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흔히 진리(眞理)를 안다고 생각한다.

진리를 따라 살지는 못하나 진리가 무엇인지는 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진리를 알까? 참된 이치가 무엇인지를 알까?

 

결론부터 말하자.

인간의 모든 앎과 깨우침은 진리에 이르지 못한다.

인간은 세계를 넘어선 존재가 아닌 세계 내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앎과 깨우침은

아무리 깊고 넓다 해도 하나의 이치(一理)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최고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세계 이해도 일리를 넘어서지 못했고,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는 성철 스님의 종교적 깨우침도 일리를 넘어서지 못했고,

최고의 신학자 칼 바르트의 계시 이해도 일리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런데도 감히 진리를 깨우쳤다고, 진리를 안다고 우기는 자들이 있다.

진리의 파편을 일순간 보고 진리의 전부를 봤다고 확신하는 자들이 있다.

진리를 포획하기라도 한 듯 진리 위에 군림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허깨비다. 자신의 환상, 착각, 자폐와 짝패를 이룬 허깨비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인간은 진리의 존재가 아닌 일리의 존재임을.

그리고 인간의 일리로는 진리(眞理-참된 이치)에 이르지 못함을.

진리는 일리의 총합이 아니고 일리는 진리의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진리는 모든 일리를 품으면서도 모든 일리를 초월하기 때문에,

진리는 본시 세계 너머의 것, 즉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일리는 진리로 나아가는 징검다리일 수 없고,

일리로는 결코 진리에 이르지 못하며 진리를 포획하지 못함을.

인간은 기껏 진리의 파편을 볼 뿐, 그것도 스치듯 볼 뿐 진리를 포획하지는 못함을.

 

그런데도 여전히 진리를 깨우쳤다고, 진리를 안다고 확신하는 자들이 있고,

그런 자들을 진리의 존재라 믿고 추종하는 자들이 있다.

인류의 역사가 그것이 허깨비임을 폭로함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만도 이옥주, 이재록, 김삼환, 조용기, 오정현과 그 아류들을 통해

명명백백히 증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허깨비에 사로잡힌 자들이 있고,

그들의 거짓 광란에 춤추는 자들이 있다.

 

분명히 알자.

진리는 일리의 존재인 인간에게 포획될 때마다 심각하게 왜곡되고 훼파되었다.

인간이 진리의 깃발을 들고 역사에 등장할 때마다,

인간이 진리의 칼을 들고 일어설 때마다,

진리는 언제나 무리(無理)로 추락하곤 했다.

진리(眞理)가 일리(一理)를 밀어내며 무리(無理)로 추락하곤 했다.

오늘의 교회가 무리(無理)의 집단으로 매도당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수많은 그리스도인과 목사가 진리를 안다고, 진리를 포획했다고 확신하고

우쭐댈 뿐 아니라 진리의 칼을 앞뒤 생각 없이 휘둘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건대 진리를 깨우쳤다고, 진리를 안다고 확신하는 것은 다 허깨비장난이다.

무릇 진리를 아는 자는 진리 앞에서 겸허하다.

인간은 진리의 존재가 아니라 일리의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

인간은 진리의 파편을 볼 뿐 진리를 포획하지는 못한다는 것,

인간이 진리를 규정하는 게 아니라 진리가 인간을 규정한다는 것을 알기에

진리를 아는 자는 진리 앞에서 한없이 겸허하다.

진리는 일리와 경쟁하지 않는다.

진리는 일리를 짓밟지 않는다.

진리는 일리를 밀어내지 않는다.

진리는 일리를 품는다. 그것도 한없이 겸허하게 품는다.

바꿔 말하자.

일리와 피터지게 경쟁하는 진리,

일리를 무참히 짓밟는 진리,

일리를 막무가내 밀어내는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일리 앞에서 결코 오만하지 않다.

일리 앞에서 오만하기는커녕 일리를 겸허히 모신다. 

하나님이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신 것처럼.