를 넘어서기란 무척 어려우니까

그런 인간적 현실을 이해하고 넘어가면 된다.

배신자에게 어떤 보복을 하든, 검정 교과서에 어떤 돌을 던지든

크게 괘념치 않고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면 된다.

장삼이사인 나까지 나서서 이렇게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다.

 

지금 이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것은 그녀가 개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결코 쉽지 않은 남북관계를 비롯해 주변국들과의 외교관계를 창조적으로 풀어가야 하고,

국경이 없는 경제전쟁에서 국민의 살림살이를 챙겨야 하는 대통령이다.

냉철한 이성과 역사적 혜안으로 국정에 전념해도 부족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자리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

개인적인 아픔과 상처, 아버지의 삶에 대해 무한 애정과 존경의 마음을 넘어서야 한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여러 행적을 보면 개인적인 아픔과 상처,

아버지의 삶에 대해 무한 애정과 존경의 마음을 넘어서지 못한 듯 보인다.

그녀의 내면을 재단할 수는 없지만, 박근혜라는 한 개인과 국가가 분리되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박근혜라는 한 개인과 박정희라는 아버지가 일으켜 세웠다고 믿는 국가가

혼합 내지는 통합된 나머지 국가 경영이라는 기본적인 마인드를 갖지 못한 것 같아 보인다.

본인은 국가와 결혼했다고, 국가에 헌신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개인과 국가가 분리되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개인적인 상처와 경험에 사로잡혀 국정을 농단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이것이 박근혜 정부의 치명적인 약점이자 국민의 불행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