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말한 대로 하나님의 창조의 디자인은 하나님나라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삶의 성격은 안식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창조 이야기를 하면서 안식이 창조의 피날레요 오메가 포인트라고 구성했습니다. 물론 첫 창조 작업이 곧 종말론적인 세계, 완결된 세계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6일 동안 창조한 세계는 종말론적인 완성을 향해 무한히 열려 있는 세계, 무한히 변화하고 발전해야 하는 잠재력의 세계였습니다.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미래의 하나님나라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하나의 씨앗과 같은 세계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대한 의문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가 종말론적 완성을 향해 무한히 열려있는 세계, 미래의 하나님나라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하나의 씨앗과 같은 세계라면 이 세계는 과연 어떻게 종말론적인 완성을 향해 나아갈까?’하는 의문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 의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만히 두어도 세상이 절로 변화하고 완성되어 가는 것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모든 과정을 이끌어 가는 것일까요? 둘 다 정답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만일 가만히 두어도 자동적으로 굴러가는 세계라면 이 세계는 매우 정교하고 빈틈없이 돌아가는 일종의 기계에 불과한 것일 테고,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변화 과정을 이끌어 가는 세계라면 이 세계는 하나님과 인격적 소통을 할 수 없는 일종의 물질 덩어리에 불과한 것일 테니까 말입니다.

하나님은 자동기계나 물질 덩어리를 제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부 · 성자 · 성령이 상호 침투하고 상호 내재하며 상호 존중하고 상호 소통하는 인격적인 하나님께서 사랑이나 인격적 소통이 불가능한 기계적인 세계, 물질 덩어리로서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은 실로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신 것은 세계를 통해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고, 세계와 인격적인 소통을 나누고 싶어서였습니다. 세계와 마주하여 대화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온 세계를 당신의 안식에 초대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계를 당신의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 만물이 더불어 사는 인드라망의 세계로 창조하신 것, 인간을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신 것도 모두 그런 아름다운 관계와 만남을 위해서였습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세상과의 아름다운 관계와 만남을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습니다. 창세기는 인간 창조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창1:26).

무슨 말입니까?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있어야 사람을 대리 통치자로 삼아 세상을 다스리고, 사람을 통해 창조의 의도와 목적을 실현할 수 있겠어서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선물했다는 말입니다. 사람을 만들되 하나님을 대리해서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자, 세상을 대표해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수 있는 자로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에 버금가는 존재라는 뜻이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이고, 하나님나라를 상속받는 자라는 뜻이고, 하나님과 같이 사고하고 판단하고 기획하고 창조하고 자유의지를 행사하는 존재라는 뜻인데, 이것은 일개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거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오직 세상과의 아름다운 관계와 만남을 위해서였습니다. 온 세계와 마주하여 대화하고 싶어서, 온 세계를 당신의 안식에 초대하고 싶어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거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파격을 단행하셨습니다. 일개 피조물을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하나님과 피조물의 양면을 다 가진 매우 신묘한 존재로, 피조물이면서도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 같은 존재로 높이 세우셨습니다.

그렇다면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 같은 존재로 지음 받은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님이 뜻하신바 대로 세상을 종말론적 완성에로 이끌 수 있는 걸까요? 아담이 알아서 자기 맘대로 해도 되는 걸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지시하는 대로 따라야 하는 걸까요? 사실 이것도 문제가 있고, 저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 하나 그래도 피조물이기 때문에 인간이 자기 맘대로 하게 되면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무너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반대로 인간이 피조물이라고는 하나 하나님에 버금가는 존재로서 사고하고 판단하고 기획하고 창조하고 자유의지를 행사하는 존재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시대로 따르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이 증발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니 어찌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두 가지 문제를 극복하면서 세상을 종말론적 완성에로 이끌 수 있을까요?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묘한 해법을 찾아 실행하셨습니다. 바로 계약이라는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시고는 ‘동산에 있는 각종 나무의 열매는 맘대로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게 된다.’(창2:16-17)는 계약을 체결하셨습니다. 언뜻 보면 이게 무슨 계약이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계약의 형식을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이 주도한 계약이긴 하나 계약의 이행 조건과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때 치르게 될 대가가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계약임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신학자들도 인정하는 공통 인식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맺은 계약을 봅시다. 이 계약에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자유 사이에 절묘한 긴장이 배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단 아담에게 각종 나무의 열매를 맘대로 먹을 수 있다며 아담의 자유를 보장했습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열매를 먹을 수 있는 자유까지도 허용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금하심으로써 아담의 자유에 한계를 그었고, 아담의 자유에 한계를 그음으로써 하나님만의 절대주권을 지켜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 둘 다를 만족시켰습니다. 참으로 절묘한 해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의문의 여지가 없는 건 아닙니다. 왜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단서를 넣었느냐, 왜 반드시 죽는다는 독소 조항을 넣었느냐, 왜 뱀을 만들었느냐 등등 많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의문은 계약이 뭔지를 생각지 않고 내놓는 의문입니다. 여러분, 계약이 뭡니까? 한 두 번씩 계약을 해보아서 아시겠지만 모든 계약에는 이행해야 할 내용이 들어가고, 계약 내용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배상의 책임이 무엇인지가 들어갑니다. 이런 조항이 들어가지 않으면 계약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고대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아담이 맺은 계약에도 마땅히 이런 내용이 들어가야 했습니다. 이런 내용이 들어가야 비로소 인격적인 계약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전히 이 계약이 아담을 시험하는 계약이었다고 불평합니다. 아담을 넘어뜨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불평합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담의 순종 여부를 시험하는 성격이 들어있는 것은 사실이나 아담을 넘어뜨리기 위한 시험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아담이 정상적으로 만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고, 아담으로 하여금 참된 생명(영생)을 살게 하기 위한 최대한의 배려였지 아담을 넘어뜨리기 위해 짜낸 계략은 아니었습니다.

잠시 사람과 사람, 국가와 국가의 관계를 생각해봅시다. 사람과 사람, 국가와 국가가 정상적인 교류를 하기 위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뭡니까? 계약을 맺는 것입니다. 살고 싶은 집을 장만할 때에도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계약입니다. 친구와 만날 때에도 제일 먼저 언제 어디서 만나자는 약속을 합니다. 국가와 국가 간에 무역을 하기 위해서도 제일 먼저 통상조약을 맺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인격적이고 성숙한 관계의 방식입니다.

하나님과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간에도 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계약을 맺어야 합니다. 아무런 계약도 맺지 않고 하나님 맘대로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세상과 사람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제일 먼저 계약을 맺는 것만이 인격적이고 성숙한 관계를 맺는 길, 정상적인 만남을 위한 길입니다. 하여,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신 후 제일 먼저 사람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아담을 넘어뜨려서 죽음에 빠뜨리고 피조세계를 혼돈에 몰아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담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 아담에게 맡겨진 책무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아담이 보다 온전한 삶 보다 온전한 생명을 살게 하기 위해서 계약을 맺었습니다.

시험의 성격이 있다는 걸 부정하려는 게 아닙니다. 시험은 인격적인 관계의 특징이자 조건이라서 시험의 성격이 아예 없을 수는 없습니다. 만일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움직이는 로봇과 같은 존재로 지음 받았다면 굳이 시험 앞에 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 시험 앞에 서지 않아도 됐을 것입니다. 로봇에게 판단과 선택을 요구하는 바보는 세상에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에 버금가는 존재로 지음 받았다는 걸 뜻하고, 하나님에 버금가는 존재라는 것은 자유의지를 가졌다는 걸 뜻하고, 자유의지를 가졌다는 것은 인격적인 선택을 하며 사는 것이 마땅하다는 걸 뜻하고, 인격적인 선택을 하며 사는 것이란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진다는 걸 뜻하기 때문에 아담은 싫든 좋든 판단하고 선택해야 하는 시험 앞에 서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아담을 인격적 존재로 만든 하나님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아담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말하려는 것은 이겁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맺은 계약은 불필요한 것이거나 악의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인격과 선택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최고의 관계방식이었고, 인격적이고 성숙한 관계 맺기를 위해 꼭 필요한 조치였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영생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한 최상의 호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맺은 계약은 하나님과 아담만의 사적인 계약이 아니라 전체 인간과 피조세계를 대표한 공적인 계약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국가와 국가가 외교조약을 맺을 때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국가와 국가가 외교조약을 맺을 때 국민 전체가 서명하지 않습니다. 각 나라의 국민을 대표해서 대통령이 서명합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계약을 맺을 때에도 모든 인간과 피조물들이 제각각 맺지 않았습니다. 모든 인간과 피조물들을 대표하여 아담이 맺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계약은 아담 한 사람의 운명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앞으로 태어날 모든 인간과 피조세계 전체의 운명에도 적용되는 실로 어마어마한 계약이었던 겁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성경의 모든 이야기를 읽어보십시오. 모든 이야기가 이 계약(언약)에 근거하고 있고, 이 계약의 구속을 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도 이 계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라는 호칭이 창세기9장, 15장, 출애굽기2장, 누가복음1장, 22장 등 수백 회에 이르는데 하나님에 대한 이런 수식은 하나님도 계약의 구속을 받으신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계약을 맺는 행위를 통해 말씀하고자 한 것은 이것입니다.

‘나 여호와는 아무렇게나 세상을 다스리지 않겠다. 아무렇게나 인간을 다루지 않겠다. 나는 오직 우리가 맺은 언약에 근거해서 다스릴 것이다. 아담의 선택에 의지하여 축복과 저주를 시행할 것이고, 아담의 선택에 의지하여 세상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그러니 네가 생각하기에 이 방식보다 더 인간을 존중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내놔봐라. 나도 수많은 궁리를 거듭했지만 이 방식만이 인간을 존중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다. 하여, 나는 이 길을 선택했다.’

어떻습니까? 정말 놀라운 사랑이요 자비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인간과 가질 수 있는 관계방식 중에 최고이지 않습니까? 사실 이보다 더 좋은 방식, 이보다 더 지혜롭고 더 완벽하고 더 아름다운 방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결단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그러니까 하나님이 아담과 계약을 맺은 행위 속에는 네 가지 심오한 의미가 깃들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되 사람을 통해 다스리기를 기뻐하셨다.

2)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고 계약을 맺으셨다.

3) 하나님은 사람과의 계약에 의지하여 세상의 미래를 결정하기로 하셨다.

4) 이것은 하나님 자신은 최대한 낮추시고 인간은 최대한 높인 은혜로운 조치였다.

옳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과 계약을 맺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존중할 수 있는 최상의 방식으로 만났다는 걸 뜻합니다. 아담의 선택에 피조 세계 전체의 운명을 걸었다는 것 또한 하나님은 최대한 낮추시고 인간은 최대한 높였다는 걸 뜻합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계약을 맺은 것은 진실로 하나님에게는 가장 겸허한 길이었고, 인간에게는 가장 영광스러운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매우 위험천만한 길이기도 했습니다. 자칫 온 세상이 망가질 수도 있고 모든 생명이 죽음에 갇힐 수도 있는 일종의 도박과 같은 길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도 이런 위험성을 충분히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커다란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담에게 선택지를 주지 않거나, 아담의 선택에 피조세계 전체의 운명을 걸지 않거나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담의 자유의지를 짓밟고 하나님 마음대로 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나라가 아니었으니까, 세상을 창조한 목적에 어긋나는 것이었으니까 하나님은 살 떨리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아담과 언약을 맺어야 했고, 아담에게 선택지를 주어야 했고, 아담의 선택에 피조세계 전체의 운명을 걸어야 했습니다. 인간의 영광과 세상의 영광을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비움의 길, 겸허의 길, 파격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이 길만이 하나님과 사람이 인격적인 소통을 하는 길이고, 이 땅에 하나님나라가 서는 길이고,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는 길이기에.

그렇다면 계약의 파트너인 아담은 이런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 따랐을까요? 하나님처럼 비움의 길, 겸허의 길, 인격적인 소통의 길을 갔을까요? 잘 아시는 대로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제시한 복된 길, 영광의 길, 생명의 길을 뿌리치고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의 길을 택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한 진실로 나아가지 않고 사단이 말한 거짓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몸을 가려야 했고,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숨어야 했고, 종내는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죽음의 운명을 맞이해야 했고, 에덴동산 밖으로 내쫓겨야 했고, 다시는 생명나무로 나아갈 수 없는 신세가 되어야 했습니다(창3:7-24). 삶 또한 고통스러운 죽음의 포로가 되어야 했고, 땅도 저주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당연히 이런 아픔이나 저주가 없었을 겁니다.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몸을 가릴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땅도 저주를 받지 않았을 것이고,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하며 인격적인 소통을 나누었을 것이고, 삶은 행복의 노래로 충만했을 것이고, 생명나무 열매를 먹음으로써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살았을 것이고, 오고 오는 모든 사람들과 창조세계를 돌보면서 종말론적 완성이라는 영광스러운 과제를 수행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진기한 축복과 영광을 송두리째 잃어버렸습니다. 창조 세계에 꿈틀거리고 있던 하나님나라의 유전자를 완전히 박살내버렸습니다.

자, 이제 세상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선악과를 먹은 이후의 세상은 영영 희망이 없는 걸까요? 영영 죽음의 권세에 굴복해야 하는 걸까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인간과 세상 전체가 아담 안에서 계약(언약)에 참여했고, 이 언약은 돌이킬 수도 번복할 수도 없는 것이기에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죽음의 권세 아래서 피비린내 나는 죽임살이를 해야만 합니다. 죽음의 저주를 피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말하고, 기술을 개발하고, 경제를 발전시키고, 종교적인 구도의 길을 찾고, 세상을 바꾸는 혁명을 시도했지만 단 한 번도 죽음의 체제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죽음의 체제를 극복하는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순간 하나님과 아담이 맺은 계약은 휴지조각이 돼버립니다. 아주 우스운 장난이 돼버립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신의가 산산이 부서지는 건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유명한 작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스캇 펙은 말했습니다. “유토피아의 꿈은 문명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그것은 결코 실현될 수 없다.”(주와 함께 가는 여행. 75쪽).

정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기막힌 창조세계에 왜 구원 문제가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해봤습니다. 그리고 추적의 결과 놀랍게도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임을, 아담이 자유의 존재로 지음 받았기 때문임을 발견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형상과 자유는 아담이 받은 최고의 영광이자 축복입니다. 그런데 최고의 영광이자 축복인 하나님의 형상과 자유로 인해 아담이 언약을 깬 것이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는 길이 막힌 것이고, 온 세상이 창조의 축복과 영광을 잃어버린 것이고, 창조 세계에 꿈틀거리고 있던 하나님나라의 유전자가 박살나버린 것이고, 온 생명이 죽음의 체제 안에 갇히게 된 것이고, 결국 온 세상이 구원을 필요로 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까지도 온 생명이 죄와 죽음의 폭력에 신음하며 구원에 목말라 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위대한 존재요 자유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기이한 역설이지요? 그러나 이 역설이 근원 진실입니다. 최고의 재앙이 최고의 축복으로 인해 발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